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빙수 Jan 02. 2020

마라탕

화끈한 맛에 그 놈 자식, 그 일에 대해 까맣게 잊는다.

나와 나의 아내는 먹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 정도를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으나, 맛있는 음식을, 특히나 (아내가) 직접 요리해 먹는 일상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에 제법 열정이 있다고 밍구스럽게나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요리에 소질은 없으나 안타깝게도 관심은 있어, 맛이나 향에 대해 나름대로 평가를 하는 소위 말하는 입만 산 놈이다. 반면 나의 아내는 내가 봤을 때엔 요리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이런 음식을 어떻게 만들지?'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고 '내가 먹어본 [...] 중에 가장 맛있다' 라는 소리가 아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 나는 그 기분과 상차림을 최대한 기억하기 위해 사진으로나마 기록하는 일을 좋아한다.


음식은 영양분, 나아가 동력이 되어준다는 이유에서 아주 중요하다. 이는 비단 물리학적, 생물학적인 열량, 에너지만에 국한 된 것이 아니다.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 변하지 않음에도 옷을 잘 차려 입으면 어째서인지 조금은 신이 나고 당당해지듯, 잘 차려 맛있게 먹는 음식은 우리에게 큰 위안과 행복, 그리고 내일을 맞이할 새로운 마음을 제공하여 준다. 지친 하루의 끝 집에 돌아와 현관문 손잡이를 돌릴 때 화끈하고 매콤하고 마하고 라한 마라탕의 냄새가 코끝과 안구를 자극할 때의 그 기분. 피곤하고 가라앉았던 마음에 다시 불이 지펴지는 것이다.


우리는 아주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 먹는 것을 정말 좋아하며 그를 만드는 것에 재능이 있는 아내 덕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주식'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맛있는 재료, 끌리는 음식, 우리의 기분에 따라 그 때 그때 먹는 음식의 스타일이 결정되곤 한다. 이를 어떻게라도 분류를 해볼까 고민을 하다가, 위에 언급했던 마라탕의 생각이 계속 났다. 그리하여, 우리가 2019년에 아주 신나게 먹었던 마라탕의 사진을 남겨 보기로 한다.


한국에 어마어마한 마라탕 유행이 돌고 있다는 이야기를 잠시 한국에 다녀온 아내에게 전해 들었다. 먹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한지 잘 알 수 없었고, 백종원의 골목식당에도 늘 나타나듯 유행에 민감한 한국 사람들이 이루어낸 또 하나의 허상이겠거니 생각을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러한 전골, 샤브샤브 등의 국물 요리를 아주 좋아하는 우리였기에 시도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우리는 아마존에서 마라 수프 베이스를 주문하여 집에서 만들어 먹어 보았다. 첫 맛에는 '어 뭐 자극적이고 신기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한편으론 '그럼 그렇지 뭐가 그리 대단한다고', 하는 쿨병 환자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니 왜 그렇게 마라탕이 생각이 나던지. 한국 사람의 유행 문화에 대핸 여전히 회의적이나, 마라탕은 '찐'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99 Ranch 중국 마트에서, 중국 본토에서 제법 유명한 '하이디라오' 마라탕 수프 베이스, 중국 야채, 건두부, 피시볼을 셀 수도 없이 사다 먹었다. 정말이지, 그 화끈하고 매우면서도 생각보다 짜지 않아 다음 날 아침 힘들지 않은, 놀라울 정도로 이 음식에 중독이 되어 가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나를 화나게 했던 사람들, 일들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 마라탕을 함께 하러 친구가 놀러 왔다. 그를 맞아 아내는 심지어 꿔바로우까지 튀기기로 했다. 그에 맞추어 친구는 칭다오 맥주를 들고 왔고, 만찬이 펼쳐지게 되었다.

나는 꿔바로우라는 것도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다. 돈까스나 탕수육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로서, 한 입 먹자마자 탄성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바삭거리는 식감, 턱 관절이 얼얼하게 상큼한 소스. 그것을 잠식하는 마라탕의 국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시원하게 씻어내주는 라거 맥주. 이토록 파괴적인 음식의 조합은 많지 않다.

다같이 시원하게 짠.

그 이후론 뭔가 시도 때도 없이 마라탕을 먹는데, 고기가 하나 없어도 마라의 향과, 야채의 시원함만으로도 너무나 충분한 것이다. 피시볼도 다양한 종류를 먹어 보았고, 하나같이 잘 어울린다.

이것은 신선한 시도였다. 마라탕을 먹고 난 후, 국물이 많이 남았던 저녁의 다음 날, 그 국물로 국수를 말아 먹어 보기로 하였다. 마라탕 소스에는 굉장히 많은 지방, 기름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시원한 국물에 텁텁한 지방 맛이 나지 않을까 했으나 왠걸, 세상 이런 별미가 없다. 부드러운 지방 맛을 씻어주는 여전한 화끈한 맛. 바꿔 먹었을 때 이 모든 깊은 맛을 씻어주는 상쾌한 열무국수, 그리고 맥주. 오늘도 여름이 그립다.

마라탕은 화끈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늘 기대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해 준다.

맵다. 화하다. 얼얼하다. 혀가 마비 되어서 혀에 닿는 모든 것이 짭짤하게 느껴지나, 실제로 짠 것은 없다. 아, 이 글을 쓰면서 아내가 마라탕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새해를 힘차게 보낼 준비를 하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