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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한 Aug 10. 2017

어미고양이 또랑이의 밥 배달

도랑을 영역으로 삼아 ‘또랑이’라 이름붙인 노랑이가 있다. 본래 이 녀석은 작년 겨울에 처음 우리집 급식소를 찾아온 손님이었다. 기억하건대 녀석을 처음 목격한 건 눈이 내리던 어느 한밤중이었다. 테라스에서 작은 노랑이 한 마리가 밥을 먹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이후에도 녀석은 자주 눈에 띄었고, 오래 전부터 단골이었던 늙은 노랑이와 곧잘 어울리며 급식소에서 사이좋게 밥을 나눠먹곤 하였다. 사실 작년 봄만 해도 우리집 급식소를 다녀가는 손님은 겨우 한두 마리에 불과했다. 해마다 이웃에서 쥐약을 놓는 바람에 고양이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급식소에 손님이 늘기 시작한 건 작년 여름부터였다. 노랑이 두 마리(늙은 노랑이와 청년 노랑이)와 삼색이, 유기묘로 추정되는 흰둥이에 턱시도 한 마리까지, 다섯 마리 정도가 교대로 급식소를 다녀가는 거였다. 그러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또 한 마리의 고양이가 오기 시작했는데, 지금의 또랑이가 바로 그 녀석이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몰라도 상관없지만 최근 몇 년간 나는 우리집 급식소에 오는 고양이 사진을 일체 찍지 않았다. SNS에 올리는 사진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고양이책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다래나무집 고양이들이거나 사료후원을 하고 있는 이웃마을의 캣대디네, 전원할머니댁, 또다른 캣맘네 급식소 아이들이었다. 우리 동네는 워낙에 쥐약 피해가 심한 탓에 대놓고 고양이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고, 밥을 주는 것조차 최대한 비밀에 부쳐야 했다. 그런데 올 6월쯤 이웃 할아버지(과거 쥐약문제로 다툼이 있었던 할머니네)가 집까지 찾아와 개울에 새끼고양이들이 있다며 소매를 잡아끄는 바람에 정말 몇 년 만에 동네에서 다시 카메라를 들고 고양이 사진(기록을 위해 휴대폰으로 테라스 급식소에 온 고양이 사진을 몇 컷 찍은 적은 있지만)을 찍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고양이 가족이 또랑이네 아이들이었고, 지난 달 녀석들의 사연을 처음 소개하게 된 거였다.

여섯 마리 또랑이네 아이들은 개울이 영역이자 놀이터였고, 제방의 배수구와 바위틈이 은신처였다. 한동안 나는 녀석들에게 경단밥을 배달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장마철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 차례 비가 내리고 나자 또랑이는 이곳이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여섯 마리 아이들을 데리고 이사를 한 것이다. 또랑이로서는 현명한 판단이었다. 자주 집중호우가 퍼부었고, 개울물이 넘쳤다. 또랑이는 폭우를 뚫고 예전과 다름없이 찾아왔지만, 얼마간 아이들의 모습은 만날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나는 아이들 숫자만큼 닭가슴살을 내놓았고, 또랑이도 아이들 숫자만큼 그것을 배달했다. 새로 옮긴 은신처가 먼 탓에 녀석이 한번 배달을 다녀오면 한참이나 걸렸다. 은신처에 가려면 동네 한복판도 지나가야 하고, 사람들 눈치도 봐야 하고, 이래저래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다. 

그게 녀석도 힘들었을까. 어느 날부턴가 녀석은 한 번에 서너 마리씩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집으로 왔다. 데려온 아이들은 차 밑에 두거나 예전에 살던 곳에서 가까운 둑방의 수풀 속에 두곤 하였다. 하루에 여섯 봉지씩 닭가슴살을 뜯어 밥그릇에 내놓으면 또랑이는 여섯 번씩 발품을 팔아 아이들에게 다녀왔다. 그 바람에 며칠도 안 돼 닭가슴살 한 박스가 동이 나곤 했다. 한번은 저녁 무렵이었는데, 또랑이가 닭가슴살을 물고 둑방 위를 걸어가 아이들과 만나는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본 적이 있다. 사람이나 고양이나 먹고 사는 일이 이렇게 눈물겹고 아름다운 거구나. 장마가 얼추 끝날 때까지 녀석의 밥 배달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여섯 마리였던 아깽이는 다섯 마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영역을 옮기고 장마철을 거치면서 노랑이 중 한 마리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듯했다. 이래저래 지루한 장마도 끝이 나고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었다. (이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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