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명품을 좋아한다.
백화점 1층에서 하루종일 쇼핑을 할 수 있을 만큼 좋아한다. 가방, 시계, 주얼리, 신발 등 가리지 않고 관심이 많다. 브랜드마다 가지고 있는 역사와 자부심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명품만이 가진 고급스러움이 참 좋다.
결혼준비로 백화점 갈 일이 많아지면서, 그간 탐내왔던 명품들의 가격표를 들춰보게 되었다. 입이 떡 벌어졌다. 작년만 해도 이 가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해가 바뀔 때마다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격이었다. 놀란 나를 보며 점원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천만원에 가까운 가방을 없어서 못 사는 상황이라니. 돈만 있으면 다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 점이 소비 심리를 더욱 부추겨서 너도 나도 오픈런을 하게 만든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얇아져 가는 내 지갑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미쳐가는 명품시장에 대해 분석을 해봐야겠다.
명품의 본질
‘명품’ 곧 ‘럭셔리’의 근원은 유럽의 역사와 맞물린다. 유럽 전역에 문학과 예술의 부흥을 일으킨 르네상스를 발판 삼아 예술적 소양이 패션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명품 브랜드의 90%는 유럽산이다). 즉, 장인들이 한땀 한땀 만든 예술 작품들의 일환으로 명품 가방, 주얼리, 시계 등 ‘명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명품의 본질은 이러한 역사보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 명품 자체보다 명품을 대하는 소비 심리가 그 속성을 더 잘 설명하기 때문이다.
고대 국가들은 자신들의 ‘우월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거대하고 하늘만큼 높은 탑을 쌓곤 했다. 이는 자신들의 위상을 스스로 높여서 다른 민족들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우리가 무리해서라도 명품을 사려는 심리와 매우 닮아 있지 않은가? 1세기든 21세기든 명품은 본질적으로 ‘우월감‘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결혼식, 동창회 등 오래간만에 또래들을 만나는 모임들에만 가면 각종 명품들이 보이는 것이다. 있어 보이는 로고 하나로 그 동안 잘 살아왔음 확실하게 뽐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심리학에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s)'라는 말이 있다. 상품이 가진 효용(Utility) 가치 때문이 아니라, 과시효과 때문에 더 많이 소비되는 현상을 뜻한다. 즉, 소비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소유‘하기 위함이 아니라 ’소비‘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누구나 ‘나는 남들과 다르다’, ‘나는 성공했다’라는 숨은 의도를 가지고 명품 제품을 구매하게 된다. 맞다. 이게 바로 사람들이 명품을 하나쯤 갖고 싶어 하는 가장 솔직한 마음이다. 또한 가방 하나가 중고차 한 대 값이어도 용인하게 만드는 마켓팅 전략이다.
이해는 가는데 뭔가 찝찝하다.. 그럼 왜 옆집 고등학생이 구찌를 매고 다니는 거지?
명품의 변질
명품은 왜 ‘럭셔리’로 불릴까?
답은 간단하다. 희소하기 때문이다. 가공술이나 소재가 특별하고 무엇보다 ‘아무나 가질 수 없기에’ 명품인 것이다.
시장원리에 따라 수요보다 공급이 확연히 적으면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은 떨어진다. 국민 예물백 샤넬 클래식백이 1500만원에 육박한 것도, 돈이 있어도 에르메스 버킨백을 살 수 없는 것도 다 같은 이치이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제품 가격을 인상하거나 공급을 줄이는 방향으로 럭셔리 브랜드의 가치를 방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명품 제품이 ‘대중성’을 갖게 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그 제품의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대중성과 희소성은 반대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희한한 현상이 나타난다. 제품이 유행을 타면서 가치는 이미 떨어졌는데 가격은 치솟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제품을 구매한다. 왜일까?
명품을 사는 소비자들의 심리가 변했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명품을 살만한 여유가 있거나, 집 안에 경사가 있을 때 백화점 명품코너를 갔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중고등학생도 미우미우를 들고 다니고 대학생이 까르띠에에서 커플링을 맞춘다.
명품이 가진 희소성이 점점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흔해지고 흔해진다. 반면 유행의 이면은 소외감이다. 많은 사람이 누리면서 동시에 누리지 못한 자에게 소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유행의 속성이다. 그래서 명품 하나 갖고 있지 않으면 위축되기 쉬운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렇다면 너나 할 것 없이 명품을 소비하고 심지어 빚을 내서라도 명품을 구입하고 과시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위계질서의 상단을 차지하겠다는 목적일까? 아니다. 이는 그저 소비자의 소신 부재를 뜻하는 것이다.
잘 나가는 유명 연예인이 특정 브랜드의 백을 들고 나왔다 하면 인터넷 쇼핑몰에서 해당 상품이 금세 솔드아웃 되곤 한다. 이를 ‘밴드왜건 효과’라고 부른다. 소비에 대한 자신의 취향과 소신이 없는 사람들은 가격에 관계없이 그저 잘 나가는 제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결혼식에 가면 보이는 가방과 시계들이 다 비슷한 것이다.
부를 쌓기 어려운 시대에 명품으로라도 자신을 높여보고 싶은 마음은 공감한다. 또한 자기 안에 표현할 것이 적을수록 과시를 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 공감을 한다면, 이제는 과소비를 하기 전 내 안에 솔직한 동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저 명품이 갖고 싶은걸까?
아니면 뒤쳐지고 싶지 않은걸까?
아니면 내 취향을 모르는걸까?
명품의 본질은 소외감이 아닌 우월감이다. 가방 하나에 몇백만원 이어도 시비를 걸지 않았던 건, 명품이 가진 희소성과 우월감 때문이었지 ‘인기’ 때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명품이 예전만큼 멋져 보이지 않는다. 물론 여전히 갖고 싶은 명품템들이 있지만 이 또한 유행을 타면 흥미가 떨어진다. 당장 명품을 사는 것보다 통장에 여유가 생길 때까지 내 소비 취향을 찾아가 보려고 한다. 과소비의 원인은 소오신 부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