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에
채권추심 사건을 많이 맡다 보면
묘한 리듬이 생긴다.
처음엔 정신없다.
채무자의 재산을 조회하고,
전략을 세우고, 서류를 준비한다.
압류 결정이 나면 곧바로 집행에 들어간다.
몸이 바쁘니 마음도 바쁘다. 불안할 틈이 없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은행에 압류 통지가 가고,
경매가 진행되고, 배당이 확정되기까지.
그 사이엔 기다림만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다 했다.
남은 건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
최근 한 의뢰인의 사건이 그랬다.
삼 년을 끌어온 채권이었다.
채무자는 요리조리 피했다.
통장엔 잔액이 없었고, 부동산은 이미 담보가 잡혀 있었다.
포기하려던 참에 새로운 단서가 나왔다.
채무자가 다른 곳에서 돈이 들어올 예정이라는 정보였다.
곧바로 움직였다. 해당 계좌를 압류했다.
이제 돈이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언제 들어올지 아무도 모른다.
다음 주일 수도 있고, 다음 달일 수도 있다.
아예 안 들어올 수도 있다.
의뢰인이 전화했다.
"변호사님, 어떻게 되고 있어요?"
솔직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기다리고 있다고밖에.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이제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이런 상황이 묘하게 불편하다.
바쁠 때는 괜찮다.
다음에 해야 할 일이 명확하니까.
하지만 모든 것을 다 해놓고 기다릴 때,
이상하게 더 불안해진다.
통제할 수 없다는 감각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일상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다.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릴 때.
면접을 보고 연락을 기다릴 때.
병원 검사 후 결과를 기다릴 때.
준비는 끝났는데 결과는 내 손에 없는 상태.
그 공백이 불안을 키운다.
언젠가 읽은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농부는 씨를 뿌린 후
매일 밭에 나가 싹이 났는지 확인하지 않는다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할 일을 다 했으면 기다린다고.
땅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농부도 모른다.
다만 때가 되면 싹이 튼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고.
처음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지금은 조금 안다.
조급함을 버리라는 게 아니다.
관심을 거두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는 한 발 물러서라는 것이다.
할 일을 다 했으면, 그다음은 시간의 몫이다.
의뢰인의 사건은 결국 잘 풀렸다.
압류 후 열흘쯤 지나 돈이 들어왔다.
원금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됐지만,
삼 년간 한 푼도 못 받던 걸 생각하면 의미 있는 회수였다.
의뢰인은 기뻐했고, 나도 안도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열흘 동안
내가 불안해한다고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돈이 들어올 거면 들어오고, 안 들어올 거면 안 들어온다.
내 걱정과 상관없이.
경력이 쌓이면서 조금씩 변한 것이 있다.
예전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머릿속에서 사건이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의뢰인보다 내가 더 흥분하고, 더 발을 동동 구른 적도 있었다.
의뢰인들은 그런 내 모습에 감사한다고 했지만
정작 나는 그 스트레스로 새벽에 몇 번이나 쓰러져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실려갔었고
그로 인해 이 업을 그만둘 생각도 꽤 많이 했었다.
뭐. 하여튼.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으면,
그 사건은 잠시 서랍에 넣어둔다.
결과가 나오면 다시 꺼내면 된다.
물론 경험이 쌓여가는 만큼
업무적인 대응은 더 탄탄해졌다.
감정적으로 더 이성적으로, 차분해지려고 노력한다는 의미다.
쉽게 되는 일은 아니다. 습관이 필요하다.
의식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하지만 가능한 일이다.
불안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다.
대부분은 오래된 습관이다.
뭔가를 기다릴 때 불안해지는 버릇.
통제할 수 없을 때 초조해지는 버릇.
그 버릇을 알아차리면, 조금은 수월해진다.
오후의 사무실이 조용하다.
진행 중인 사건 몇 개가 기다림의 단계에 있다.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리고,
배당금이 입금되기를 기다린다.
예전 같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나머지는 시간의 몫이다.
책상 위에 놓인 만년필 뚜껑을 만지작거린다.
오래전 스스로에게 선물한 것이다.
이 펜으로 수많은 글들을 썼다.
요즘 만년필을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나도 거의 쓰지 않는다. 하지만 항상 책상에 놔두고 손에 쥐어본다.
그 무게가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데 십 년이 넘게 걸렸다.
아직도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낫다.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