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비행기 참사 - 그날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눈이 심하게 내리는 어느 날, 독일 뮌헨-리엄 공항에서 비행기 한대가 이륙 준비를 하고 있다. 비행기 안에는 유명 인사들이 탑승하였는지, 비행기 주변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 기자들로 가득 찼다. 그리고 오후 3시 10분, 비행기는 이륙을 하기 위해 한참을 활주로에서 달렸고 드디어 이륙에 성공하였다. 그렇게 순조롭게 비행하는 듯하였으나, 비행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비행기는 인근 민가와 충돌하게 되어 폭발하게 된다. 관제탑과 주변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고, 빠르게 엠뷸런스가 도착했고 부상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시도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구급대원들은 부상자들을 보고 더욱 충격에 빠지게 된다. 부상자들은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들, 그 외 맨유 서포터와 기자진들이었다....
바로 1958년 2월 6일에 발생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역사상 가장 비참한 사건인 비행기 참사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즈베즈다와의 유러피언 컵 8강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뮌헨 비행기 참사라는 사상 최악의 비극적인 사건을 맞이한 것이다. 맨유가 당한 안타까운 사건의 배경은 이러하였다.
당시 1950년대 잉글랜드 축구 협회(FA)는 보수주의적인 관점과 축구 종주국이라는 자신들의 영향력에 대한 거만함에 빠져 프리미어 리그 우승팀들에게 유러피언 컵의 출전을 금지시키는 명령을 하였다. 그러나 맨유의 맷 버스비는 세계적인 팀들 간의 경쟁력을 이유로 협회의 말을 무시하고 유러피언 컵 일정을 강행하였다. 일차적으로 맨유와 잉글랜드 축구 협회의 충돌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맨유는 당시 유러피언 컵과 리그 일정을 병행하기에는 일정이 매우 촉박하였고, 맷 버스비는 협회에 리그 일정을 수정해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잉글랜드 협회는 자신들의 의견을 무시하였다는 이유로 일정을 수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맨유에게 페널티를 부여하겠다고 하였다. 따라서 맨유는 이러한 촉박한 일정을 강행하여야 했었다. 그렇게 맨유는 유리피언 컵 8강전을 마치고 서둘러 즈베즈다에서 잉글랜드로 돌아가는 도중은 비행기는 연료 충전을 위하여 뮌헨을 경유하게 되고, 뮌헨에서 맨체스터로 출발한 직후 비행기가 전복되어 인근 민가와 충돌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사실상 FA의 강압적인 경기 진행 요구는 직접적인 뮌헨 참사 사건의 원인은 아니지만, 이러한 비행기 사고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맨유는 당시 악천후로 비행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에서도 fa의 페널티 부여를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이륙을 강행하였으며, 이는 뮌헨 비행기 참사의 예견된 사건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비행기 참사 사고에도 불구하고 FA는 현대에 들어서까지 이러한 보수적인 입장을 고치지 않고 있다. FA는 이러한 보수적인 입장을 고치지 않는 다면, 현재 다양한 유럽 대항전에 참가하고 있는 잉글랜드 클럽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뮌헨 참사와 같은 비극적 사건이 되풀이될 수 있다.
뮌헨 비행기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은 비행기 프로펠러 부분의 슬러시(slush) 상태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슬러시 상태란 따뜻한 기온의 외부환경이나 어떠한 화학적 처리로 인하여 눈의 딱딱한 성질이 변질되어 점성이 되는 상태로, 당시 사건이 일어난 2월 8일 뮌헨은 눈이 오는 날씨였고 슬러시 상태가 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슬러시 상태는 비행기 내부의 엔진과 프로펠러 부분에 굉장한 악영향을 끼쳤다. 눈이 묻어 무게가 증가하게 된 프로펠러 부분은 이륙에 충분한 속도를 내지 못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당시 비행기는 두 번의 이륙 시도에서 실패하고 세 번째 이륙 시도에서 활주로를 달리지만 이륙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속도를 내며 나아가다 인근 민가와 충돌하고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이 참사로 인하여 총 23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는데, 그중 맨체스터 선수들이 8명, 맨체스터 구단 스탭 3명이 희생당하였고, 기자진들은 알프 클락을 비롯하여 총 8명이 희생당하였다. 또한 그 외 승무원이나 여행 대행사 직원들을 비롯하여 총 4명이 희생당하였다. 그 외 생존한 사람들 중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조니 베리와 제키 블렌치 플라워는 사고 후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축구장을 떠나게 되었다.
