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자리의 승객

비 오는 날, 법원까지

재판이 있는 날은 택시를 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법원은 주차가 어렵다.

자리를 찾아 건물을 돌다가

재판 시간에 늦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가까운 거리는 택시를 부르는 편이 속이 편하다.


오늘도 택시를 탔다. 하필 오랜만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카카오택시를 호출했더니 곧바로 전화가 왔다.

낮은 중저음의 점잖은 목소리였다.

기다려 달라고 하고 밖으로 나갔다.

도착한 기사님은 육십대쯤 되어 보이는 분이었다.

단정한 차림에, 품위 있게 생긴 분이었다.

전화 목소리와 인상이 잘 맞았다.


그런데 막상 출발하고 나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거칠게 가속 페달을 밟다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몸이 앞으로 쏠렸다가 뒤로 밀리기를 반복했다.

경적도 자주 울렸다.


비가 오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냥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교통 상황을 살피게 됐다.


나도 운전을 한다.

비가 오면 오히려 평소보다 덜 급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기사님은 반대였다.

비가 올수록 더 조급해졌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화를 낼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기사님은 주변 차량에 계속 혼잣말로 욕을 했다.

누구에게 들려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는 종류의 것이었다.


내비게이션과 다른 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재판 시간에 늦을까 봐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별말을 하지는 않았다.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기사님이 전화를 받았다.


아까 그 중저음의 점잖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아주 차분하게, 매너 있게 통화를 마쳤다.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목소리만 들으면

이 사람이 방금 전까지 핸들을 움켜쥐고 욕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못할 것이다.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인상을 쓰고 욕을 하며 운전을 시작했다.




전화 속의 그 사람과 핸들을 잡은 이 사람.

같은 사람의 두 얼굴이라기보다는,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제야 차 안을 둘러보았다.

시트 비닐이 아직 그대로 붙어 있었다.


어떤 연유로 이분이 택시를 시작하셨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뭘 하든 초보 시절은 있기 마련이다.

목적지에 내리면서

부디 별 사고 없이 운전에 익숙해지시길 속으로 빌었다.



그런데 초보 기사님보다 더 놀랐던 적이 있다.


얼마 전 탄 택시에서의 일이다.

기사님 앞에 커다란 태블릿이 하나 붙어 있었고,

오른손에는 긴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태블릿에 띄워져 있는 것이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퍼즐 게임이었다.

기사님은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의 막대기로 화면을 터치하고 있었다.

운전 중이었다. 도로 위에서. 승객을 태우고.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였다.

어떻게 운전을 하면서

그 게임이 그렇게 재미있는 건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다행히 가는 거리가 멀지 않아서 그냥 내렸다.

하지만 저 습관대로 매일 운행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저 뒷자리에 앉을 다음 승객은 이 사실을 모른 채 탈 것이다.



택시의 뒷자리라는 공간은 묘한 곳이다.

앞사람의 컨디션에 나의 안전을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내릴 수도 없다.


그래도 다음 재판 날이 오면 나는 또 택시를 부를 것이다.

법원 주차장은 여전히 자리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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