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레 마주하는 주변의 소리
5년 간 사용해 온 이어폰이 망가졌다.
결혼을 하며 남편과 커플 아이템으로 맞춘 작고 소중한 나의 에어팟, 운동을 하고 주머니에 넣어둔 것을 깜빡한 채 그만 세탁기에 돌려버리고 말았다. 생활 방수 기능을 갖춘 제품이지만 세탁기의 물줄기는 생활 방수의 일부로 보기엔 내 이어폰에게 너무 큰 시련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모두들 이어폰을 꽂은 채 걷고 운동하고 멍 때리는 시간 속에 나는 헛헛한 두 귀를 쫑긋 세우며 주변의 소리를 마주하고 있다.
이어폰 없이 살 수 없다는 남편은 내 이어폰이 망가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얼른 새로운 걸 사라며 나를 부추겼다. 하지만 운동하거나 산책할 때 잠시 사용하는 이어폰을 2,30만 원 가격을 주고 새로 구매하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은 나는 1주일째 이어폰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망가진 첫날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공공장소에서 영상 하나를 보려고 해도 이어폰이 없으니 소리를 끈 채 자막에만 의존해서 봐야 했고, 무엇보다 30분 이상 러닝을 하는 시간에는 음악의 리듬소리에라도 의존하며 달렸던 때와는 달리 오로지 내 숨소리만 들으며 달리니 더 힘들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은 내 마음먹기 달렸다고 이어폰이 없는 이 시간을 나는 오히려 '나'와 내 '주변'에 집중하는 시간으로 이용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음악에 의존해 걷던 때와는 달리 내 주변에는 꽤나 다양한 소리가 가득했다.
울창하게 피어난 나뭇잎과 나뭇가지 사이로 짹짹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스쳐 지나가는 한 여름의 시원한 바람 소리, 친구와 대화하는 어린아이의 들뜬 소리, 오랜만에 마주친 동네 지인과 웃으며 인사하시는 어르신들의 웃음소리.
내 주변은 '이어폰'이라는 작은 감옥 안에 가둬두기엔 아까운, 다채로운 소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집 앞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내 귀를 열어두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을 땐 들리지 않았던 또 다른 소리들이 귀와 뇌를 통해 나에게 전달된다.
원두 가는 소리, 주문받는 소리, 대화하는 소리, 빨대와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
어쩌면 우리는 '편리함', '프라이버시'라는 작은 우물 안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은 이어폰 없이 살기에도 충분히 즐거운 곳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던 과거에 미안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