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포장 장보기가 주는 작은 즐거움
어느 평일 오전, 시장 입구에 섰다. 손에는 여러 면 주머니가 담긴 커다란 장바구니 하나. 오늘도 비닐을 안 받겠다는 다짐을 하며 들어갔다. 제로웨이스트 초창기에 유난히 어려웠던 실천 중 하나가 무포장 장보기였다. 장바구니는 예전부터 익숙하게 들고 다녔다. 생활 속에 깊이 스며든 도구라 누구에게나 익숙할 법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비닐봉지를 거절하고 면주머니를 내미는 일은 달랐다. 사람을 마주하고 설명해야 하는 부담이 뒤따랐다. 온라인 주문처럼 글이나 버튼으로 요청하는 것과 달리, 대면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더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대형 마트에서는 포장되지 않은 제품을 찾기 어렵다. 시장에서는 무포장 장보기가 비교적 쉬운 편이다. 진열대에 벌크로 쌓인 채소를 보면 반가움이 컸는데, 사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어떤 분은 이미 비닐을 뜯기도 하셨다. 가게 앞에 서 있기만 해도 미리 준비하고 계신 경우도 있었다. 원하는 양을 말하자마자 "비닐 말고 이걸로 담아주세요"라고 재빨리 말해야 하는 타이밍 싸움이었다.
대부분은 문제없이 받아들여졌지만, 친절하신 분일수록 비닐을 더 챙겨주려 하셨다. 필요 없다고, 쓰레기를 줄이고 싶다고 짧게 덧붙이면 금방 이해하셨다. 몇 번 반복하니 익숙해졌다. 단골 가게는 훨씬 편했다. 면주머니를 꺼내면 알아서 받아 두셨다. 반복과 습관이 실천을 단순하게 만들어낸다.
무포장 장보기에 필요한 것은 면주머니 자체가 아니다.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습관과 비닐봉지를 기본값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가 핵심이다. 집집마다 꼭 하나씩은 있을 장바구니를 외출 전 가방 속에 챙기는 일, 물건을 비닐봉지에 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는 일.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된다.
당장 면주머니가 없다면 집 안에 있는 천 가방이나 쓰던 비닐을 활용해도 충분하다. 집에 고이 모셔둔 빈 비닐들도 분명 있을 터. 포장 쓰레기를 하나라도 줄이는 방법은 결국 새 일회용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는 선택을 이어가는 것이다.
모든 식재료를 무포장으로 살 필요는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실에서 100% 무포장은 불가능하다. 당장 먹어야 할 식재료가 포장되어 있는데 어떡하겠는가. 가능한 품목만 골라도 충분하다. 대형 마트든 전통시장이든 벌크로 진열해 둔 과일이나 채소를 보면, 추운 겨울 간신히 찾은 붕어빵 가게만큼이나 반갑다.
집을 나서기 전에 장바구니를 챙겨보자. 이왕이면 집에 모아둔 면주머니나 비닐도 함께 챙겨보자. 장을 보러 가서는 사장님께 웃으며 비닐을 거절해 보자.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무포장은 자연스러운 일상 행동이 된다. 비닐 하나 아꼈다고 사장님이 덤으로 더 담아주시기도 한다. (사실은 이것 때문에라도 계속 중독처럼 하게 되는 무포장 장보기다.)
작은 거절 하나가 어디까지 이어질까. 내일 장바구니엔 무엇이 담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