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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한 Feb 27. 2017

눈밭에서 맹렬하게 발라당

몇 며칠 눈이 내려 세상은 온통 은세계로 변했다.

눈밭으로 변한 논배미 한가운데, 짚가리에 이르자

부스스한 몰골의 덩달이가 냐앙거리며 기어나왔다.

짚으로 둘러쌓인 덩달이의 임시 거처.

보자마자 녀석은 반갑다는 듯 곧바로 발라당을 하기 시작했다.

녀석에게는 수북이 쌓인 눈 따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눈밭이 무슨 이불이라도 되는 양 거침없이 발라당을 하는 녀석.

내가 자리를 옮기면 따라와서 또 발라당을 했다. 

이 녀석 옛날에 봉달이와 함께 다닐 때만 해도 발라당에 그리 능한 고양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녀석의 발라당은 조금씩 수위가 높아지더니

어느새 발라당의 고수가 되었다.

사실 무수한 고양이가 발라당을 하곤 하지만,

그 모든 고양이가 눈밭에서 발라당을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고양이는 눈을 싫어해서 눈밭에 뒹구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그러나 덩달이 만큼은 그냥 맨바닥에서 하듯이 눈밭에서도 개의치 않고 발라당을 한다.

가히 발라당 종결묘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오랜 기간 못 보여준 발라당을 한꺼번에 보여주려는 듯,

녀석은 맹렬하게 발라당을 했다.

심지어 녀석은 발라당보다 눈목욕에 가까운 행동도 선보였다.

녀석은 고개를 먼저 눈밭에 들이대고 비비다가

점점 자세를 낮춰 온몸을 눈밭에 맡기고 수없이 뒤집기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쩔 수 없이 온몸에 눈이 묻어서 설묘가 따로 없다.      

  내가 말린다고 그만둘 녀석이 아니다.

이 녀석은 내가 사료배달을 올 때마다 이렇게 눈밭 위의 발라당을 하곤 했다.

짚가리 옆에 슥슥 눈을 밀어내고 푸짐하게 사료를 부어주었다.

녀석도 발라당을 멈추고 부르르 눈을 털어낸 뒤 밥을 먹는다.

녀석이 밥을 먹는 동안 멀찍이 비켜나 밥 먹는 녀석의 뒷모습을 본다.

밥 먹는 고양이의 뒷모습은 언제나 아름답고 쓸쓸해 보인다.

밥을 다 먹고 난 덩달이는 다시금 내 앞으로 와 다시 발라당을 한다.

내가 자리를 떠야지만 이 발라당을 멈출 수 있을 것만 같아

나는 발라당하는 녀석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다시금 하늘에선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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