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인탁구장에서 발견한 작은 모순에 대하여
목요일 저녁이었다.
광안리 해변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무인탁구장을 발견했다.
요즘은 '불금' 대신 '불목'이라는 말이 유행한다던데,
주변 횟집과 술집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탁구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동행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둘 다 탁구를 잘 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유남규, 현정화 세대이므로 라켓을 잡아본 경험은 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겨우겨우 공을 넘겼다.
삼십 분에 팔천 원. 땀도 나고 즐거웠다.
탁구를 치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문득 창문 쪽으로 시선이 갔다.
두 개의 창문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왼쪽 창문에는 빨간 스티커. '금연구역 - 창문을 열지 마세요.'
오른쪽 창문에는 다른 스티커. '습도 조절을 위해 창문은 열어주세요.'
잠시 멈춰 섰다.
두 창문사이의 거리는 오센티미터 남짓이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나란히 붙어있다.
같은 벽, 같은 높이, 같은 규격의 창문이다.
단지 왼쪽과 오른쪽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탁구장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공간이다.
창문이 있는 벽은 한 면뿐이고,
공간을 나누는 칸막이도 없다.
오픈된 공간에 탁구대 다섯 대가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왼쪽 창문은 열어서는 안 되고,
오른쪽 창문은 열어야 하는 걸까.
시간도 있고 해서, 십 분 정도 진지하게 관찰해보았다.
천장의 환기 시스템 위치도 확인했다.
아무리 보아도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열지 말라고 되어 있는 왼쪽 창문도 쉽게 열렸다.
잠금장치도 없었다.
결국 합리적인 설명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서로 다른 시점에
서로 다른 사람이 붙인 스티커일지도 모른다.
처음에 누군가가 금연을 위해 창문을 닫아달라고 붙였고,
나중에 다른 누군가가 습도 때문에 열어달라고 붙였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두 사람 모두 전체를 보지 않고 각자의 문제만 해결하려 했던 것일까?
세상에는 그런 일이 많다.
각자의 논리로는 완벽하게 맞는 말인데,
옆에 붙여놓으면 모순이 되어버리는 것들.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저마다의 스티커를 붙이며 살아간다.
'이렇게 하시오', '저렇게 하지 마시오'.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가끔 그것들이 서로 충돌한다.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언젠가 탁구장 사장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두 스티커의 의미를.
무심코 붙인 건지, 나름의 깊은 뜻이 있는 건지.
아니면 나처럼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그냥 웃어넘긴 사람이 또 있는지.
탁구장을 나서면서 다시 한번 창문을 바라보았다.
분홍빛 천장 아래 두 창문이 나란히 있었다.
열지 말라는 창문과 열어달라는 창문이.
겨울밤 광안리의 바람은
어느 쪽을 통해 들어와야 할지 모른 채 그냥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