(1) 비운의 잉글랜드 스타, 던컨 에드워즈 Duncan edwards
당시 사망 전 던컨 에드워즈 Duncan edwards 선수는 잉글랜드의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그는 다른 선수들에 비하여 월등히 좋은 피지컬과 활동량을 가졌으며 경기를 읽을 줄 아는 축구 지능과 준수한 패스 능력으로 어느 포지션이든 무리 없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맷 버스비 감독 또한 그의 전술에서 에드워즈 선수를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그를 펠레, 마라도나 선수와 견줄만한 선수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그는 뮌헨 비행기 참사 사건으로 중상을 입고 끝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이 비행기 참사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당시 뮌헨 비행기 참사로 인하여 세상을 떠난 던컨 에드워즈 선수는 사고 직후 생존했던 인물이지만 갈비뼈, 골반, 다리가 모두 부서졌고, 폐에도 상당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는 즉시 병원으로 이동하였고 잠시 의식을 되찾자, 그의 옆에 있던 맨유의 수석코치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코치님, 다음 경기는 세시에 시작하나요?
-당시 사고 직후의 던컨 에드워즈 -
그의 말에는 생사를 헤매는 위독한 상황 속에서도 그가 얼마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클럽을 사랑하고, 축구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말이었다.
(2) 맨시티가 페르난지뉴의 트윗에 분노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
약 5개월 전, 맨시티의 페르난지뉴 선수는 뮌헨 비행기 참사 63주년인 당일 비행기 참사를 조롱하는 트윗을 올려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평상시였으면 단순히 해프닝으로 넘어갈 일이었지만, 이는 참사 당일에 올린 트윗으로 이모티콘에는 참사를 조롱하는 듯한 이모티콘을 사용하여 맨유팬들이 분노하였고, 이후 이는 단순히 해프닝으로서 마무리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할 것은 맨시티 또한 이러한 뮌헨 참사의 희생자들이 있으며, 슬픔을 공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왜냐하면 비행기 참사 희생자 명단에 프랭크 스위프트(frank swift)가 있기 때문이다.
사망 당시 news of the world의 기자였던 프랭크는 맨체스터 시티 소속으로 1933년부터 1949년까지 총 338경기를 소화한 레전드 골키퍼였다. 1998년 잉글랜드 100주년을 맞이하여 올타임 레전드 탑 100을 선정하는 행사에서도 Billy Meredith , Colin Bell , Bert Trautmann과 함께 맨시티 출신 레전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러던 그는 1948-49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news of the world의 기자로 들어가서 경력을 쌓게 된다. 그러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에 동승하게 되고, 뮌헨 비행기 참사로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따라서 프랭크 스위프트를 알고 있는 시티 팬은 절대로 뮌헨 비행기 참사를 조롱할 수 없으며 함께 슬퍼해야 될 일로 생각해야 된다. 그것이 비행기 참사에 희생되었던 프랭크 스위프트에 대한 조의의 표시이자 명예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뮌헨 참사 이후의 맨유는 수많은 선수들을 잃었으며, 남아있는 선수 또한 정신적 피해를 겪으면서, 팀의 존립 위기까지 빠지게 된다. 그리고 몇몇 라이벌 팀들이 같은 축구 클럽이라는 동질성을 고취하며, 맨유를 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먼저 이웃나라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당시 클럽의 전설, 푸스카스를 무상 임대 형식으로 맨유로 보내는 형식으로 도움의 손길을 베풀려 하였다. 그러나 당시 fa의 규정에는 영어를 할 수 없다면 자국리그에서 뛸 수 없다는 기묘한 규정이 존재하였고, 이로 인하여 레알 마드리드의 무상 임대 정책은 무산되고 만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득점왕이자 영어 구사가 가능한 디 스테파노를 다시 한번 무상 임대 형식으로 보내 줄려 하였지만, 당시 맨유의 급락한 재정 상태로 인하여 무산되게 된다. 그러자, 레알 마드리드는 이번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을 불러들여 친선 경기를 열게 된다. 이는 당시 열악하였던 맨유의 재정상태를 회복시키기 위한 레알 마드리드와 축구팬들의 기금 행사였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다시 한번 유럽 최고의 무대로 뛸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자부심을 일깨우게 해주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잉글랜드에서는 당시 맷 버스비 감독과 가장 친한 빌 샹클리 감독(몇몇 기사에서는 리버풀의 감독으로 나오는 데, 당시 뮌헨 참사가 있던 1958년, 빌 샹클리 감독은 허더스 필드를 맡고 있었고, 1년 뒤인 1959년에 리버풀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이 자신의 클럽의 5명의 선수들을 무상으로 임대해주겠다고 말하면서 맷 버스비에게 힘을 주었다.
