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료 대신 받은 것들

어떤 거래에는 정가가 없다는 것에 대하여

일 년에 한 번, 사무실에서 의무 교육을 받는다.

모든 사업체가 그렇듯이.

성희롱 예방이나 중대재해 교육 같은 것들.

올해는 응급처치에 관한 내용이었다.

강사가 사무실까지 와서 한 시간 남짓 강의한다.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강의료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돈 대신 다른 것을 받는다.

후원사 상품을 소개하고,

누군가 구매하면 그것으로 강의료를 대신한다는 구조다.

유튜브 무료 영상 앞에 광고가 붙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이 방식을 접했을 때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강의료를 따로 내지 않아도 되고,

상품이 마음에 들면 사면 되고,

아니면 말면 되니까.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그렇게 간단치 않다.


문제는 이 상황이 묘한 압박감을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강사가 한 시간 동안 열심히 강의한다.

응급처치의 중요성, 심폐소생술 방법, 자동제세동기 사용법.

진지하게 준비해 온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 다음 상품 소개가 시작된다.

건강식품이다.

효능을 설명하고, 품질을 강조하고, 가격을 말한다.


여기서 묘한 침묵이 흐른다.


누군가는 사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아무도 안 사면 왠지 민망할 것 같은 느낌.

실제로 위험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안 사면 그만이다. 강사도 그렇게 이야기 한다. 안사도 된다고.

하지만 한 시간 동안 강의를 들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묵시적 합의 같은 것이 형성된다.


누군가 하나는 사주자.


작년까지는 한 이십만 원 선이었다.

누군가 하나 사면 끝났다.

사무장이 사기도 했고, 대리가 사기도 했다.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었으니까.


올해는 달랐다.

오십만 원. 정확히 말하면 사십팔만원. 최소 단위가 그랬다.

물가가 오른 건지, 상품 구성이 바뀐 건지 모르겠다.

강사는 열심히 설명했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래된 카페에서 메뉴판을 보다가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주문을 망설이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 류의 망설임이 우리들 전체에 퍼져 있었다.

좋은 상품인 건 알겠는데,

오십만 원은 좀 그렇지 않나 하는 표정들.


결국 내가 샀다. 사장이니까. 대표니까.

그리고 이 어색한 침묵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으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이 거래는 정확히 무엇인가.


강의를 제공하고, 상품을 소개받고, 누군가 구매한다.

표면적으로는 자유로운 선택이다.

사도 되고 안 사도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강의를 들은 시간, 강사의 노력,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관계성이

미묘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강의료 삼십만 원을 지불하는 편이 훨씬 깔끔했을 것이다.

돈을 내고, 강의를 듣고, 끝.

누가 무엇을 살지 말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강사도 상품 설명에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된다.


공짜처럼 보이는 것들 중에 진짜 공짜는 드물다.

대부분은 다른 형태의 대가를 요구한다.

때로는 돈보다 불편한 형태로.


어릴 적 동네 슈퍼에서 과자를 사면

아저씨가 껌을 하나 더 주곤 했다.

서비스라고 불렀다.

그 껌은 공짜였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다음에 또 그 슈퍼에 가게 만드는

작은 미끼 같은 것이었다.


세상의 거래는 대부분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명시적인 가격표가 붙어 있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오히려 비싸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정가가 없다는 건 가격을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가격이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호의를 베풀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완전히 그런 경우는 드물다.

의식하든 못 하든 무언가를 기대하게 된다.

그게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고민끝에 내년부터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찾아보니 온라인 교육도 있고, 강의료를 내고 듣는 곳도 있는 것 같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그렇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돈으로 해결하는 게 깔끔하다.

그래야 서로 편하다. 강사도, 우리도.

누가 무엇을 살지 눈치 보는 시간은

양쪽 모두에게 유쾌하지 않다.


창밖으로 겨울 햇살이 비친다.

책상 위에는 오늘 산 건강식품이 놓여 있다.

오십만 원, 아니 사십팔만원 어치.

탕비실에 놔두고 필요한 직원들에게 먹으라고 할 생각이다.

어차피 나는 이런 것 잘 안 먹는다.


2025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의무 교육도 끝났다.

내년에는 조금 더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

복잡한 거래보다 단순한 거래가 좋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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