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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cent Jan 17. 2021

63아트. MUSEUM OF COLORS. 21년1월.

크리스티나 마키바, 이환희, 린 더글라스, 윤새롬, 아트놈, 예너 토룬.

63아트 미술관. MUSEUM OF COLORS. 크리스티나 마키바 Kristina Makeeva, 이환희, 린 더글라스 Lynne Douglas, 윤새롬, 아트놈 Artnom, 예너 토룬 Yener Torun. 21년 1월.




63아트 미술관에 처음 와보았다. 2008년에 건물 60층에 개관했다는데 처음 와보는 것이 의아할 정도로 그간 좋은 전시를 많이 선보여왔다. 정말 어릴 때 63빌딩에 온 이후로 이곳을 다시 찾은 것은 거의 처음이다. 특히 롯데 월드타워가 생긴 이후에는 랜드마크라는 지위까지 희미해져 더욱 관심을 잃었다. 한때는 우리나라 최고층 전망대로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을 텐데 이제는 IFC몰이나 여의도 파크원 같이 새로 생긴 높고 세련된 건물에 주눅이 든 것처럼 덩그러니 서있는 모습이 다소 쓸쓸하게 느껴졌다.



티켓팅을 하고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60층으로 직행하는데 이 자체가 신선한 경험이다. 아마 우리나라, 어쩌면 세계에서 제일 높은 미술관이 아닐까 싶다. 높이가 있다 보니 뷰도 탁 트여있고 시원하다. 얼어붙은 한강 표면은 마치 강요배 작가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장난감처럼 보이는 자동차들과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아파트 건물들을 보니 참 우리가 아웅다웅, 열심히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좌) 한강 전경 (우) 강요배, 움부리-백록담, Acrylic on Canvas, 259 x 194 cm, 2010



어릴 때 누군가 좋아하는 색을 물으면 주황이라고 이야기했다. 빨강처럼 강렬하지도 않고 노랑처럼 밋밋하지도 않으면서 그만의 튀는 듯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점에 끌렸다. 지금은 좋아하는 색이 뭐냐고 한다면 답할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색이 각각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고 어디에 어떻게 쓰이냐에 따라 그 매력은 무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Mark Rothko, Untitled, Oil on Canvas, 112.4 x 94.9 cm, 1951 / Orange and Tan, 206.4 x 106.6 cm, 1954


로스코의 주황, 노랑은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보는 이가 작품 속에 스며들게 만든다. 살아 숨 쉬는 듯한 색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그림과, 또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 작가와 교감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분명 '색'만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게 해 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좌) Anish Kapoor, Dismemberment, Site 1, COATED PES - FERRARI 1202T2 RED, 4,300㎡, 2003 - 2009 (우) Henri Matisse, The Lute, Oil on Canvas, 59 x 79 cm, 1943  


아니쉬 카푸어는 빨간색에 매료되었고 우리 몸 안에 흐르는 색이며 색의 중심에 있다고 했다. 앙리 마티스의 붉은색에서는 원색의 깨끗함, 강렬함이 느껴짐과 동시에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좌) Pablo Picasso, Portrait of Angel Fernández de Soto, Oil on Canvas, 70.3 x 55.3 cm, 1903

(우) 이지은, Le Grand Bleu, Oil on Canvas, 33.3 x 24.2 cm, 2018


파블로 피카소의 청색시대 작품에서는 친구를 잃은 절망과 우울함, 불안함이 캔버스 밖까지 느껴진다. 피카소 본인도 그 시기의 주제가 빛이나 색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는 내적인 필연성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반면 이지은 작가의 파란색은 시원함, 광활함과 같은 속이 뚫리는 경험을 선사한다. 빽빽한 회색 건물들 사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우리에게 쉴 공간을 제공하듯 아무것도 없는 바다 자체, 하늘 자체를 대범하게 표현한다.




이번 전시는 제목처럼 '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9개의 섹션에서 검정, 빨강, 분홍, 파랑, 초록 등 여러 가지 색을 테마로 각각의 색감이 주는 아름다움을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 잘 표현했다. 다만, 회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회화 작품이 없는 것은 좀 아쉬웠다.


전시장 입구


"수많은 색채들이 어울려서 하나의 명작을 만들어낸다."는 헤르만 헤세의 말을 인용하여 '작품 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컬러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껴볼 수 있도록'한다는 기획의도를 설명한다. 입구의 디자인 또한 책을 펼친 것 같이 표현하여 마치 '색의 세계'로 빠져드는 듯하다.



