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싸움을 마친 사람들에게
월요일 아침 일곱 시 반. 사무실에 앉아 있다.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겨울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온다.
커피를 마시며 가만히 생각한다.
지난 몇 년간의 일들에 대해서.
긴 싸움이 있었다. 사년이나 걸렸다.
처음에는 일년이면 끝날 줄 알았다.
그게 이년이 되고, 삼년이 되었다.
중간에 끝났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안도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또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정말 끝난 것 같다.
더 이상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논리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이상하게 불안하다. 왜일까.
누군가 말해주었다.
지금 불안한 건 새로운 위험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직 꺼지지 않은 경보음 같은 거라고.
전투가 끝난 직후에 나타나는
잔여 경계 상태에 가깝다고.
사년 동안 나는 늘 다음 수를 대비해야 했다.
끝났는지 확인해야 했고, 빠뜨린 건 없는지 점검해야 했다.
또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가 날아올 가능성을 항상 계산했다.
그 습관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의 고요함이 폭풍 전의 고요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학습되어버린 것이다.
몸과 마음이 아직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
상황은 정리됐는데 내 안의 경보음만 계속 울리고 있다.
문득 옛일이 떠올랐다.
이십 년 전,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주변에서는 말렸다.
그래도 밀어붙였다. 칠팔 년이 걸렸다.
중간에 몇 번이나 주저앉을 뻔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텼고, 결국 목표한 곳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나서도 불안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탓에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첫 몇 년은 특히 힘들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있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다.
지금은 어떤가. 십여 년이 지났다.
그때의 걱정들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새로운 고민이 있다.
하지만 그 고민과 예전 고민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놀라운 발견을 했다.
지금 겪고 있는 일이 그때와 똑같은 패턴이라는 것을.
그때도 목표를 향해 오래 걸렸다.
원했던 방식대로 되지 않았다.
억울한 일도 당했다. 손해도 보았다.
그래도 결국 도착했다.
도착하고 나서도 한동안 불안했다.
이렇게 해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런 불안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긴 싸움 끝에 도착했다. 원했던 방식은 아니었다.
손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빠져나왔다.
그리고 지금 불안하다.
정확히 같은 자리에 서 있다.
인생에서 두 번의 긴 터널을 지나온 셈이다.
각각 십 년 가까이 걸렸다.
첫 번째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싸움이었고,
두 번째는 내 삶을 되찾기 위한 싸움이었다.
둘 다 쉽지 않았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첫 번째 터널을 지나고 나서 불안해했던 시간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걱정했던 일들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난 일들은 어떻게든 해결되었다.
결국 잘 살아왔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의 불안도 잔향에 불과하다.
오래된 습관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새로운 위험이 있어서가 아니라, 긴장을 풀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나는 이미 이 길을 걸어본 적이 있다.
그때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목표에 도착해도 불안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괜찮아졌다.
지금도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만약 또 무언가가 생긴다면 그때 대처하면 된다.
예전에도 그랬으니까.
창밖의 햇살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하기 시작한다.
오늘도 할 일이 있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가 시작된다.
그게 좋다. 평범한 하루가 쌓여서 삶이 된다.
아직 경보음이 완전히 꺼진 건 아니다.
하지만 볼륨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서두를 필요 없다.
이미 한번 걸어본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