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에 저항하는 일
아침 여덟 시, 알람이 울린다. 아직 잠에 취해 방문을 열면 보리와 구름이가 꼬리를 파르르 떨며 운다. 화장실로 향해 볼일을 보는 동안에도 이들은 내 무릎에 고개와 꼬리를 부비고 시끄럽게도 운다. 아오 정말, 귀찮고 귀여운 녀석들. 변기에서 일어서자마자 퐁, 하고 마루로 튀어간다. 내가 오줌 누다가 지나가던 코요테에게 습격당할까 매일 걱정되어 내 옆을 지켜주는 녀석들이 든든하다. 동그라미 세모 세모들이 리빙박스 안에서 부시럭거린다. 물을 끓이고, 아가 고양이들의 맘마가 담긴 젖병을 꺼낸다. 리빙박스 뚜껑을 여니 여덟 개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귀여움이다. 커피를 올려두고 그릇 정리를 한다. 전날 저녁, 신나게 먹었다는 증거다.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소소한 설거지 거리가 남아있어 마저 한다. 커피 향이 난다. 제법 낡은 모카포트 안, 모처럼 크레마가 가득한 커피가 담겼다. 한 모금 마시고는 부엌 쓰레기통의 봉투를 교체한다. 가져다 버릴 전날의 봉투에 고양이 화장실 모래를 북북 파서 그들의 똥과 오줌을 담는다. 아이고 구름아, 또 너무나 신나게 화장실 밖으로 모래를 퍼 내었구나. 잘했다. 문득 시간을 보니 밥을 준 지 12시간이 되었다, 나의 사워도우 천연 발효종들에게. 열심히 자랐다가 잠잠해진 흔적이 통에 보인다. 어젯밤 시작한 르방은 빵빵하게 자라 거품과 나의 기대를 한 아름 품었다. 르방에 밀가루와 물을 더하고, 본반죽을 시작했다. 정말 안 흘리려고 노력했는데 여전히 흰 밀가루 자국이 여기저기 생겨 행주를 꺼내 닦아내었다. 또 이렇게 설거지가 생겼으니 가볍게 설거지를 한다. 그동안 보리가 시끄럽게도 운다. 보리가 최근 아주 애정하게 된 습식 사료를 달라는 얘기다. 야, 나 커피 좀 마시자, 라고 얘기하면서 일단 캔을 가지러 간다. 오늘은 흰 살 생선 캔을 주기로 했다. 퐁, 따서 그릇에 담아두니 신나게도 찹찹 먹는다. 머리를 쓰다듬고 아까 정리한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나선다. 나가는 길에 베란다 정원에 있는 물뿌리개에 물을 한가득 담는다.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는 길, 풀들에 시원하게 한껏 물을 준다. 사놓고 전혀 관리를 하지 않아 죽어가는 옆집 풀때기 하나에도 물을 준다. 불쌍한 녀석들, 너는 내가 키울게. 다시 집 안에 들어오니 보리가 시끄럽다. 그간 밥 먹고 간식을 자꾸 줘서 그런지 오늘도 간식을 요구한다. 어쩔 수 없는 척 동결 건조 간식을 꺼내 주니 신나게 먹고선 이제야 조용해져서 낮잠을 자러 간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또 설거지가 있다. 마저 하고, 물기를 닦아 내고,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바닥의 깔린 러그를 구김 없이 펴고, 마루에 펼쳐져 있던 담요를 갠다. 요가 매트를 정리하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잔 부스러기들을 쓸어 줍는다. 시계를 보니 세상에, 벌써 열 한시다.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꺼내 치익, 톡! 하고 깐다. 시원하고 가벼운 발포주가 상쾌하다. 크, 인생 뭐 있나 싶다. 뭐 애엄마들이 아무것도 안 하고 카페에만 앉아 있다고 하는 인간들, 한 대 때려줄테다. 한 시간쯤 있으면 또 아가 고양이들 밥을 줄 시간이다. 반죽도 해야 한다.