01. 우아한 초대, BLACK


첫 번째는 검정이다. 깔끔하고 무난하고 세련된 색이다. 한편 모든 색을 흡수하는 색이며 모든 색의 우위에 있는 듯한 느낌도 준다. 러시아 사진작가인 크리스티나 마키바의 작품들이 캔버스에 프린팅 되어 있는데 굉장히 아름다운 사진들이 많다. 다만, 작품과 검정이라는 테마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아한 초대라는 부제목처럼 마치 관객을 초대하는 듯한 이미지로 구성한 것은 반갑고 좋았으나 테이블 세팅이나 의자가 약간은 조악한 느낌도 들었다.


(좌) Kristina Makeeva, Romantic Roof, Print on Canvas, 180 x 150 cm, 2017, Hotel Duqeusne Eiffel, Paris, France (우) Bud on the Desert, Rub Al Khali Desert, United Arab Emirates

(좌) Flowing Magic Snowflake, Print on Canvas, 180 x 150 cm, 2018, Red Square, Moscow, Russia

(우) Sleeping Beauty in Ice Cave, Print on Canvas, 180 x 150 cm, 2019, Lake Baikal, Russia


크리스티나 마키바는 파리, 바이칼 호수, 카파도키아 등 세계의 각지에서 "우리 삶에 항상 마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신념에 따라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모델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반인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색감과 다양한 명소를 통해 개인적인 경험을 반추하며 감상하는 것도 좋다.



이환희, 희망, (Hugh, 14 x 18 x 46 cm / Helen, 15 x 11 x 36 cm), Ceramic, 2012
© 2019 이미저리 코드.


안쪽 벽면에는 '도자라는 물질을 매개체로 현대인의 삶을 빚어내는' 세라믹 아티스트 이환희 작가의 작품이 있는데 설명을 읽어보아도 왜 여기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저리 코드'라는 브랜드를 통해 고급스럽게 격식 있는 테이블웨어를 판매하기도 한다. 작품 제목도 사람 이름으로 되어있는데 대상을 의인화하여 식기류에도 고유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부여한다고 한다.



02. 레이디 파파베르, RED

다음으로는 빨강인데 파파베르는 프랑스어로 양귀비라는 뜻이다. 차분한 벽지와 도톰한 카펫, 캡션까지 붉은색 분위기로 조성이 잘 되어있고 금색 액자들이 고풍스러운 느낌을 더한다. 다만 탁자에 놓인 모형 과일들이 조금 거슬린다. 여기도 마키바의 사진 작품이 계속된다.

 

(좌) "When all the poppies go to sleep, the most beautiful one wakes up.", Print on Paper, 118.9 x 84.1 cm, 2019, Almaty, Kazakhstan (우) Red-Red-Red Red Square, Print on Paper, 118.9 x 84.1 cm, 2018, Saint Basil's Cathedral, Moscow, Russia




빨간 방을 나서면 각양각색의 분홍색 구역을 지난다. 분홍색의 역사와 의미를 시작으로 왼쪽에는 여러 문학 작품의 인용구가, 오른쪽에는 색상 이름이 적혀있다. 예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이다. 다만 멋들어진 문구들이 분홍색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03. 꿈결을 걷는 시간, PINK



네 번째는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파란색이 우리를 맞는다. 끊임없이 변하는 바다의 색으로 블루를 묘사하는 설명은 참 시적이다. "그 순수한 푸른색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당신의 추억 속, 어느 서랍에 보관해 두었던 바다의 파도 소리가 들려올 것"이라고 한다. 여기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 린 더글라스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연, 특히 바다와 하늘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사진들이 많다.

 

04. 내 기억 속의 바다, BLUE


그림으로 예술을 시작했으나 지금은 빛이 만들어내는 무한한 색상을 포착하는 사진가로 활동 중이다. 작품을 보면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 있는 듯한데 아리송하기보다는 감상자를 편하게 해주는 폭신한 느낌을 준다. 부드럽게 펼쳐진 색을 보면 고요하고 잔잔한 물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안에 푹 빠질 수 있는 작품들이다.


(↖) Lynne Douglas, Skyefall II, Print on Paper, 50.8 x 76.2 cm, 2017 / (↗) Spindrift I / (↙) Skye Steel I, 2018 / (↘) New Wave

A Sigh of the Sea, Print on Paper, 76.2 x 114.3 cm, 2018 / Hebridean Water Colours
Angel's Footsteps, Print on Paper, 76.2 x 76.2 cm, 2018 / The Promise


미술관이 60층에 있다 보니 창문만 있어도 하나의 작품이 되는 듯하다. 이러한 이점을 잘 살릴 작품이 다음에 오는 윤새롬 작가의 <8월의 어느 날>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의 색을 여러 농도의 색으로 염색한 아크릴 기둥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창문을 통해 시원스럽게 들어오는 햇빛을 맞는 기둥의 그라데이션은 걸음을 디딜 때마다 조금씩 다른 색을 보여준다. 


