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테이블 위를 살핀다.
스텐이든 플라스틱이든 재질은 상관없다. 다회용 물컵이 놓여 있으면 안심이 된다. 하얀 종이컵이 쌓여 있으면 이미 예상한 풍경이면서도 괜히 실망스럽다. 물 한 잔 마시는 일에 왜 이렇게 예민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느새 습관처럼 하는 생각이 되었다.
벌써 3년쯤 지났다. 매장 안에서 일회용 컵을 쓰지 못하게 한다는 정책이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계도기간을 거쳐 시행을 앞두고 있었지만, 막판에 자영업자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결국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웬만한 식당에서 물을 종이컵으로 마시는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다. 규제가 풀리니 예전으로 돌아간 모습이다.
요즘 식당에 가기 전 리뷰를 찾아본다. 사진을 보다 보면 컵이 찍힌 장면이 하나쯤은 나온다. 다회용 물컵이 보이면 마음이 놓이고 종이컵이 보이면 텀블러를 떠올린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현재로서는 내게 텀블러 두 개면 충분하다. 외출할 때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일은 이제 습관이 되었다. 몸에 배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짐을 줄이고 싶은 날도 있어서 그런 날을 대비해 두 개를 번갈아 쓴다. 작은 가방에도 들어가는 것 하나, 가방 크기에 상관없이 쓸 수 있는 것 하나.
종이컵이 자연스러워진 시대에 어쩌다 다회용 물컵이 놓인 식당에 들어설 때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컵 하나 덜 버린다고 세상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그 작은 선택이 나에게는 작은 행복을 가져다준다.
요즘 정부에서는 일회용 컵 정책을 다시 손보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2030 탄소중립 목표를 위해 '컵 따로 계산제'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다. 음료값에 묻혀 있던 일회용 컵 비용을 영수증에 따로 표시하고, 다회용 컵을 쓰면 그만큼을 빼주는 방식이다. 환경을 위해 더 내라는 얘기가 아니라, 이미 무심코 내고 있던 비용을 드러내겠다는 취지다.
몇 년 전 종이컵 금지 정책을 둘러싸고 자영업자 반발이 거셌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도 반응은 엇갈린다. 제도를 정교하게 만드는 일은 늘 어렵다. 어떤 컵을 쓸지에 대한 선택만큼은 여전히 개인에게 남아 있다.
텀블러 이야기를 하다 보면 피규어를 모으듯 예쁜 텀블러를 모으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색깔별로, 브랜드별로. 이해는 된다. 예쁘니까. 나 역시 사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다.
텀블러도 결국 무에서 유로 변신하는 물건이다.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자원이 쓰이고 탄소가 나온다. 몇 번 써보는 것만으로 환경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재질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플라스틱 텀블러는 50번 이상, 스텐 텀블러는 약 220회 정도 사용해야 일회용 컵보다 환경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고 한다.
(다행히도 내 텀블러는 이미 그 숫자를 훌쩍 넘겼다.)
가끔 새 텀블러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당근을 뒤적여 보기도 하는데, 결국 늘 쓰던 텀블러가 가장 편하다. 그때 당시 환경부 (현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추산한 2022년 한 해 국내 일회용 컵 사용량을 한 줄로 쌓아 올리면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의 여섯 배쯤 된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숫자를 놓고 보니 손에 들린 텀블러가 덜 하찮게 느껴진다.
벌써 4년 전, 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 노란색 텀블러. 작은 가방에도 쏙 들어가고, 손잡이도 있고, 입구도 씻기 편하다. 여러 개를 돌려 쓰기보다는 하나나 둘을 오래 쓰는 쪽이 내 생활에는 더 잘 맞는다.
제도를 하나 제대로 마련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사용자와 공급자 모두 만족시키는 완벽한 제도가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세상이 단번에 달라질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본다. 다만 무엇을 선택할지는 오롯이 나에게 달려 있다.
일주일에 일곱 번 일회용 컵을 쓰던 사람이라면 여섯 번으로, 여섯 번이면 다섯 번으로 줄여보는 일. 갑자기 달라져보겠다며 텀블러를 들고 다닐 수도 있다. 어떤 속도든 지금 당장 실천하는 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늘도 나는 식당에서, 카페에서 가방 속 노란 텀블러를 꺼낸다.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컵 하나만큼은 내가 고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