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ingmong Jul 08. 2019

‘남편님, 남편놈, 남편새끼’를 외치는 당신

마흔이 서른에게



당신은 갓 백일이 지난 듯 한 아이를 업은 채 유모차를 밀고 있었다.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위태롭게 사라지자 당신은 뛰기 시작했다. 유모차에 앉아 있는 4살 남짓한 사내아이는 뭐가 불만인지 악을 쓰며 울고 있었다. 


7월의 아침, 오전 10시의 태양은 이미 뜨거웠다. 운전대를 붙든 채 나는 당신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당신의 등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한때는 누가 봐도 어여뻤을 당신이었다. 그런데 왜였을까. 땀에 젖은 당신의 늘어진 티셔츠가 왜 나의 눈물샘을 건드렸을까. 때마침 라디오에서 ‘별이 진다네’가 흘러나왔던 탓일 것이다. 그게 아니면 당신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 같다는 생각에서였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아침에 일어나 백일이 지난 아이에게 젖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준 뒤, 첫째 아이를 깨우고, 먹지 않겠다고 버팅기는 사내아이를 붙들어 앉혀 억지로 아침밥을 먹였을 것이다. 

‘어린이집 가려면 얼른 먹고 서둘러야 해~!’ 당신은 몇 번이고 아이를 다그쳤을 것이다. 아이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동안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제 몸 하나 씻고 제 몸 하나 치장한 뒤 쌩 하고 나가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은 남편의 무관심에 생채기 난 가슴을 억지로 감춘 채, 한 아이는 업고, 한 아이는 유모차에 앉혀 집을 나섰을 것이다. 거울을 들여다볼 여유 따윈 없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의 거울을 보며 눈곱을 떼고, 흐트러진 머리를 다시 질끈 묶는다. 


‘어린이집 가려면 얼른 먹고 서둘러야 해~!’ 당신은 몇 번이고 아이를 다그쳤을 것이다. 아이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동안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제 몸 하나 씻고 제 몸 하나 치장한 뒤 쌩 하고 나가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의 남편은 자기 정도면 진보적인 남편의 표상이라고 자부할 것이다. 퇴근 후 한 두 번은 둘째 기저귀를 갈아주고, 십분 정도 첫째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할 것이다. 가끔 주방에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길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일도 그의 담당일 것이다. 그는 스스로 ‘이 정도면 진보적인 남편이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완고하고 보수적인 그의 아버지는 집에서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남편이 원망스럽다. 꼴 보기 싫다. 신혼 때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줄 거라며 온갖 사탕발림을 하더니, 애 둘을 낳은 지금은 대놓고 돈 버는 유세를 떤다. 회사 일로 골치가 아프다며 온갖 인상은 다 쓴 채 스포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 둘째에게 우유 좀 주라고 하면 젖병이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TV에 시선고정이다. 기어코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면 ‘자기가 좀 먹여’ 하며 마치 짐짝 건네듯 아이를 내려놓는다. 


둘째 아이에게 우유를 다 먹일 무렵, 남편을 보니 이미 코를 골고 자고 있다. TV는 시끄럽게 켜져 있고, 화면 바로 앞까지 다가간 첫째가 지 아빠가 한 그대로 TV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밥상 위에는 먹다 남은 밥, 흐트러진 반찬, 쏟아진 물이 그로테스크한 예술작품마냥 딱 버티고 있다. 

일단 지저분해진 첫째 옷을 벗기고, 씻기고, 잠자리를 펴 재운다. 잠이 든 둘째가 깰까 조심조심 기저귀를 갈고 어제 빨아뒀던 깨끗한 담요를 깔고 그 위에 살포시 눕힌다. 

아이들의 숙면에 방해가 될까 집안의 불빛을 모두 소등하고 주방 불빛 하나만 켠 채 조심스레 설거지를 끝낸다. 

남편이 부스스 일어나더니 담배 한 대 피고 와 자겠다며 현관으로 향한다. 

‘쾅!!’. 조심성 없는 남편은 마치 혼자 사는 듯 현관문을 세차게 열고 나간다. 

