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말 수가 적은 당신이었다.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떠들썩하지 않게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당신의 모습이 참 예뻤다.
“이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지 1년밖에 안됐는데 제 자신이 한심하고 초라하고... 최소한 3년은 일해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일에 흥이 안나요.”
흥이 나서 일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들 ‘먹고사니즘’ 때문에 일하며 사는 것을.
당신은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편집디자이너인 당신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똑딱 거리며 일을 한다. 클라이언트들의 얼토당토 않는 요구조건들을 군말 없이 들어주다보면 스스로 디자이너인지 오퍼레이터인지 헷갈릴 때도 많다.
디자이너로서 창의적인 역량을 발휘할 기회는 흔치 않다. ‘고객의 요구 조건’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기 바쁘다. 그마저도 ‘클레임’이 들어오면 심한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더 슬픈 게 언제인지 알아요? 사공이 많을 때에요. 제가 내놓은 디자인이 여러 명의 사공들 때문에 망가질 때요. 그때는 정말 ‘designed by 000'이라고 제 이름 석자를 넣기 싫어져요.”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당신은 점점 생각하지 않는 디자이너가 되어 가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졌다. 생각하면 다른 사람에게 바보 취급당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당신이 바보 같고…. 어떤 식으로든 ‘바보’가 되어 가는 기분 때문에 당신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당신에게 두 가지를 묻는다.
“모아 둔 돈은 얼마쯤 돼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어요?”
당신은 1년 동안 오백여 만원 정도 모았다고 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은커녕 부모님 집에 얹혀살기 때문에 오히려 부모님으로부터 부양을 받고 있는 처지라고 했다.
일을 그만둬도 1년 정도는 백수로 지내기에 충분한 양의 돈이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없으니 그것 또한 최적의 조건이다. 나는 당신에게 말한다.
“그럼 그만 두세요. 그 일.”
토끼눈을 뜨며 놀란 당신은 머뭇거린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두 가지다. 일을 그만둘 경우 백수가 된다는 것, 다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 당신은 그만둘 때 두더라도 최소 3년은 다녀야 하지 않을까 말한다. 그래야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넣을 때 끈기와 성실함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며.
당신은 그만둘 때 두더라도 최소 3년은 다녀야 하지 않을까 말한다. 그래야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넣을 때 끈기와 성실함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며.
한 회사에 오래 근무해야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당신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사회통념상 그렇게 여길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끈기와 성실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을 3년씩이나 참고 견딜 수 있겠는가. 게다가 끈기와 성실함이 경력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지금 하는 일에 회의감이 든다면, 회사를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수백번씩 든다면 당신은 그 일을 그만할 때가 온 것이다. 더군다나 부양할 가족 없이 오로지 당신 몸둥아리 하나만 책임져도 된다면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축복’이다.
당신은 어릴 때부터 끈기와 성실함의 가치를 배워왔다. 중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끈기와 성실함 때문에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자기 자신을 알아갈 수 있는 기회들이다. 바로 ‘경험’이다.
당신은 스스로가 얼마나 근사한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을 아직 하지 않았다. 당신은 고작 스무 살 때 내린 결정 하나에 평생이 걸린 커리어를 의지하고 있다. 가능성의 지평을 넓일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를테면, 당신은 ‘디자이너’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 동대문에서 옷을 팔수도 있고, 카페에서 커피를 내릴 수도 있으며, 중장비 자격증에 도전할 수도 있다. 단돈 백만원만 들고 배낭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낯선 곳을 방랑하며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당신 두뇌 속에 있는 뉴런들은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지도를 만들 것이다.
당신은 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그 사이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당신만의 발자국을 아로새길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당신은 결코 바보가 아니라는 자각이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한 회사에서 오래 근무하지 않았군요. 끈기가 없는 것 아닌가요?”라고 묻는다면, “많은 경험을 오랫동안 도전해 왔다는 것 또한 끈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도전에는 두려움이 내포되어 있고 매순간 두려움을 극복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다.
당신은 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그 사이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당신만의 발자국을 아로새길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당신은 결코 바보가 아니라는 자각이다.
자신의 유능성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은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당신은 성실과 끈기라는 틀에서 과감히 벗어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을 잘 알고 있다. 어떠한 상황이 닥치든, 어떠한 경험을 하든 당신은 성실과 끈기로 그것을 ‘자기화’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날 당신과 나는 곱창에 맥주 한 병을 마셨다. 둘 다 술이 약한 탓에 맥주 한 병으로 거나하게 취했다. 한 달 후 당신은 사표를 냈다. 그리고 모은 돈을 긁어 생전 처음 혼자만의 배낭여행을 떠났다.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숙소를 결정하고, 지도를 보고 가고 싶은 곳을 계획하며 당신은 처음으로 ‘자기결정권’을 경험했다.
바보 같다며 자괴감에 빠져 있던 당신은 여행을 떠난 지 두 달 쯤 지나 SNS으로 근황을 알렸다. 영어 한 마디 제대로 못한다며 두려워하던 당신은 스페인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친구들과 탱고를 배우고 있었다. 당신의 눈빛은 내가 당신을 안 이후로 가장 빛나고 있었다.
얼마 전 당신은 페이스북으로 나에게 근황을 알렸다. 당신은 나와 곱창과 맥주 한 병을 마신 이후 인생이 달라졌으며, 그때의 선택들을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에는 내가 당신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