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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환 Feb 07. 2021

데카르트 신 존재 증명을 바탕으로 한 고찰

관념과 경험을 통한 신 존재 증명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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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에 따르면 무언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완전한 존재라면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완전한 존재자, 즉 신에 대한 관념이 있다. 이를테면 “전지전능하고 가장 완전한 존재자의 관념”, “필연적이며 영원한 존재”에 관한 관념을 인간은 머릿속에서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철학의 원리』). 그런데 데카르트에 따르면 불완전한 존재자인 인간으로부터는 완전한 존재자에 대한 관념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이 관념들이 완전한 존재자인 신에게서 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머릿속에 신에 관한 관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이 실존하는 증거라는 것이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신 존재 증명이다.

하지만 이 증명에는 난점이 있다. 어떤 관념이 정말로 완전한 존재자에 대한 관념인지 불완전한 존재자인 인간은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존재자가 떠올리는 완전한 존재자의 관념은 단지 그것이 실제 완전한 존재자의 관념이라고 착각한 것에 불과할 수 있다. 가령 영원함에 대한 관념은 실제로 영원함을 속성으로 가진 존재자만이 그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다. 그 존재자만이 진정한 영원함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영원하지 않다. 따라서 인간이 떠올리는 영원함에 대한 관념은 단지 그것이 영원함에 대한 관념이라고 착각한 것에 불과할 수 있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신 존재 증명의 타당성을 보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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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신도 인간만큼 불완전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관념을 통한 신 존재 증명은 타당한가? 다시 말해, 비록 신이 인간보다 완전함에 가깝지만, 신을 구성하는 일부 속성은 인간만큼 불완전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관념이 된다면, 관념을 통한 신 존재 증명은 타당한가? 

(데카르트는 이 가정 자체에 반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신은 아무런 불완전한 요소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주장은 잠시 차치하고 생각해보자. 만약 이 가정하에서 관념을 통한 신 존재 증명이 타당하다면, 데카르트가 생각한 신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신의 존재가 증명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가정이 참이라도, 신에게는 온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속성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 속성이 없는 존재자를 신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런데 인간이 신의 일부 속성에 대한 관념을 가질 수 있다 해도, 온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능력에 관한 관념은 가질 수 없다. 그것에 관한 속성이 인간에게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에겐 온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는 어떤 불완전한 속성에 관한 관념이 신에 관한 관념인지 확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관념은 온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능력에 관한 관념과 분리된 채 인간에게 있는데, 신은 그 모든 속성이 분리되지 않고 한데 아우러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관념이 단독으로 있는 상태와 그 관념이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관념과 함께 있는 상태 중, 신의 상태는 전자가 아닌 후자인데, 전자의 경우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관념과 후자의 경우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관념의 성질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온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능력이 있지만 때론 의심하는 신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인간은 의심하는 속성에 관한 관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온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능력과 한데 어우러진 의심하는 속성에 관한 관념은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전자의 의심하는 속성에 관한 관념과 후자의 의심하는 속성에 관한 관념이 동일한지 다른지 인간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이 어떤 관념을 의심하는 속성에 관한 신의 관념이라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참된 의심하는 속성에 관한 신의 관념인지 검증할 수 없다.

따라서 신도 인간만큼 불완전한 속성을 일부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관념을 통한 신 존재 증명의 타당성을 보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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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간의 관념 바깥에서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신이 존재한다는 경험적 증거가 실존한다면, 인간은 이를 인식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만약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 인식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신에 관한 관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에 대응하는 관념이 생기지 않은 인식은 인식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신에 관한 관념을 가질 수 없음을 앞에서 이미 논증했다. 따라서 경험을 통한 신 존재 증명의 타당성을 보증할 수 없다.

그리고 이로써 종교적 신비나 기적에 관한 경험이 신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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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인간은 관념과 경험 두 영역에서 모두 신 존재 증명의 타당성을 보증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신 존재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부록: 전지전능함의 모순을 바탕으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관하여>

어떤 무신론자들은 신의 속성 중 하나로 여겨지는 전지전능함이 그 자체로 모순이라고 하며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만약 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면,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줄도 아는데, 그럼 신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일만 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전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두 가지 난점이 있다.

첫째는 신의 속성 중 하나로 반드시 전지전능함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신에게 전지전능함이라는 속성이 있는지 없는지 실제로 전지전능하지 않은 인간은 판단할 수 없다. 따라서 신이 실존하는 동시에 전지전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둘째는 전지전능함이 그 자체로 모순인지 아닌지 인간은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모순이라고 지적하는 논증은 전지와 전능 둘 중 하나도 실제로는 할 수 없는 인간이 만든 것에 불과하다. 그 논증 속의 전지와 전능이 실제 전지와 전능이 맞는지 인간으로선 알 도리가 없다. 따라서 전지전능함이 그 자체로 모순이라는 그 논증이 타당한지 인간은 알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전지전능함이 그 자체로 모순이라고도, 모순이 아니라고도 판단할 수 없다.




책 정보: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24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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