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게 없어서 총각무 나눠먹는 길고양이 가족

by 이용한

몇 차례 눈이 내리고,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입니다. 천지간에 폭설이 내려 세상이 온통 은세계로 바뀔 무렵이면 시골의 고양이들은 먹이를 찾아다니느라 애를 먹습니다. 고양이가 먹을만한 모든 것이 눈에 덮이고, 그나마 남아 있는 먹이는 꽁꽁 얼어붙어 입을 댈 수가 없습니다. 도심에는 그나마 캣맘이 있어서 사료를 얻어먹을 수 있지만, 시골에서는 캣맘을 만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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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눈이 내리는 날이면 만사를 제치고 나는 밥 배달을 나갑니다. 영하의 날씨에 눈이 내려 사나흘씩 굶주린 고양이는 면역력이 떨어지고 체온도 떨어져 저체온증으로 죽고 맙니다. 따라서 고양이에게 아사와 동사는 같은 말입니다. 먹은 게 없으니 체온이 떨어지고, 결국 얼어죽고 마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는 특히 폭설이 내린 뒤에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폭설 속에서 먹이를 구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에) 폭설 속 밥 배달은 어언 10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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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밥 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가 눈밭에 빠져 연탄재라도 구하러 무작정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거기서 어느 길고양이 가족을 만났습니다. 골목 끝에서 어미 턱시도와 아깽이 턱시도가 맵고 짠 총각무 하나를 나눠먹고 있었습니다. 녀석들이 뜯어먹던 무에선 고춧가루와 양념이 범벅된 국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어미 고양이가 크게 한 입 베어먹자 옆에 있던 아깽이 턱시도가 나도 좀 먹자며 어미를 밀치고 총각무를 독차지합니다. 어미는 한발 물러나 그런 아깽이를 바라만 봅니다. 그러다가 배고픔을 못 이겨 한 번 더 한 입 베어뭅니다. 아깽이는 또다시 엄마를 밀쳐내고 총각무를 입에 뭅니다. 아까부터 뒤로 밀려난 삼색이는 그저 입맛만 다시고 있습니다. 배고픈 길고양이 가족의 안타까운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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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무를 다 먹은 턱시도의 입과 발은 김치 국물이 묻어 흰털이 벌겋게 물들었습니다. 하필이면 가져온 사료가 없어서 나는 다시 눈밭에 빠진 차로 되돌아가 사료 한 봉지를 가져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어서 그릇도 없이 구석에 사료를 내려놓고 멀찍이 물러났습니다. 두 마리 아깽이는 걸신들린 듯 숨도 쉬지 않고 그것을 먹어치우기 시작합니다. 어미는 새끼들이 배를 다 채우고 난 뒤에야 안심하고 사료를 씹어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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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 길고양이 식구는 한참이나 코를 박고 사료를 먹고 나서야 살겠다는 듯 눈빛이 평온해졌습니다. 뒤늦게 어미는 큰길로 나와 눈 녹은 물로 목을 축입니다. 아깽이들도 어미를 따라 눈 녹은 물로 입가심을 합니다. 골목 저편에서는 또다시 칼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일었습니다. 모든 게 얼어붙은 계절, 고양이는 먹을 게 없어 김치며, 언 호박이며, 배추 등 무엇이든 먹어야 하고, 그래야 살아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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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시골길을 산책하다보면 텃밭이나 냇가에 버려진 음식 쓰레기를 뒤지는 고양이를 만나곤 합니다. 미처 사료를 준비해 오지 않은 산책길에 만나는 그런 모습은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이런 맵고 짠 음식이라도 먹어야 하는 길고양이의 삶! 고양이도 우리만큼 온 힘을 다해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보다도 생이 절박하겠지요. 이 혹독한 겨울이야말로 고양이에게 사료 한 줌, 따뜻한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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