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창조한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근거 중 하나는, 우주가 이렇게 완벽하고 아름다우며 복잡하기에, 이를 만든 누군가가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무신론자들은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한 우주를 만든 존재인 신을 만든 존재가 또 있어야 하냐고 반론한다. 신이 실존한다면 그는 우주보다 더욱 복잡할 것이기에, 그런 신에 대한 창조자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신에 대한 창조자가 있다면, 그 창조자에 대해서도 창조자가 있어야 할 것이고, 또 그 창조자에 대한 창조자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무한한 창조자들의 나열이 있게 될 것이고, 무신론자들은 이것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논쟁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구에 관한 고대 인도인들의 생각과 실제 지구의 차이점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고대 인도에서는 동물들이 지구를 떠받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지 않으면 지구가 아래로 추락한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믿음이 타당하려면, 밑에서 떠받치는 동물들의 무한한 나열이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그 나열이 유한하다면, 그 나열이 전혀 없는 것과 사실상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지구는 아무런 받침 없이 떠 있다. 즉, 동물들의 무한한 나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주도 어쩌면 창조자들의 나열 없이 단독으로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깨달음에서 우리는 범신론의 탁월함을 알게 된다. 범신론은 온 우주와 신을 동일시하는 사상이다.[1]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창조된 존재인 우주와 창조하는 존재인 신이 동일하다고 보는 사상이다. 이는 유신론이 그 둘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과 대비된다. 그래서 범신론이 참이라면 무한한 창조자의 나열 없이 우주는 홀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지구가 무한한 동물의 나열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러한 사상이 참인지 아직 우리가 검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물들의 무한한 나열이 불합리하듯, 창조자들의 무한한 나열 역시 불합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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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00820&cid=40942&categoryId=31500 (2021년 3월 27일 접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