아이들이 깼을까 싶어 안방 문을 여니 다행히 곤히 잠들어 있다. 


남편이 부스스 일어나더니 담배 한 대 피고 와 자겠다며 현관으로 향한다. 

‘쾅!!’. 조심성 없는 남편은 마치 혼자 사는 듯 현관문을 세차게 열고 나간다. 

아이들이 깼을까 싶어 안방 문을 여니 다행히 곤히 잠들어 있다. 



아이들이 뒤척일 때마다 이불을 덮어주느라 당신은 밤새 깬다. 이상한 노릇이다. 결혼 전에는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한번 자면 깊은 잠에 빠지곤 했는데, 아이들을 낳은 뒤에는 정반대다. 뭔가 낌새가 이상해 깨보면 아이가 이불을 차버린 채 자고 있거나, 이불 바깥으로 나가 있거나, 기저귀에 오줌이 새 엉덩이가 축축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깊은 잠에서 문득 깨 본능적으로 아이의 이마를 짚으니 열이 불덩이인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세상모르고 단잠에 빠져 있었다. ‘여보, 둘째가 열이 불덩이야, 여보~’ 하고 흔들어 깨워도 남편은 한쪽 눈만 겨우 떴다가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 

할 수 없이 당신은 둘째를 업고 나와 이마에 패치를 붙여주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아이의 온 몸을 닦아내고 5분 간격으로 체온을 잰다. 아이가 울고 보채면 업어주고 안아주고, 얼러주고 노래도 불러준다. 몇 시간의 야간 사투 끝에 아이의 열이 조금 내리면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 소파에 털썩 내려앉는다. 


그 와중에도 남편‘놈’은 단꿈을 꾸며 자고 있다. ‘도대체 저 인간놈은 새끼를 가진 포유류가 맞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당신은 이내 체념하고 만다. 

어느 과학자가 실험을 했다. 엄마 원숭이, 아빠 원숭이, 아기 원숭이를 한 곳에 모아 놓고, 바닥에 서서히 열을 가했다. 발바닥이 뜨거워진 아빠 원숭이는 냉큼 아기 원숭이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발바닥이 뜨거워진 엄마 원숭이는 냉큼 아기 원숭이를 안아 자기 머리 위로 올렸다. 남편놈이란 인간은 진화론적으로 봤을 때, 원숭이 수준에서 한 단계도 나아가지 못한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아내는 안방에서 ‘처’자고 있는 남편놈에게 정나미가 똑 떨어진다. 왜 결혼 전 남편감을 고를 때 ‘아이를 함께 키우는 조건’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가. 왜 어쭙잖게 그저 착하고 인성 좋고 성실하면 됐지 하는 생각만 했을까. 당신은 자신의 발등을 찍고 싶다. 


만약 신이 나타나 과거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준다면 지금의 남편‘놈’과 결혼했을까. 당신은 쓸데없는 고민에 빠진다. 오래 전에 헤어졌던 첫사랑과 결혼했다면 어땠을까? 그와 가정을 일궜으면 지금과 많이 달랐을까?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법이 ‘가정법’이지만 의문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당신의 머릿속을 맴돈다. 

매번 그 쓸데없는 고민을 하지만 매번 답은 같다. 

‘지금의 내 아이들을 만날 수 없다면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래....’

친정엄마는 ‘자식새끼 땜에 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제야 당신은 친정엄마의 그 심정이 무엇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남편님이 남편놈이 되고, 남편놈이 남편새끼가 되어도 결국 당신이 선택한 인생이고, 당신선택의 결정체인 아이들이 있는 한, 뒤돌아 갈 수도, 물러 설 수도 없다. 

단지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뻥튀기 하여 마음을 추스르고 다잡아 ‘도를 닦는 일’인 것을. 하여 당신은 결혼 생활이란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대요’가 아니라 ‘오래 오래 도닦으며 살았대요’란 사실을 깨닫는다. 

도를 닦는 오늘도 밤하늘의 별은 무심히 빛나고 있다. ‘오늘도 별이 진다네~~’



작가의 이전글 꼭 결혼을 해야 하냐고 묻는 당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