05. 8월의 어느 날, SUNSET / 윤새롬, 8월의 어느 날, 아크릴, 설치, 2019


06. 봄날의 산책, VIVID / 아트놈


팝 아티스트 아트놈의 발랄한 디자인을 지나면 예너 토룬의 컴퓨터 그래픽 같은 사진들을 볼 수 있다. '도심의 공업지대와 개발 지역을 누비며 건축물들을 발견, 기하학적 특성을 포착하여 선과 면, 색채로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는 작가는 칙칙한 도시 속에서 아이들 놀이터 같은 색들을 지닌 대상을 찾아 즐거움을 선사한다.


07. 순간의 마법, RAINBOW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밝아지는 사진들이다. 몬드리안의 추상이 현대의 구상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작품 속에 나타나는 면과 색의 조화는 작가가 얼마나 세심하게 구도를 고민하고 적정한 시기를 기다려서 사진을 찍었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처음 보았을 때 어떤 대상은 촬영 후 색이나 패턴을 새로 입히는 후속 작업을 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채도가 높고 맑은 원색이 들어간 사진들이 많다. 하지만 작품 속의 건축물이나 장소가 모두 실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 주변, 일상에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이 스며있는지 새삼 깨닫게 한다.


(↖) Yener Torun, Sharper than a Razor, Eyes made of Lasers, Bolder than the truth, Diasec, 30 x 30 cm, 2017 / (↗) Flea Circus #3, Diasec, 70 x 100 cm, 2019 / (↙) Head in the Cloud, Print on Paper, 80 x 100 cm, 2016 / (↘) Expose, Print on Paper, 60 x 60 cm, Print on Paper, 2015 ⓒYener Torun. Coutesy of ⓒ Arte Globale Limited. All rights reserved.



나도 사진을 잘 찍는다거나 사진에 취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가끔 좋은 경관이나 대상이 있으면 핸드폰 카메라로 담는데 돌아보면 생각보다 괜찮은 것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항상 사진보다 회화가 좋고 전시나 작가도 사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회화에만 집중했었는데 그동안 찍었던 (그림 사진이 아닌) 사진들을 보니 사진 자체의 매력에 빠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서울 하늘


삿포로 폭포 / 나무


하노이 거리


호이안 거리


나트랑 마트


파리 볼로뉴 공원 / 센 강 / 튈르리 정원


파리 물랑루즈 / 지하도


양평 호수 / 여주 골프장 / 원주 스키장


뭐 갑자기 전시 리뷰하다가 개인 사진 나열이 되어버린 것 같지만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꼭 미술관이 아니더라도 우리 가까이 '아름다움'이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다. 꼭 짜인 공간 속의 완성된 작품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대상들 자체가 우리 삶의 소소한 활력이 될 수 있다.



초록을 주제로 한 여덟 번째 섹션도 비슷한 맥락으로 자연을 표현하고 있다. 바로 위의 사진들에서도 알 수 있듯 녹색은 인간이 가공하지 않은 것들 중에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색이다. 'green'이라는 어원 자체도 'grass'와 'grow'에서 유래하여 생장하는 자연을 뜻한다고 한다. 이곳은 종이가구 제작회사인 '모인다'의 'Ih paper'브랜드와 수입 벽지 제조업체 '뉴하우징'에서 꾸몄다.



'머물러 쉴 시간조차 없는 요즘,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위안을 찾는 산책길과도 같은 공간'이라는 설명처럼 차분한 자연의 이미지와 풀 사이에서 잠깐 앉았다가는 곳이다. Ih paper의 종이가구가 유독 눈에 띄었는데 종이로 만들어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무게는 생각보다 있고 온라인몰에서 판매하는데 가격도 디자인 때문인지 만만하진 않다.



마지막은 여러 색지를 붙이고 대가들의 색에 대한 인용구와 함께 마무리된다. 이번 전시는 색을 좋아하는 나에게, 또는 누구나에게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는 공간과 작품들을 제공한다. 또한 회화가 없어 아쉬웠지만 사진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윤종신, 빈지도의 The Color가 생각나는 전시였다.


09. 너머의 환상, COLOR PAL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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