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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Dec 20. 2015

우리의 앞에서 뛰어준 그대에게

  나의 아버지는 예절에 대하여는 엄격 하셨으며, 자신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빠르게 우리도 세상에 내어 놓으셨다.  아주 자주 듣던 얘기 중 하나가 "알아서 해라.  너도 다 컸지 않느냐"라는 말씀이셨다.  아마도 고등학교 때부터 들었던 것 같으며,  그래서일까.  이십 대 초반에는 이미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스스로 하였다.  시골에서 자라 온 까닭에 견문이 좁아서 일까.  세상의 모든 어른이 나의 부모님과 같다고 착각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에 참 많은 부분에서 시대 간의 갈등을 겪고 산다라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내 나이 아직은 한국 나이로 32이니 젊은 시대라고 생각해도 될듯하니.  그렇게 젊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를 대변해보고자 한다.


  그대와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생각해보아라.  고등학교를 나온 어머니는 많은 명문대 여자들이 꿈꾸는 은행에서 일을 했었으며, 아버지도 많은 인생의 기회가 주어졌다.  지금의 우리 세대를 보자면 그대의 시대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노력을 한다.  왜냐면, 기회가 없기에.  그래서 그대들이 주는 작은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그대들도 이렇게 처절했는가?  처절했다라면, 지금보다 더 처절했다면, 그 처절함을 우리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인가?  아닐 거라 믿는다.


  우리의 하고 싶은 일을 그대들이 정한다.  그 기준은 돈과 안정성이다.  그대들은 우리에게 돈과 안정성을 강요한다.  그대들이 가지지 못한 서러움에 허기진 배를 부여잡았던, 수돗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던 그 마음이 독기로 변해 죽어라 고생했던 그대들이기에.  하지만,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대들이 그렇게 한 것은 그대의 자식들은 굶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 않은가?  왜 입으로는 행복을 말하면서, 행동은 돈을 따라가라고  강요하는 것인가?  왜 도전을 얘기하면서, 그대의 자식에게는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라고 하는 것인가?  우리에게 꿈은 왜 묻는 것인가?  왜 우리에게 꿈을 묻는 것인가?  왜 묻는 것인가?  그 어린 시절, 왜 꿈을 그림으로 그려오라고 했는가?  꿈을 꾸게 하지 말던지, 꿈을 가지라고 했다면 우리의 꿈을 응원해주기를 바란다.  간곡히 부탁한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으나, 나는 그렇다.  아마 많은 우리 세대의 사람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대에게 너무 감사한다.  그대들의 희생에, 그대들의 인내, 그리고 그대들이 흘린 피로 우리는 굶지 않으며,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보고 싶은 영화는 언제라도 볼 수 있다.  많이 욕 하지만, 내가 낸 세금으로 그대들의 노후를 책임지고, 내가 늙을 때 내가 받을 돈이 없다고 하여도 전혀 원망하지 않는다.  내가 젊은 날 누렸던 것들을 생각하면, 그저 감사한다.  그런데.  그대들이 만든 세상은 그대들에게 맞추어진 세상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게 기회를 달라.  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겠다.  열심히 일하는 게 미덕이던 시대에 만든 야근을 아래에 강요하지 말며, 나이와 직책이라는 무기를 들고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적다 보니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자신을 방금 발견했다.  여기까지만 적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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