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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다 Oct 18. 2018

첫째라서

 "6살때인가, 유치원에서 1박 2일로 캠프를 갔어. 다른 친구들은 엄마를 보면서 손을 흔드는데 우리 딸만 엄마를 안보더라. 그래서 엄마가 나중에 왜 버스 출발할 때 엄마한테 손 안흔들어 준거야 물었거든. 근데 너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엄마를 하루동안 못 볼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나왔는데 내가 울면 엄마가 슬퍼할까봐."


아마도 그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였다.

나를 되돌아 보게 된 것이.

어릴 적부터 유독 '애늙은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린 아이치고 너무 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집안에서 첫째이다. 한 살차이가 나는 동생이 하나 있다. 어릴 적, 동생이 울어서 동생 반에서 함께 수업을 듣기도 했고 우리 반 친구들과 노는 대신 동생과 함께 하기도 했다. 어린 손으로 동생에게 맛있는 밥을 차려주기도 했고 옷을 입혀주기도 했다.

내가 누나니까,
나는 동생을 지켜줘야하니까.


누나로서 동생을 돌봐야하는 것은 당연했고 먼저 양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참아야지.', '내가 더 강해져야 가족을 지킬 수 있어.' 되뇌었다. 나의 힘듦을 말하기보다는 혼자 참고 해결하는 연습을 했고 가족들에게 그 짐을 지어주고 싶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첫째 딸인 '나', 누나인 '나'가 '진정한 나'를 가장하고 있었다. 싫은 것은 아니었다. 매 순간이 행복했고 좋은 추억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과거를 돌아볼수록  어린 나이에 어리광 한 번 부려보지 못한게 속상했다. 내가 먼저 하고 싶다고, 나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한 내가 안쓰러웠다. 첫째라는 말이 묵직하게 나를 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려져보기'로 했다.


그 때 엄마에게 투정한 번 부려보지 못한 걸 지금, 동생에게 화내지 못한 걸 지금. 그냥 한 번 툭. 이 한 번으로 인해 괜찮아진 것 같았다. 내가 나를 달래는 법을 배웠고, 어깨 위 놓인 무겁던 말이 조금은 덜어진 것 같았다. 첫째에 익숙해진 '나'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첫째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나도 모르게 마음 속 한켠에 그 책임감이 자리잡고 있음을. 그러나 그들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은 가족들에게 그냥 '나'를 보여주면 좋겠다. 나의 경험이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세상의 모든 첫째에게 잘 하고 있다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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