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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일 없이 달리기 Oct 07. 2023

슴슴하게 달리기

슴슴하다는 싱겁다, 심심하다의 동의어


*[별일 없이 달리기 magazine]

평안한 달리기를 추구하며 ‘달리기와 일상’에 대한 주제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2018년 4월 , 1주일 정도 중국의 광저우에 1주일 정도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사실 출장이라기 견학에 가까운 것이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는 한국에 있는 본사만큼 중국지사의 입김이 센 편이었는데, 중국지사의 직원이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면서 나를 중국지사로 파견 보낸 것이다. 단순히 중국 지사가 힘을 과시하기 위한 인원보충 요청이었다. 중국어도 할 줄 모르는 나를 출장 보낼 정도면 설명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거점 간 힘겨루기 싸움에서 나는 어부지리로 혜택을 보았다.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을 예약할 수밖에 없었고, 비교적 안전한 4성급 이상되는 호텔방을 얻어 호화생활을 누렸다. 게다가 출장 마지막 주말에는 여행까지 즐기고 돌아올 수 있도록 회사차원에서 배려까지 해주었다. 말 그대로 경비가 공짜인 여행이었다. 나로서는 매우 즐거운 여행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상무님과 팀장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낀다.


 광저우는 중국의 손에 꼽는 대도시이기 때문에 한국만큼 대중교통이 잘되어있는 편이다. 나는 탐험하듯이 구글맵의 도움을 받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동아시아 문화를 공유하는 만큼 여행에 있어서 큰 불편한 점이나 이질감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중국은 이미 당시부터 QR코드를 이용한 간편 결제가 대중화되어 있었는데, 여행객의 입장에서는 짧은 여행을 위해 통장을 개설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여간 불편한 점이 아니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역아침에 김밥을 파는 무점포 상인까지도 QR결제로 김밥을 파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이 점도 크게 불편한 점이 아니었는데, 때마침 광저우에는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한 친구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몇 년 하고 있던 나와 달리 그 친구는 타지 생활을 하며 자리를 잡아가는 친구였기에 나는 여행의 경비를 대고 현장 가이드와 결제를 맡기면 서로 부담 없는 거래가 되었다.


 이때 처음 접한 음식이 마라탕이라는 음식을 처음 접했다(당시는 마라탕이 한국에 널리 알려지기 전이었다). 마라탕은 사골육수에 고추기름과 여러 향신료를 넣어 맛을 내는 탕이다. 안에는 주로 야채와 면류 그리고 소나 양고기 등을 넣어 끓여 먹는다. 기본적으로 매운맛 베이스와 혀를 얼얼하게 하는 향신료가 특징인 음식이다. 나는 매운 음식은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타지까지 와서 현지음식을 먹고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현지 음식이라면 '일단 도전!'을 외쳤다. 마라탕의 첫인상은 매우 흥미로웠다. 안에 들어간 독특한 향신료가 혀를 얼얼하게 마비시키는데, 이 맛이 매우 중독적이고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많은 현지 음식을 즐길 수 있었는데 중국에는 접시단위(한국의 앞접시 크기)로 음식을 파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출장을 빙자한(?) 1주일간의 광저우 먹방기행은 잘 마무리되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을 꼽자면 역시 마라탕이었다. ‘얼얼한 맛’은 개념은 맛의 신대륙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의 혀에 ‘얼얼한 맛‘(사실은 맛은 아니지만)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해 준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귀국하면 다시는 맛보지 못할 맛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았었을 수도 있겠다.

 

  이듬해 나는 공짜 여행을 보내주는(?) 회사에서 서울 소공동의 한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된다. 이직한 회사는 건물 바로 건너편이 명동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음식을 먹을 기회가 많았다(지갑이 텅텅 비어갔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특히나 명동은 중국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상권이 주류였기 때문에 중국현지인들이 찾을만한 중국음식점도 많았다. 당연 그중에는 마라탕 전문점도 있었다. 나름 마라탕 조기교육자였지만 한국에서 마라탕을 주문하는 게 처음에는 쉽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라탕의 맵기는 주문자가 직접 지정하는데 내가 선호하는 적당한 맵기를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마라탕의 맛은 썩 성공적이지 않았다. 그래 도수번의 매장방문 끝에 나만의 맛을 찾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마라탕의 인연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이직을 한 회사에서 인정받기로 한 이전 경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나와 내 동료는 공채전형이 아닌 특별채용전형으로 채용된 직장인들이었다. 특채의 경우 공채보다 2년이 낮은 호봉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입사한 뒤에 알게 되었다. 경력인정을 받고 입사했는데도 신입과 같은 호봉으로 시작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근로계약서에 사인하는 단계에서 경력을 인정받는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문의하였음에도 사전에 호봉제도를 고지받지 못한 것에 대해 일종의 배신감까지 느껴졌다. 부당함을 건의도 해보았지만 의견수렴이 되지 않았고, 늦기 전에 퇴사를 결심했다.


