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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듯한생각비니 Jul 18. 2021

"함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란다."

전쟁이 낳은 비극과 진실을 쫓는 과정을 그린 "그을린 사랑"

<영화에 대한 내용 언급이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은 시청 후 읽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영화 '그을린 사랑'의 포스터


입시 준비를 하다가 만나게 되었던 '그을린 사랑'. 당시에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영화로,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그 여훈이 가시지 않아 오랫동안 생각났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그을린 사랑이 21년 올해 연극무대로 올라온다는 소식과 영화의 재개봉 소식을 듣고, 작품을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영화를 재생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유언을 따라가는 잔느


영화는 '나왈'이라는 여인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쌍둥이 남매에게 유서를 남기는데, 그 유서의 내용이 이상합니다. 유서에는 자신을 관에 넣지 말고 나체로 세상을 등지게 묻어달라,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적혀있었습니다. 또한 전쟁 중에 죽은 아버지와 존재하지도 않는 형에게 편지를 전달하고. 편지가 전달된 후에야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도 좋다고 합니다.


유언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의 과거를 따라가던 남매는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크리스천인 어머니는 이슬람 난민과 사랑에 빠지지만, 형제들에게 남편을 잃고 자신도 죽임을 당할 뻔하지만, 할머니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그의 아이를 낳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와 아이를 반기지 않는 가족과 마을. 그녀는 아이가 태어나자 발뒤꿈치에 눈신을 새겨 고아원에 보내게 되고, 마을을 떠나 대학에 가게 됩니다. 그러던 중, 중동 내전에서 기독교 무장단체가 자신의 아이가 있던 고아원을 폭격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은 그녀는 복수를 다짐하고, 저항군에 들어가 기독교 무장단체의 수장을 암살하게 됩니다. 그 대가로 그녀는 15년간 감옥에 수감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문관에게 강간당한 그녀는 그의 아이를 배게 되고, 이때 쌍둥이 남매를 낳게 됩니다.


그 이후 감옥에 나온 그녀는 저항군에게 공을 인정받아, 새나라에서 새로운 신분으로 살게 됩니다. 그렇게 그녀는 이국에서 쌍둥이를 키우며 여태껏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수영장에서 태어나자 이별한 아들을 찾게 됩니다 , 발 뒤꿈치에 남긴 문신을 발견하고, 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가 자신을 강간한 고문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그토록 찾던 아들과, 자신이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그 충격으로 정신이 나가게 됩니다. 그렇게 쌍둥이는 자신들의 형이자 아버지에게 편지를 전달하고, 어머니가 자신들에게 남긴 유언장을 전달받으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쌍둥이가 마주하게 된 진실. 나왈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전 이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편입니다. 비극적인 운명에서도 진실에 눈 가리지 않고,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과 그녀의 위대한 사랑에 진한 여훈이 남는 영화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함께 영화를 본 어머니는, 나왈이 왜 진실을 말해야 했는지 모르겠다 하셨습니다. 자신이 그 진실을 밝힌다면, 쌍둥이와 맏아들은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없을 텐데, 자신이 숨긴다면 아무도 몰랐을 진실을 왜 밝혀야 하는 것이냐는 말이었죠. 전 이 말을 듣고 지난번 글에서 이야기한 올드보이가 생각났습니다. 처한 상황이 매우 유사하지만 올드보이에서는 진실을 숨기고, 그을린 사랑에서는 진실을 밝히죠. 전 이 차이가 영화가 말하고자 한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왜 나왈은 진실을 말해야 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나왈이 쌍둥이에게 남긴 편지를 통해 풀어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이야기의 시작은 어디일까.
너희가 태어날 때일까? 그렇다면 그 시작은 공포란다.
너희 아버지가 태어날 때? 그러면 그 시작은 위대한 사랑이란다.


나왈은 감옥에서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 자신의 배를 내려치며 유산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이를 낳게 되었죠.  나왈에게는 쌍둥이는 자식이지만, 자신이 강간당했던 순간을 나타내는 징표이기도 했을 겁니다. 영화의 초반에 아들은 '엄마가 그리 좋은 엄마는 아니었잖아'라는 대사를 하는데, 이 부분에서 나왈이 쌍둥이들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이 드러나고 그들의 아버지는 강간범이 아닌, 자신이 평생 사랑한다 맹세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나왈은 이 이야기의 시작은 감옥에서의 공포가 아닌, 큰 아들이 태어났던, 자신이 사랑했던 순간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너희 이야기의 시작은 약속이란다. 분노의 흐름을 끊어내는 약속


나왈의 삶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종교의 차이로 시작된 갈등과 전쟁. 그 혼란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감옥 속에서 고통받았습니다. 그녀는 이런 분노의 흐름에서 침묵하지 않고, 그 흐름을 끊어내기로 한 것이죠. 그 흐름을 끊어내는 위해서 진실을 외친 것입니다.


함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란다


사랑하지 못했던 자신을 용서받고, 사랑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자 한 나왈은 이렇게 편지를 통하여 진심을 전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마디를 남기죠. "함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란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서로 증오하고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이 한 줄이 영화가 말하고자 한 메시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로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기도 하죠. 영화는 이러한 세상을 그려내고, 사랑을 하는 나왈을 통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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