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인이 되는 선택
25년의 마지막을 이사로 마무리 지었다. 결혼 생활 10년, 아이들도 그 사이 훌쩍 컸다. 세월이 흐른 만큼 교체해야 할 가구들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작아진 침대를 대신할 가구도, 본격적으로 공부할 책상도 필요했다. 새로 샀지만 대부분 새것은 아니었다.
이사는 필연적으로 쓰레기를 만든다. 이번 이사 역시 이를 피해 갈 수 없었다. 박스 투명 테이프 30여 개, 75L 종량제 봉투 4장, 자잘한 짐들을 한데 모아 담은 커다란 비닐 봉지 약 30여 장. 내 눈으로 확인한 쓰레기만도 이 정도였다. 정리하고 포장하는 과정에서 쓰레기를 피할 수 없다. 새 집에 필요한 가구까지 전부 새로 산다면 그 양은 더 늘어난다.
쌓여가는 쓰레기를 보며 생각했다. 이사란 결국 삶을 옮기는 일인데 왜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남기게 될까. 지나간 자리에 버려지는 물건들, 일회용 포장재들, 일회용품들. 이 모든 게 새 집에서의 시작을 위해 필요한 대가일까.
이사를 여러 번 하며 매번 느꼈다. 이사 과정의 쓰레기는 어쩔 수 없어도, 새로 구입하는 물건만큼은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선택하고 싶었다. 필요한 가구를 찾기 위해 당근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리퍼브 가구 매장도 돌아다녀 봤지만 우리 집에 어울릴 소파와 안방 침대 프레임은 찾지 못했다. 이 두 가지는 새로 사기로 했다. 나머지는 당근으로.
첫째 아이 방에 둘 책상, 침대 프레임, 옷장
둘째 아이 방에 둘 침대 프레임, 옷장, 서랍장
주방에 둘 아일랜드 식탁, 수납장, 멀티 전자레인지
안방에 둘 장롱
당근에 키워드를 설정해 두고 알림이 오는 대로 확인했다.
마음에 드는 게 올라오면 바로 연락한다. 가격이 아무리 괜찮아도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패스. 디자인은 좋은데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면 고민이 된다. 그러다 마침내 찾는다. 마음에 들면서도 가격도 합리적인 가구. 그때의 희열.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당근을 끊을 수 없게 된다.)
가구들을 하나씩 구하면서 고민이 생겼다. 어떻게 옮기지? 대부분의 가구는 우리 차에 실리지 않았다. 당근으로 가구를 구할 때는 운반 방법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다행히 가까운 거리여서 비용 부담은 크지 않았다. 동네에서 서로 필요한 물건을 주고받는 것, 이것도 당근의 매력이다.
지금 이렇게 써놓고 보니 진짜 당근으로 많이 샀다. 이번 이사를 위한 당근에 쓰인 비용은 새 제품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저렴했다. 거의 새 제품에 가까운 가구도 있었고, 사용감이 있는 대신 나눔으로 받은 것도 있었다.
이 가구들은 부서지지 않았다. 망가지지도 않았다. 단지 주인이 이사를 가거나, 아이가 자라거나, 취향이 바뀌었을 뿐이다. 한쪽에서는 가구들이 버려진다. 다른 쪽에서는 새 가구들이 만들어진다. 나무를 베고, 가공하고, 도색하고, 포장하고, 운송한다.
당근은 이 흐름을 끊는다. 버려질 뻔한 가구에게 새로운 주인을 찾아준다. 이미 생산된 물건이 주인만 바꿔서 다시 쓰임을 이어간다. 가구에게도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것이다.
지금 첫째와 둘째 방에는 당근에서 구한 침대 프레임이 자리 잡았다. 두 개 다 새 제품이었다. 판매자가 깨끗한 매트리스까지 덤으로 줘서 그럴듯한 침대를 완성할 수 있었다. 주방 아일랜드 식탁은 더 신기했다. 거의 새 제품 수준인데 나눔으로 올라와 있었다. 왜 이걸 나눔으로 주는 건지 의아할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좁은 주방에 딱 맞는 크기다. 부족한 조리대를 보완해 주는 쓰임새도 완벽하다.
안방 장롱은 가장 공들여 찾은 가구다. 부피가 커서도 있지만 무엇보다 집 분위기에 맞아야 했다. 꽤 오래 기다린 끝에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장롱을 찾았다. 지금도 그 장롱을 볼 때마다 잘 들였다는 생각이 든다.
발품 팔아 구한 가구들은 이제 우리 집의 일부가 됐다. 누군가에게는 역할을 다한 가구였지만 우리에게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당근이 항상 쉬운 건 아니다. 수시로 앱을 확인해야 한다. 판매자 연락이 바로바로 안 될 때도 있다. 로켓배송처럼 집 앞에 택배가 와 있는 게 아니라 약속한 장소까지 나가 거래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으면 그것만큼 아쉬운 일이 없다.
실패도 있었다. 생각보다 사용감이 더 느껴지는 물건을 받을 때도 있다. 직접 보니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다. 막상 사용하다 보니 눈에 거슬려 결국 다시 내놓은 적도 있다.
물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찾으면 대부분 구할 수 있긴 하다. 다만 바로 필요한 물건이라면 진득하니 구매할 만한 물건이 새로 올라오길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당근을 기웃거리게 되는 이유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들 때문이다. 침대 프레임을 사러 갔다가 매트리스는 물론 비싼 토퍼까지 덤으로 받았다. 아껴 쓰고 다시 쓰고 나눠 쓰는, 이 순환의 재미가 이런 것 같다.
비용은 새 가구보다 절반 이상 아낄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이사 준비를 하며 아홉 가구와 한 가지 전자제품이 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평소에도 당근을 애용하는데 이번 이사로 다시 확인했다. 새 물건의 첫 주인 대신 이미 역할을 해온 물건의 다음 주인이 되는 즐거움. 필요한 게 생길 때 당근부터 열어보는 것만으로도 실천의 한 걸음일 수 있다.
다음 주인이 되어보는 선택, 함께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