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공유를 위한 글을 쓴다. 알파고의 승리는 나에게 참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이 현장을 살아가고 있는 한 인간으로 이 순간의 느낌과 감정을 기록하고자 한다.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머신러닝을 공부했었다. 알파고가 사용하는 '트리 탐색'과 '신경망'을 직접 구현도 해보았다. 트리 탐색 기법도, 신경망 기법도 나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 종류로 파생되었다. 알파고 녀석은 트리 탐색 기법 중 하나인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으로 바둑판에서 자신의 선택 범위를 좁혔고, 신경망 알고리즘 중 하나인 '컨볼루션 신경망'으로 좁혀진 범위에서 해답을 찾았다.
1 대국에서 바둑 고수들은 평하기를 '알파고가 고수는 아니었으나, 이세돌도 잘 두지는 않았다. 알파고가 왜 저렇게 두었는지 모르겠다'라고 평하였다. 둘 다 못 두었는데 알파고가 이겼다는 뉘앙스였다. 2 대국에서는 알파고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사람이라면 저렇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수이다. 내가 모르는 수이지만, 자신의 생각에 최고의 수를 둔 것이다. 생각이 있을 것이다'라고 평했고, 알파고를 모두 인정하게 되었다. 호기 넘치고 자신감 넘치던 이세돌 9단도 한 판이라도 이겨보겠다며 목표를 대폭 낮추었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큰 대국 이었다. 빅데이터를 통한 분석 쪽의 일을 하고 있는 나, 그리고 바둑을 유난히 좋아하시던 아버지 간의 대결이라는 느낌도 있었다. 어제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이세돌이 돌을 던지는 순간 '내가 지금 무슨 괴물을 만들고 있는 거지'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오늘도 출근하자 말자 옆자리 선배에게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주 프로님, 우리는 지금 괴물을 만들고 있어요. 더 강력한 괴물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어요. 더 강력한 괴물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만들고 있어요.'
나의 동기이자, 친구이자,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를 기획하고 싶어 하는 꿈이 있는. 이모양과 이런저런 많은 얘기가 떠오른다.
신경망(뉴럴 네트워크) 알고리즘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 '컴퓨터가 과거 데이터를 통해 최상이라고 생각되는 판단을 하는 거야. 근데 이게 웃긴 것이, 몰라. 이게 뭔지, 자기가 무엇을 판단하는 건지, 아무것도 몰라. 다만, 과거에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했더니 꽝이야. 또는 과거에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했더니 좋았어. 이것만 가지고 판단을 하는 거지. 근데 우리 삶과 비슷해. 과거에 머리를 올리고 소개팅을 나갔더니 망쳤어. 처음엔 몰라 근데 10번 다 올리고 나갔는데 다 망쳤어. 그럼 우리는 생각할 거야. 머리 올리고 나가면 소개팅은 무조건 망하는구나. 과학적 근거? 그런 거 없어. 그냥 과거 경험이야. 그렇게 판단하는 거야.'
기술과 행복에 대해서 얘기 한적도 있다. '이미 인간은 생존, 행복은 위한 기술은 충분히 만들어졌어. 빅데이터가 인간을 행복하게 할까? 인공지능이? 카카오톡이? 무인자동차가? 아니야. 편리함은 주겠지만, 행복을 주지는 않아. 우리의 생존과도 무방해. 이미 우리는 충분한 기술을 가지고 있어. 더 이상의 기술은 인간에게 사치야' 이모양도 동의했다.
기계의 감정에 대해서 얘기한 적도 있다. '기계에게 감정을 주고 싶어. 그런데 감정은 어디서 나올까? 우리는 왜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뇌도 전기적 신호에 의해서 동작하니까, 분명 그런 감정을 가지는 것도 그 원리를 안다면 풀어낼 수 있을 거야. 기계가 감정을 가지면 과연 도덕적 판단을 할까? 하지만 도덕적이라는 것도 시대와 문화에 종속적이잖아. 지금 사람을 죽이면 엄청난 죄인이지만, 과연 과거에도 그러했을까? 전쟁이 났는데 적군을 수도 없이 무찔러서 영웅이 되었다면, 그 사람은 도덕적으로 비판받을까? 과연 선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악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의 느낌, 그 사람의 개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기계에게 그것을 넣어줄 수 있을까?' 이 대화는 지금의 시점에 천 번 만 번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를 후회한다. 기계에 감정은 위험하다. 욕구, 욕망은 고사하고, 도덕성 조차 위험한 녀석이다.
미천한 지식을 기반으로 이야기하자면, 알파고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다. 기계학습(머신러닝)에 대한 개념은 오랜 과거부터 있었다. 다만 빅데이터를 컨트롤할 수 있는 기술이 생기면서, 그 이론이 다시 떠오른 것이다. 엄청난 데이터로 학습을 시켜낼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알파고에서 사용된 알고리즘도 오랜 옛날부터 있던 알고리즘들이다. 물론 바둑을 위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추가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구글은 돈이 많은 회사이니, 많은 하드웨어를 붙여서 더 빠르게 학습하고, 더 빠르게 계산했을 뿐이다. 돈 많은 회사들 어디라도 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한다. 페이스북도, 마소도 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구글이 먼저 시작했으며, 마케팅 용도로 사용했을 뿐이다. 알파고 1국의 승리로 인간이 기계에게 지배당한다는 여론이 생기자, 구글에서는 급히 '이세돌이 이겨도 인류가 이긴 것이며, 알파고가 이겨도 인류가 이긴 것이다.'라고 무마한 듯 보인다.
지금 아무것도 아닌 시점에도 인간은 무력함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그만 했으면 한다. 인간의 행복은 고사하고, 인간의 무력함을 느끼게 하는 기술은 기술도 아니며 필요도 없다. 인간 이기는 기술 만드는데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인간의 생존이나 행복을 위해 사용하기를 구글에 아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아버지인 칼 빅터 페이지의 꿈이었던 인공지능을 자기 손에서 이루고자 하는 래리 페이지의 마음은 알겠다. 그러나 그만하자. 내 아버지도 아버지다. 바둑 좋아하시는 내 아버지 생각도 해주라. 이창호를 좋아하고, 이세돌도 좋아하시던 우리 아버지시다. 이제 그만하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의 대화가 떠오른다. "기계도 생각을 하나요?"라고 질문받은, 컴퓨터의 창시자이자,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리는 천재 수학가 앨런 튜링은 답했다. "네 생각을 합니다. 다만 사람의 방식이 아닌 기계의 방식으로 생각하지요". 먼 훗날 구글 욕 좀 했다고 이 기록 수집해서, 기계가 집에 쳐들어 오는 일만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