 그 후 자연스럽게 마라탕을 먹을 일이 적어졌다. 매번 새로운 매장에 방문해 보았지만 적당한 맵기와 얼얼함을 찾기가 어려웠다. 매번 사 먹고 애매한 맛에 후회하는 식이다. 하지만 종종 *도박사의 오류에 빠진다. 마라탕 매장을 지날 때마다 이번은 다르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항상 든다. 글을 쓰는 오늘의 경우가 그러하다. 몸에 건강한 샌드위치를 먹을지, 오랜만에 마라탕에 재도전(?)해볼지 고민됐다. 두 가게 사이를 대여섯 번은 서성였던 것 같다. 하지만 무의미한 고민이었다. 도박이 왜 도박인가 그건 중독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마라탕을 먹기로 결정한다.

 평소처럼 보울에 두부류와 목이버섯을 담는다, 분모자라고 하는 중국식 당면도 함께 담는다. 역시 난관에 봉착했다. 오늘의 맵기는 무엇으로 해야 할까. 일단 첫 번째 방문하는 매장 같은 경우는 ‘중간맛’을 고르는 게 그나마 실패의 확률이 없다. 사실 순전하게 운이므로 고민한다고 해서 더 적당한 매운맛의 정도가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고민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고민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냥 중간맛을 선택한다.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대충 먹을만한 정도의 맵기였다.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나는 언제까지 마라탕을 먹기 위해 도박을 결심해야 하는가? 도대체 매장에서 말하는 ‘2단계 : 신라면 정도의 맵기’는 어느 정도인가? 어느 정도이길래 어느 때는 사골육수처럼 부드럽기도 하며 어느 때는 내 입을 불태우기도 하는가? 이 정도면 국가에서 ‘맵기의 표준’을 어느 정도 정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와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그릇을 비워냈다. 하지만 역시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는다. 맵기 정도는 매우 주관적인 것이다. 게다가 온도나 같이 조미의 정도에 따라 맵기의 정도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언제나 ‘주관적’인 것은 ‘객관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주관적인 것이다.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인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런 비슷한 답답함을 언젠가 또 느낀 적이 있다. 바로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무렵이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수록 어느 정도의 속도로 달려야 하는가 항상 의문이다. 그러다 보니 단어를 해석하는데도 어려운 점이 있었다. 어디까지가 스프린트(전력질주)이고 러닝이며 조깅인가?  각각의 단어가 뜻에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는 건 알겠다만 명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 검색도 해보았지만 명확하게 정의된 사전적 정의도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이도 없었다. 사람마다 설명이 다르고 때로는 상반된 견해를 보여 혼란만 가중되었다. 대체적으로 속도로 분류를 하는듯했는데 시속 10km 이하는 조깅, 이상은 러닝, 20km에 가까운 속도는 스프린트로 정의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 설명도 허점이 있다. 남성과 여성의 기록에 차이가 있으며, 숙련된 정도에도 차이가 있고, 무엇보다 신체에 장애가 있는 경우에도 속도는 상대적인 것이었다. 이마저도 충분한 설명이 되지는 못했다.


 지금생각해 보면 각각의 단어를 사전적 정의로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달리기이 속도도 음식의 맵기와 가장 비슷한 것 같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매움의 정도는 상당히 상대적인 것이다. 내가 매운 음식을 먹을 때 인내하는 정도가 매움의 정도라면 달릴 때의 내가 ‘힘을 쥐어짰다고 느끼는 정도’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힘을 쥐어짠 ‘정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처음부터 객관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경험치가 쌓여야 알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요즘은 스마트워치가 보급되기 시작하며 심박수라는 객관적인 수치로 달리기 강도를 측정하는 기준도 생겼다. 하지만 심장이 건강하더라도 다리가 약하면 빠르게 달리기 어려운 것처럼 결국 달리기의 강도는 스스로 정해 나갈 수밖에 없다. 계량된 음식의 레시피만으로 좋은 맛을 낼 수 없고, 결국 경험치가 쌓여야 먹을만한 음식이 완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보통 집에서 음식을 직접 해 먹는다. 처음 혼자 나와서 살 때보다는 주방실력이 많이 늘었다. 특히나 칼질이나 설거지같이 정성적인 평가가 필요 없는 스킬에서는 시력이 꽤 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요리를 잘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나의 답은 '글쌔'다. 집에서 음식을 해먹을 때는 항상 마지막 숟가락이 문제다. 최근에는 멸치볶음을 하는데 간장을 한 스푼 넣을지 두 스푼 넣을지 고민이 됐다. 이성적으로는 한 스푼으로 충분하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넣어보면 양이 부족한 거 같아 한 스푼을 더 넣는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요리 중 간을 보니 안 그래도 짠 마른 멸치에 간장을 과다하게 부어버리니 짠맛의 치사량이 넘는 맛이었다. 결국 짠맛을 중화하기 위해서 올리고당을 가득 부을 수밖에 없었는데 멸치 볶음이 아닌 멸치 사탕이 완성되었다(올리고당은 식으면 단단히 굳는다). 맛은 둘째치고 이런 음식은 건강에 좋을 리도 없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나는 *메타인지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메타인지를 나(혹은 주위환경)를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능력이다. 자가로 측정해 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TV쇼에 나온 방법인데 진행자는 참가자들에게 20개 정도의 단어를 외우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단어를 보여주기 전에 자신이 몇 개 정도의 단어를 암기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러고 단어가 제시되고 참가자들은 단어를 외우기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단어를 단순히 많이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암기테스트 하기 전에 내가 예측한 암기할 수 있는 단어 수와, 실제로 암기한 단어의 수와 비슷할수록 메타인지가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나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메타인지는 벌어지지 않은 일을 예측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고 한다. 가령 사업아이템을 바라볼 때 메타인지가 좋은 사람은 사업의 가능성을 실제와 비슷하게 알아맞히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는 아이템의 가능성을 너무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대체로 ‘과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음식의 경우 조미를 너무 과하게 해서 문제가 됐고, 마라탕도 대체로 너무 맵게 주문해서 곤욕을 치렀다. 달리기를 할 때는 나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해서 페이스 조절을 망치거나 부상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메타인지가 좋은 편이라면 지금보다 간을 맞추거나 더 별일 없는 달리기를 하기 수월하지 않았을까. 내가 간간히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 있다면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일 것이다. 나의 메타인지가 그렇게 썩 좋은 편이 아니라는 걸 안다는 건 어쩌면 나 자신을 조금은 알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조금 다행히도? 나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부터 요리하는 게 조금은 더 수월해졌다. 소스의 양을 확 줄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정도만 넣으면 요리가 너무 심심할 것 같은데?” 할 정도로 조미를 덜하면 누구나 맛있게 먹을만한 정도의 적절한 간이 맞춰진다. 반대로 내가 원하는 맛을 내려고 하면 역시나 과하게 짜거나 달거나 하기 일수였다. 그래서 항상 내가 원하는 기대치에 못 미치게 양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심심하게.


