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손으로 쓰는 거라곤 메모나 낙서, 편지처럼 짧은 기록들 뿐이다. 손으로 쓰다 보면 긴 호흡으로 글을 쓰기가 힘들기도 하고, 쓰다 보면 너무 있는 그대로의 생각들을 적게 돼서 그 글을 내 안의 문학인에게 통과 받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손으로 쓴 것보다 노트북으로 쓴 글이 더 마음에 드냐, 그건 또 아니다. 왠지 모르게 노트북으로 쓴 글엔 오히려 날 것의 느낌이 너무 없었다. 그렇다고 손으로 길게 글을 써보는 연습을 해보자니 강제성이 없었다. 나와의 약속을 꾸준히 지킬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심만 한가득 품은 채 발견한 '쓰는 하루' 미션. 처음엔 이걸 50일 동안이나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분명 그 이후의 나는 전과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걸 미루더라도 하루에 한 페이지씩 꼬박꼬박 채워냈다.
나는 이곳에 그리 특별한 것들을 적지 않았다. 화려한 어휘보다 나의 자연스러운 표현을 담는 데 집중했고, 그래서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을 것 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얘기를 했다. 나의 게으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어리석음도 그대로 드러났다. 마지막 글인 '오십 번째 글'도 마지막이라고 그리 인상 깊지 않았다. 다만, 각각의 날들이 지금의 나를 잇게 했음을, 50일 저 너머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이 조금씩 모이고 쌓여 어떤 거대한 형체를 만들어 냈음이다. 그 형체가 무엇인지는 앞으로 살아가며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점점 흐릿한 저 무엇이 선명해지고 명확해지면 나도 엄청난 도약을 하게 되겠지. 아직은 때가 아니다.
작심 3일도, 100일도 아닌 50일간의 기록은 미지의 무언가를 바라보며 특정하게 하는 힘이 있었고, 그래서 수많은 불필요한 자극에서 벗어나 눈앞에 있는 것들에 집중하게 했다. 글에 힘이 있듯 적는 행위에도 분명히 힘이 있었다. 정제되지 않은 것들을 어느 정도 털어내야, 하루 할당량을 그렇게 비워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만족의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늘 비우며 썼고, 앞으로도 그리 쓸 것이다. 이 소소한 다짐을 이곳에 남겨본다.
*브런치북 제작 예정이었으나 목차 30개 제한으로 메거진으로 남겨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