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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EHAN Jan 10. 2019

여행 안가세요?

네 안가요.

넓은 세상이 궁금하지 않아요.

 작년 11월, 프로젝트 멤버로 1년, 정규멤버로 2년 정도 몸담았던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다른 이유도 많았겠지만 무엇보다 모든 것이 소진되어버린 느낌을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같은 지옥철을 이겨내고 다시 버스에 몸을 싣었다가, 내려서 다시 도보를 통해 도착해야만 하는 장장 1시간의 사무실을 매일 아침 향하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휴식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한발짝만 떨어져 있고 싶었다. 모든 것을 관망하면서, 어떤 것에도 끼어들지 않고 관찰하고 싶었다. 작은 일상들을 하나씩 회복하는 것이 절실했다.

 그만두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여행을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해외 어디 좋다는데 다녀와보지?' '어디든 떠나보는 것은 어때?' 부모님 조차도 왜 해외여행을 가지 않느냐는 '성화'셨다. 우리 삶에서 하나의 GAP을 가질 일은 쉽게 주어지지 않고, 여행은 그 GAP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경험이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맘에도 없는 여행지를 불쑥불쑥 내뱉곤 했다. '레게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메이카를 꼭 갈거에요!' '쿠바에 가서 체게바라의 향기를 맡아보고 싶습니다' 마치 나의 스케일은 아시아권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듯이 가슴 속에 뜨거운 열정이 가득하다는 듯이 말이다. 자메이카와 쿠바는 가보고는 싶으나 지금은 아니다. 난 무엇보다 집에서 빈둥대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여행이 익숙한 삶은 아니었다. 청소년기에는 학교다니느라, 대학생 때는 핑계같겠지만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살아내기에 바빴다. 익숙하지 않아서 낯설게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내 생애 최고의 여행을 굳이 꼽는다면 '군대'였다고 말하고 싶다. 650일간 타지에서 온갖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삶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본 것이 많이 없다 여겼는지 이야기를 할 때 내뱉는 경험들도 한정되어 있다 느껴지기도 했었다. 

 언제부터 우리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되었을까. 아마도 10여년 1박2일을 외치며 재밌는 게임을 동반하며 국내 여행을 했을 때부터? 익숙한 노배우들이 느지막하게서야 외국을 경험하며 행복해하는 것을 보았을 때부터? 그러고보니 PD 한 명이 미디어를 통해 미친 영향이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우리의 일상은 메말라 있고, 어딘가에는 풀리지 않는 갈증들이 없다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떠나기를 갈망하고, 채우기를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하면 자유를 느낀다고? 나는 리스본을 떠나 벤피카(리스본 근처의 외곽 도시)에만 가도 자유를 느낀다. 내 안에 자유가 없다면 세상 어디에 가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니트에 받쳐입는 목폴라, 반스 운동화, 평일 오전 11시의 광안리 바다. 이런 것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고 나의 취향들인데 여행이 이런 것들에 함께하고 있진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듯이 나도 무언가가 보고 싶고, 궁금하고, 그 곳에 가야지만이 경험해야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가지 않겠는가. 그게 지금이 아닐 뿐이다. 퇴사를 하고 시간이 많아지자 중요시 여긴 것들은 일상을 가꾸는 것이었다. 때가 되면 밥을 짓고, 음식을 나누고, 운동을 배워보기도 하고, 청소를 하고, 잠시 쉴 땐 햇살 아래 낮잠도 청해보고, 이런 것들을 한참 누리다 보면 여행과는 또 다르게 자유를 즐길 수 있다.


 sns에 올릴 사진 몇 장 건지러 떠나는 것이라면, 동네 마트에서 재료를 사다가 차라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라. 훨씬 자유롭고, 즐거우며, 저렴한 평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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