내 우주의 반, 아내가 일어나 '앙뇽!' 하고 인사한다. 자고 일어나 성글어진 땋은 머리, 부스스한 잔머리 사이로 햇살이 오간다. 물고기 모양의 선한 눈에는 아직 잠이 한가득 담겨있다. 보리, 구름은 또 그가 볼일을 보는 동안 그를 지켜주러 간다. 그가 일어나기 전, 모든 것을 끝내 놓아서 제법 뿌듯하다. '오늘 집 뭔가 엄청 깨끗하네', 라고 그가 말하는 것에 더욱 뿌듯하다. 그가 알아차리는 부분들에 왠지 우쭐해지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부분에 나만의 비밀 같아 속으로 짓궂게 웃는다.
이 모든 것이 아내가 하던 일이었다, COVID-19 판데믹 이전에는. 그의 노고를 최대한 알아차리려 하고, 늘 고맙다고 얘기하려 노력하고, 내가 벌어오는 쥐꼬리만큼의 돈이 온전히 50:50이라고 그에게 얘기했었다. 집을 유지하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예전 하루에 네 시간씩 자면서 공부를 하던 시절 내가 사는 자취방을 돌보는 것은 최소한으로밖에 할 수 없었다. 빨래를 건조기에 돌리곤 갤 시간도 없어 그냥 빨래통 안에서 옷을 꺼내 입곤 했다. 어쩔 수 없었으나, 즐겁지 않았다.
살림왕 아내와 같이 살게 되면서 얼마나 고마움을 느끼는지 모른다. 집에 돌아오면 말끔한 집의 모습은 물론, 맛있는 음식의 냄새가 난다. 내가 돌아오기 전 모든 집안일을 마치고 싶다는 말에 연구실에서 왠지 더 열심히, 더 오래 일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사랑하게 된 '집'이라는 개념을 일구어준 그에게, 나에게 행복이라는 감정을 알려준 그에게 너무나 고맙다. 그렇기에 우리의 수입은, 이 각박한 세상, 우리 둘이서 정말 열심히 벌어오는 돈이다.
아내가 생리를 하는 때가 다가온다. 쳐지고, 아프고, 힘든 시간일 것이다. 말끔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놓고 아내를 반겼다. 집안일은 정말 위대한 일이다. 무질서, 엔트로피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열역학 2법칙을 거스르는 일이다. 잘해야 본전이고, 안 하기 시작하면 그 어질러짐만 눈에 띈다. 그럼에도 아내는, 적어도 지금의 나는 치우고 정리를 한다. 내가 직접 하기 시작하니 그의 노고가 더욱더 마음에 와 닿는다. 이 어렵고 힘든 시기, 이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그 나름대로 아주 고마운 부분이다.
아내가 기운을 내어 산책을 나갔다. 나는 반죽을 해야 해서 당장 따라갈 수 없었다. 반죽을 마치고선, 전례 없이 거의 24시간 내내 같이 시간을 보냄에도 그가 보고 싶어져 그의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 길 건너편, 여전히 그의 잔머리에 비치는 늦은 오후의 햇빛이 예쁘다. 같이 돌아오는 길, 꽃향기가 향긋하다 못해 어질어질하다. 돌아오니 아가 고양이들이 배가 고픈지 빽빽 운다. 같이 맘마와 약을 먹이고, 또 설거지를 하고, 나는 잠시 낮잠을 자고, 아내는 맛있는 저녁을 준비한다. 아내가 눈 앞에 있는데, 그럼에도 그가 보고 싶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엔트로피와 싸운다. 어차피 지저분해질 것 왜 치우느냐고 묻는다면, 어차피 죽을 것 왜 사냐, 라고 대답할 것이다. 베란다에서 빨래가 뜨거운 햇빛과 산들거리는 바람에 잘도 말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