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랑이네 아이들을 처음 만난 건 지난 5월 마지막 날이었다. 이웃집 할아버지가 집으로 찾아와 나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따라오라기에 줄레줄레 따라갔더니 손가락으로 도랑 쪽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도랑가에서 꼬물거리는 여섯 마리의 아깽이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되는 그야말로 조막만한 아이들이었다. 그때 문득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은 도랑을 영역으로 살아가는 ‘또랑이’라는 노랑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다시 그곳을 찾았더니 또랑이가 아깽이들 옆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또랑이가 바로 이 여섯 마리 아깽이의 어미고양이였던 것이다.
또랑이로 말할 것 같으면 지난 겨울에 이 구역의 대장인 ‘여포’가 처음 테라스 급식소에 데려온 녀석이다. 당시만 해도 또랑이는 쭈뼛쭈뼛 꿔다 논 보릿자루처럼 앉았다가 뒤늦게 눈치를 보며 밥을 먹고는 서둘러 사라지곤 했다. 그랬던 녀석이 올 봄이 되면서 넉살 좋게 테라스에 오래도록 머물며 이따금 간식을 내오라며 이야옹거렸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꿔다 논 보릿자루를 넉살 좋은 고양이로 변화시킨 것이다. 어쨌든 또랑이네 아이들을 만나고 며칠 뒤부터 나는 녀석들을 위해 경단밥을 만들어 은신처에 던져주곤 했다. 녀석들의 거처가 접근이 어려운 절벽 밑이기도 했지만, 은신처 가까이 내려가는 건 또랑이도 아깽이들도 원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렇게 보름 정도 경단밥 배달을 하던 중 갑자기 어느 날 또랑이네 가족이 거처를 옮겨버렸다. 이유인즉 장마철 물난리를 대비해 보다 안전한 곳으로 아깽이들을 이주시킨 거였다. 하지만 또랑이는 여전히 하루의 대부분을 우리집에서 보내곤 했다. 내가 닭가슴살을 내어주면 언제나 그것을 물고 새끼들이 기다리는 둥지를 다녀왔다. 많게는 하루 여섯 번씩도 녀석은 밥 배달을 했다.
매번 밥 배달하는 것이 힘들었을까. 녀석은 일주일 정도의 밥 배달 기간을 지나 아깽이들을 집 앞으로 데려오기 시작했다. 집 앞 자동차를 베이스캠프로 삼고 또랑이는 좀 더 편하게 밥 배달도 하고, 때에 따라선 테라스 아래로 불러 밥을 먹이곤 했다. 이것도 잠시, 뱃구레가 커진 만큼 두려움도 사라진 아깽이들은 이제 배달 따위 필요없다며 직접 급식소에서 밥을 받아먹고, 엄마나 아빠(여포)의 행동을 따라 나에게 당당하게 간식 요구까지 했다. 한번 대담해진 녀석들은 아예 급식소를 차지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테라스와 마당에서 보냈다. 올해는 유난히도 비가 자주 내렸는데, 그럴 때마다 녀석들은 비를 피해 현관을 점령해버렸다. 맑은 날에는 테라스 계단을 게스트 하우스 삼아 낮잠을 잤고, 때때로 마당에서 공놀이를 즐겼으며, 마당 앞의 나무란 나무는 수시로 녀석들의 캣타워가 되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각각 방울이(노랑이), 꽈리(무늬노랑이), 똘이(노랑이), 콩이(삼색이), 깨비(회색카오스)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면 언제나 녀석들이 있었다. 외출에서 돌아와 마당으로 들어서도 언제나 녀석들이 반겨주었다. 급기야 녀석들은 나를 의식하지도 않고 저희들끼리 마당과 테라스에서 장난을 치고, 제멋대로 호박에 줄을 긋고, 방울토마토를 따 드리블을 해대곤 했다.
그런데 지난 10월 초 뭔가 분위기가 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깽이들을 위해 하루에도 대여섯번씩 먹이를 물어나르던 어미고양이 또랑이가 아깽이들을 보며 하악거리고, 근처에 오면 내쫓고, 심지어 밥도 같이 먹으려 하지 않는 거였다. 아, 드디어 아깽이 독립의 시기가 된 거였다. 또랑이는 점점 더 아깽이들에게 냉정해졌고, 아깽이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며 엄마를 원망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중순 또랑이는 결국 아이들을 완전 독립시켰다. 처음 며칠은 방울이와 깨비만 남고, 다른 아이들은 보이지 않더니 며칠 뒤 방울이와 깨비도 급식소를 아주 떠나고 말았다. 설마 아주 떠나기야 하겠어, 라고 생각하며 나는 이제나 저제나 녀석들이 배가 고프면 다시 찾아오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보름이 지나도 녀석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또랑이도 요즘 아이들을 떠나보낸 뒤, 한밤중이나 새벽에만 다녀가곤 한다. 또랑이네 아이들이 떠나자 이곳에는 이제 낯선 턱시도 한 마리와 고등어가 유입되어 우리집을 찾고 있다. 사실 길고양이는 태어나 3~4개월 사이에 독립을 시키는 것이 길 위의 법칙이고, 질서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어쩌면 또랑이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5개월 넘게 끼고 있었으니, 일반적인 독립의 시기를 훨씬 넘겼는지도 모른다. 정들자 이별이라고, 이런 이별은 언제나 마음이 편치 않다. 그렇잖아도 내가 사는 지역은 툭하면 텃밭에 쥐약을 놓는 곳이라 그게 늘 걱정이다. 아, 녀석들. 간다고 말이라도 하고 가지. 어디로 갔든 오래오래 살아남아서 꼭 한번 다시 보자. 그리고 언제든 배고프면 돌아오너라. 오늘도 날이 참 쌀쌀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