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많은 날에, 페투치네 면으로 만든 새우 로제 파스타와 냉동 피자
제가 요새 걱정이 많단 말입니다.
요즘 세상에야 전 인류, 아니, 지구의 미래가 불안하다지만 어쩔 수 없는 이 소시민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중입니다.
기다리는 소식은 오랫동안 오지 않고, 하고 싶은 일들에 비해 통장 잔고는 초라해
가까스로 '안정'과 '불안'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요즘
얼마 전 처음 만난 사람이 물었습니다.
"요즘 제일 고민이 뭐예요?"
그에 대한 솔직한 답을 하고 돌아오는 길, 어쩐지 기분이 계속 가라앉더군요.
아주 평범한 질문이었는데 전 그 질문 한 마디에 균형을 잃었던 것입니다.
그날 밤 누워서 생각했습니다. 아, 내가 오늘 줄에서 떨어졌구나!
걱정 많은 사람들은 알 거예요. '불안의 터널'은 주기적으로 나타나거든요.
그러니 이쯤 나로 살다 보면 그 터널을 잘 통과하는 법도 어느 정도 알게 되죠.
방법은 별 거 없습니다.
그냥 문득문득 고개를 드는 불안에서 최대한 시선을 돌리고 일상에 집중하는 것뿐.
그러기 위해선 가끔은 작은 이벤트가 도움이 되곤 합니다.
그 이벤트는 대부분 영화관에 가는 일입니다.
번뇌가 가득한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영화에만 빠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바로 다음날, 기대하고 있던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러 갔습니다.
영화는 뭐.. 개인적으로 기대보단 못했습니다만.
영화 속 "사람들의 마음이 미미즈(일본열도에 지진을 일으키는 존재)를 누르고 있었다"는 대사는 인상적이었어요. 사람들이 떠난 동네가 생기면서 미미즈가 밖으로 나오게 됐다는 것이죠.
재난을 겪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영화였고, 사람들의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는 대사라고 생각했는데
곱씹어볼수록 지금의 제 삶에도 적용할만한 말이었습니다.
미미즈는 완전 퇴치는 불가능하니 미미즈가 못 나오도록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나오더라도 땅에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만이 방법입니다.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불안'이라는 미미즈는 완전히 없애버릴 수 없는 것이지만
건강과 일상이라는 두 개의 요석을 튼튼히 박아두고 그때그때 열리는 문을 잘 단속하고 사는 것.
그게 특별할 건 없지만 나의 땅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오는 길, 기다리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껏 한 다짐이 무색하게 바로 문이 덜컹 열려버리더군요.
소타 상처럼 문단속은 제게도 평생의 숙명인가 봅니다.
문을 다시 닫기 위해선 힘이 필요하니 마트에 들러 저녁거리 장을 봤습니다.
펜네 파스타를 먹고 싶었는데 펜네가 없어 대신 페투치네를 사고, 파스타에 넣어 먹을 냉동 새우를 사고,
냉동 피자가 1+1을 하길래 슬쩍 카트에 얹어 주고, 집에 있는 쓴 와인에 타 마시려고 스프라이트까지 사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우유와 슬라이스 치즈, 토마토 소스, 새우를 넣어 새우 로제파스타를 만들고
에어프라이어에 피자를 데우고, 와인에 사이다를 조금 타서 TV 앞에 예쁘게 세팅한 뒤..
누가 보면 양푼에 남는 반찬 때려 넣은 비빔밥 먹듯 와구와구 먹어치워 에너지를 충전했습니다.
저녁을 먹은 뒤엔 오랜만에 목욕물을 받아 입욕제까지 넣고 목욕도 했어요.
그래서 문이 닫혔냐고요?
아니요 여전히 완전히 닫진 못했습니다.
맛있는 거 해 먹고 목욕 한 번 한다고 닫힐 문이면 스즈메도 그 개고생을 하진 않을 테니
당연한 거라 생각하기로 합니다.
그래도 조금씩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들이 모여 결국엔 내 인생의 균형추가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침대에 누워 고민합니다.
내일은 뭐 먹지?
<걱정이 많은 날 만든 새우 로제 파스타 레시피>
1. 소금을 약간 넣은 물에 면을 7분 삶는다.
2.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 여러 개를 굽다가 만가닥 버섯과 냉동 새우를 넣고 굽는다.
3. 적당히 구워지면 팬에 우유와 면수, 슬라이스 치즈 세 장, 토마토 소스, 페퍼론치노를 넣고 끓인다.
4. 소스에 면을 합쳐서 끓여준다.
5. 파스타 위에 후추, 파슬리 등 그냥 뿌리고 싶은 거 잔뜩 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