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약 13년 전에 썼던 글...
오늘 오전, 의뢰인과 상담을 하는데
의뢰인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돈 왜 안 갚냐고 했더니.. 그냥 법대로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변호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작성할 서면이 있어 자료를 찾고 있는데
우연히 이 글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에 어딘가에 제출했던 글인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기억' 차원에서 이 게시판에 옮겨두려고 한다.
"그렇다면 법대로 해."
"네, 그럼 법대로 합시다."
일상에서 이런 말이 오간다면 어떤 상황일까?
대개는 회복 불가능한, 소위 '갈 데까지 간 상황'을 의미한다.
한번 싸워보자는 선전포고인 셈이다.
나 역시 이런 말이 오간 상황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법대로 한다'는 말이 이처럼 적대적 의미로 쓰이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함부로 법을 운운하는 것은 금기에 가깝다.
하지만 법을 공부해온 입장에서는
언제나 근본적인 의문이 있었다.
왜 법대로 하는 것이 싸움의 시작이 되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법대로 하기 전'에는 어떤 규범이 적용되는가?
그런 상황이 과연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현재 우리 법체계는 서구의 법을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서구의 전통과 가치를 담고 있으며,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법 관념과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서구의 법체계는 어떤 전제에서 출발할까?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들은 이 세상을 천국이나 이데아에 비해 불완전한 곳으로 인식한다.
그 불완전성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지극히 정상적으로 본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법제도는 당연히 필요하고,
이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 분쟁을 해결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당연한 권리다.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불이익을 받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간주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반면 우리나라의 법 문화는 전혀 다른 전제에서 출발한다.
유교의 영향으로 '성인군자'에 의한 '도덕적 통치'를 이상으로 삼아왔기에,
법은 주로 대명률 같은 형법에 집중되었다.
18세기 실학자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이렇게 썼다.
송사를 지혜롭게 잘 해결하는 현감은 하수이며,
아예 송사 자체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현감이 가장 훌륭한 목민관이라고.
그런 현감이 되려면 수양을 통해 모두가 존경하는 성인군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서구와 달리 분쟁 발생 자체를 비정상적 상황으로 간주해 금기시했다.
오히려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꾹 참고 기다리는 사람이
결국 복을 받는다는 관념이 일반화되었다.
자연히 분쟁 해결 수단인 사법제도 연구는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남다른 근면성과 노력으로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서구가 100년 이상 걸려 이룩한 것을 그 절반 기간에 달성했다.
소위 '압축 성장'이다.
하지만 이런 경제적 발전에 뒤따라야 할
사회적·문화적 시스템은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부분은 경제와 달리 압축 성장이 불가능한 영역이니까.
결국 현재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는 바로 이 둘 사이의 간극에서 비롯된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으나,
이를 뒷받침할 사회적·문화적 시스템은 아직 과거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다.
내가 이야기하는 '법에 대한 인식' 역시 그 문제점 중 하나다.
이제 앞서 제기한 의문에 답해보자.
첫째, 왜 우리 사회에서 '법대로 하자'는 말이 싸움의 선전포고가 되는가?
그것은 '법대로 하자'가 곧 '분쟁 상태를 야기하겠다'는 의미가 되고,
이는 전통적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너에게 법을 적용하겠다'는 말은
'공적 기관에 고발해 너에게 형벌을 가하거나 이득을 빼앗겠다'는 공격적 의미로 이해된다.
이는 소위 '송사'를 보는 우리의 전통적 인식이기도 하다.
둘째, '법대로 하기' 이전에는 어떤 규범이 우선시되는가?
아마 도덕이나 관습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유교의 영향으로
그것이 우선되는 사회를 정상적이고 건전한 사회로 간주해왔으며,
이런 전통은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소위 '상식'이라는 개념도 자주 동원된다.
상식이란 '너무나 당연해서 말할 필요도 없는 것' 정도로 이해되고 있는 듯하다.
국가에 의해 강제되는 법이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이어져온 공감대적 가치인
도덕·관습·상식이 우선 적용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하지만 오늘날은 왜 이런 자연스러움이 깨지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다양화' 때문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른 문화를 접하면서
구성원 각자의 성장 배경, 생각, 이해관계가 너무 달라졌다.
과거부터 이어온 도덕이나 관습이
급격히 변한 오늘날 상황에 적용하기 어려워졌고,
소위 '상식'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달라진 탓이다.
셋째, 현재의 이런 상황이 과연 바람직한가?
함부로 말하기 어렵지만,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도덕과 관습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다양한 이해관계가 발생하고 서로 충돌하며,
이런 충돌의 존재는 당연하고 한편으로는 바람직하다고까지 말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충돌을 해결하기 위한 법체계는 필수적이며,
당연히 이 시대를 사는 시민들은
법과 법체계를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의미에서의 '법' 개념과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는 '법' 개념 사이에는 괴리가 있으며,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무작정 서구 개념에 우리 전통을 맞추거나,
혹은 우리 전통에 서구적 법체계를 맞추자는 식의 극단적 논리는 해답이 될 수 없다.
두 극단 사이 어딘가에 있을 절충점을 찾아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줄여가는 노력이야말로
우리 사회, 특히 법조인들이 해나가야 할 과제다.
오늘날 변호사 수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많지만,
일반인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법률 서비스 공급자가 늘어나고
그들이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와 친숙한 존재로 자리 잡으면서,
일반인들도 부담 없이 법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 삶은 더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법 교육의 대중화와 강화'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인 대상 교육은 물론이고,
특히 초·중·고교에서 생활법률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해 가르칠 필요가 있다.
영어나 수학보다 법률 지식이
일상생활에서 활용도가 훨씬 높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것이야말로 분쟁이 일상화된 현대사회에서
국민들이 자신의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본 능력을 길러주는 길이다.
더 나아가 이런 교육을 통해 양성된 깨어 있는 시민들은
점차 '있어야 할 법'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는 곧 실질적 법치주의로 연결되어
그 영향력이 입법이나 행정에까지 파급될 수 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 사회가
경제 영역뿐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정신적 영역까지 발전을 이루어,
'법대로 하자'는 말이 현재와 달리
긍정적 의미로 사용될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