we will never forget,
The flowers of manchesters
래시 포드 선수의 뮌헨 참사 추모글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인 뮌헨 참사 사건을 기리기 위해 해당 클럽인 맨유와 세계 여러 나라들은 참사를 추모하는 건물을 건설하거나, 꾸준히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다. 먼저, 잉글랜드 내에서, 맨유는 참사가 일어난 이후부터 매해 2월 6일 올드 트레포드에서 뮌헨 참사에 대한 추모식을 열고 있다. 특히 2018년 뮌헨 참사 60주년에서는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많은 서포터들과 축구팬들이 참여하였는데, 그중에서는 리버풀의 전설 케니 달글 리스도 참여하면서 이러한 뮌헨 비행기 사건이 잉글랜드 전역에서 비극적인 사건인지 조명해준다.
그리고 동시간대, 맨체스터가 아닌 비행기 사건이 일어난 뮌헨에서 추모식이 진행되었다. 추모식에는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인 칼 루메니게 회장이 참여하면서 라이벌팀이라는 경쟁의식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의 축구 클럽이라는 동질성을 고취하였다.
추모식에서 칼 루메니게 회장은 "우리는 60년 전 참사를 잊어본 적이 없다. 프란츠 베켄바워(바이에른 명예 회장)와 회네스 회장은 물론 나 역시 언제나 609편 비행기 사고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일이 우리의 의무라고 간주하고 있었다. 친애하는 맨유 팬들에게 이 메시지를 보낸다. 당신들이 우리가 오늘 뮌헨 비행기 참사의 애도를 함께 하는 걸 허락해주길 희망한다. 우리는 당신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Wir werder Euch nie Vergessen)" 라며 깊은 애도를 표하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는 추모식 외에도 추모를 위한 터널이 배치되어 있다. 맨유는 뮌헨 참사를 기리기 위해 그들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드에서 동쪽 스탠드에 위치한 터널을 "뮌헨-맨유 터널"로 명칭을 변경하고 터널 내부에는 뮌헨 참사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과 당시 잉글랜드 최고의 재능으로 인정받던 던컨 에드워즈를 포함하여 당시 희생당한 선수들에 대한 설명을 전시하였다.
끝으로 뮌헨 비행기 참사는 축구라는 카테고리를 넘어 많은 인명 피해를 발생시키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인명 사고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으로 기술의 발전이 어느 정도 도달되었다고 평가받는 현대까지도 비행기 사고는 끝나지 않는 인재(인간으로 인하여 발생한 재해)이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비행기 사고를 조사해보았을 때 항공안전네트워크에 따르면 2010년에서 2019년까지 비행기 사고는 총 226건으로, 이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자는 총 4221명이다. 하루 평균 교통사고가 국내 기준(2018년) 608건인 것을 고려해보았을 때 상당히 적은 수치라고 할 수 있지만 비행기 사고 1건당 인류에게 주는 금전적 피해, 인명적 피해는 너무나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