 가만 생각해 보면 달리기에 있어서도 비슷한 방법을 적용해 왔던 것 같다. 10km를 달리기로 계획하고 ‘이 정도면 되겠지?’하는 속도로 달리면 절반지점에서 이미 지치기 시작하고 7km 정도 남은 시점에서는 이미 체력을 다 소진해 버려 나머지 거리는 체벌에 가까운 달리기를 해버린다. 반대로 10km를 달리기로 계획하고서 ‘이 정도면 20km 정도도 달릴 것만 같다’하는 속도로 달리면 10km를 완주하는 시점에 글리코겐이 거의 소진되면서 깔끔한 달리기가 된다.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비교적 먼 과거에는 어땠는가? 작년 이맘때쯤 나는 무리한 달리기로 아킬레스건염에 걸리게 된다. 사실 그전에도 여러 증상이 있었는데도 무리하게 달리기를 지속했다는 점이 문제이기도 했지만, 역시 마지막 달리기가 문제였다. 나는 그날을 비교적 선명히 기억한다. 겨울부터 시작한 달리기가 여름의 하드트레이닝을 거쳐 물이오를 시기였다. 가을의 달리기는 확실히 자극적인 맛이 있다. 평소처럼 달려도 지치지 않고 때로는 누군가 내 등을 밀어주기라도 하듯이 빠르게 달리는 게 수월하다. 심지어 요즘같이 4계절이 불분명하여 가을이 짧게 느껴지는 달리기를 멈추기가 쉽지 않다. 나의 7일간의 중국 먹방기행동안 어떻게든 현지음식을 최대한 소화하려고 하려는 열정이랑 비슷하게 느껴진다랄까나. 쉽게 말해 계절의 뽕을 뽑아야 한다. 그래서 왼쪽 종아리에 쥐가 스멀스멀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멈추는 게 어려웠다. 그리고 마지막 한 숟갈이 문제였다. 마지막 스프린트에서 경련이 폭발해 버린 것이다. 걷기가 어려울 정도로 경련이 심하게 온 것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그게 아킬레스건염의 초기 증상이었다. 그 뒤로 10개월 정도를 전혀 달리지 못했다. 자극적인 맛에 취해 매운맛을 제대로 본 것이다.


 우리는 간혹 인생이 맵다고 비유하곤 한다. 만성위염의 환자나 비만 환자가 급증하는 현대 사회에서 마지막 설탕, 소금 한 숟갈을 줄여 슴슴하게 먹는 것처럼 건강한 달리기를 위해서는 슴슴하게 달리는 습관이 중요하지 않을까. 취미로 시작한 달리기라면 자극적인 맛을 중화시키는 게 더 중요한 목적을 갖지 않을까. 식탁도 슴슴하게 달리기도 슴슴하게.



* 마라탕 : 중국의 전통 탕 음식으로, 주로 야채나 면을 ‘마라’라고 하는 얼얼한 소스를 풀은 탕에 넣고 끓인 탕이다. 기호에 따라서 소, 양고기나 여러 꼬치들을 넣기도 한다. 외식문화에서는 큰 보울에 주문자가 직접 원하는 재료를 먹고 싶은 만큼 음식을 덜고 가게에서는 조리를 해준다.

*도박사의 오류 : 도박에서 줄곳 잃기만 하는 사람이 ‘이번에는 꼭 딸 거야!’라고 잘못 생각하는 생각의 오류

*메타 인지 :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인지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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