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번째 글

2023/09/07_오후 2시 40분

by 빈아

어제 볼펜이 거의 다 달아서 이걸 끝까지 쓸 수 있을까 조마조마하며 겨우 글을 마쳤는데, 집에 오니 똑같은 종류의 새 펜이 책상 구석에 꽂혀 있었다. 다행히 마지막 글은 마음껏 펜을 움직이며 쓸 수 있을 것 같다.


'하루 읽기'를 하며 글 쓰는 건 이어가지만, 이렇게 한 바닥을 손글씨로 채우는 건 당분간 보류다. 계속하라면 할 수 있지만 이 스케치북 대신 책을 들고 다닐까 한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까.


오늘은 이 글들을 담을 브런치 북의 프롤로그를 쓰며, 그 시작을 열 예정이다. 노트북을 일부러 안 가져왔다. 손으로 끝까지 마무리하고자 하는 스스로가 정한 집념이다. 사이트에 옮기며 수정 작업을 거치겠지만, 날 것 같은 느낌은 최대한 유지하려 한다. 그렇게 50개의 글을 다 옮기고 나서 에필로그도 쓸 예정인데, 그 역시 손으로 쓰지 않을까. 이 스케치북의 뒷장들은 아직 새것이니, 마음껏 끄적여 볼 만하다.


(이 책의 목차는 없다. 그날그날이 그날이고, 순간들 모두 개별성이 있어 묶을 요소가 없다.)


50일의 마지막 글엔 굉장히 특별한 소감을 나열할 거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아무 말이나 쓰며 별거 아닌 문장으로 마무리 짓고 있다. 글 쓰고 책 읽기 좋은 곳에 와 있지만 할 일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여유는 잠시 미뤄두려 한다. 오늘도 나는 오늘의 일을 해야 하니까. 열심히 쓰고 그리고 읽으며 나를 다듬어야 한다.


생각해 보니 여기에 글을 쓸 땐 다시 위로 올라가서 처음부터 읽어보는 행위를 생략했던 것 같다. 처음 며칠은 손으로 쓰지만 타자기를 두드리는 것처럼, 혼자 쓰지만 모두가 보는 것처럼 머릿속으로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는데, 뒤로 갈수록 내가 펜을 움직인다기보다 펜이 이끄는 대로 남겨지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지켜봤던 것 같다. 그래서 의미가 크다. 이런 글을 언제 또 써볼까. 솔직하고 꾸밈없고 스스럼없는, 다정하고 날카로운, 부드럽고 강직한 내 안의 나를 언제 또 마주할 수 있을까.


매일 글과 함께하자. 이렇게 얻은 것들이 날아가 버리지 않게, 늘 날 것의 나를 보호하고 지켜보며 쓰자. 그리자. 읽자.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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