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둥이

by 이용한

어제는 전원할머니께서 사료가 떨어졌다는 전화를 주셔서 부랴부랴 사료후원을 다녀왔습니다. 사료 6포대와 캔 3박스. 요즘 아랫마을에서 올라오는 산냥이 가족 다섯 마리까지 챙겨주느라 사료가 금방 동이 난다며 할머니께서는 난감해하셨습니다. 사료를 막 나르기 시작하는데, 순둥이가 나와서 냐앙냐앙 인사를 하고 발라당까지 하는 거였습니다. “아이구 순둥이가 뼈만 남은 것 같아서 황태도 삶아먹이고 했는데, 나이가 들어 그렁가. 기력이 없어보여.” 할머니는 측은하게 순둥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사실 순둥이를 처음 만난 건 2010년(할머니에 따르면 순둥이는 2009년에 태어났다고 합니다)입니다. 만난 지는 11년이고, 순둥이 나이는 12살인 셈입니다. 바깥생활을 하는 길냥이가 12년을 살았으니 어쩌면 그 자체로도 기적인지 모릅니다. 당연히 그건 할머니가 지극 정성으로 돌본 덕분이겠죠. 이래저래 순둥이는 저하고의 추억도 많습니다. 과거 산중 외양간에 새끼를 낳고 대문 앞에서 나에게 SOS를 보내 따라가 봤더니 녀석이 낳은 아깽이가 외양간 앞 텃밭에 올망졸망 앉아 있었죠. 그렇게 한달 간을 순둥이 아이들에게 사료배달을 했더랬습니다. 순둥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전원주택으로 들어온 뒤에도 순둥이는 그때의 인연으로 나에게는 언제나 만짐을 허락하고 아이들과 함께 다양한 일상의 모델이 되어 주었습니다. 할머니께서 고양이 밥 주면 다 죽이겠다는 이웃의 협박으로 이사를 결정할 때에도 순둥이는 꼭 데려가고 싶다고 해서 당시 12마리 고양이를 포획, TNR 후 이주방사를 할 때 순둥이와 방울이(순둥이 아들)를 가장 먼저 포획하고 수술했었습니다. 이제는 노쇠하고 병약한 고양이가 되어버린 열두 살 고양이, 순둥이. 아무쪼록 순둥이가 더 오래 건강하게 할머니 곁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녀석은 내가 사료를 다 나르고 떠날 때까지 큰길에 나와 발라당을 하고 오래오래 나를 배웅했습니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그 모습이 눈에 밟혀 공연히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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