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가만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아롱이네 사료후원을 다녀왔다. 늘 만나던 아롱이는 보이지 않고, 요란하게 개들만 짖어댔다. 새우 들어간 거는 아롱이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식성을 고려한 캔도 여섯 박스나 가져왔다. 마당에 캔과 사료 박스를 내려놓고, 이대로 두면 비에 젖을 것 같아 현관에서 할아버지를 부르니, 오랜만에 할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나오신다. “사료 몇 포대 가져왔는데, 비가 와서 안에 들여놔야 할 것 같아서요.” 뒤따라 나온 할아버지가 깡통 박스를 먼저 살피신다. “아이구 많이도 가져오셨네.” 어차피 비도 오고 아롱이도 보이지 않아 나는 서둘러 인사를 드리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막 시동을 거는데, 할머니가 저쪽에서 아롱이를 안고 나타나셨다. “이렇게 오셨는데, 인사는 드리야지유.” 할머니는 비를 피해 비닐하우스에서 자고 있는 아롱이를 품에 안고 나오신 거였다. “아, 함모니! 이거 놔라냥. 내려가서 인사할 거다냥!” 아롱이는 할머니 품에서 바둥거렸고, 기어이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역시 아롱이는 할머니와 있을 때 빛이 났다. 마당으로 내려온 녀석은 할머니에게 엉덩이를 찰싹 붙이고 눈을 맞췄다. “함모니! 저 인간이 가져온 거 뭐야? 맛 좀 보자, 응?” 아랑곳없이 할머니는 쪼그려 앉아 녀석의 등만 토닥거렸다. “요즘에도 아롱이 업고 다니고 그러세요?” 지난번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라 한마디 슬쩍 건네 보았다. “그럼유. 이르케 등을 대면 지가 알아서 올라와유.” 하지만 아롱이는 할머니 등을 보고도 딴청을 부렸다. 그러자 할머니가 아롱이 엉덩이를 툭툭 두들겼다. 그게 무슨 신호라도 되는 걸까. 거짓말처럼 아롱이가 풀쩍 할머니 등에 올라탔다. “봤쥬? 얘가 이래 말을 잘 들어유.” 천연덕스럽게 아롱이는 할머니 등에서 먼산을 보며 여유를 부렸다. 할머니는 자랑스럽게 아롱이를 업고 마당 이쪽에서 저쪽까지 걸어가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할머니께서는 저번에 아롱이를 업을 수 있다고 말해놓고 그걸 보여주지 못해 속이 상했으리라. 반면 나와 눈이 마주친 아롱이는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뭐 이번엔 내가 함모니 체면을 생각해 올라와 준 거다냥! 담부턴 어림도 없다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