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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스 Dec 11. 2023

때로는 효율적인 선택이 가장 비효율적이다

효율성과 행복의 상관관계

결혼 전 남자친구(현 남편)의 이사를 도와주면서 크게 한 번 다툰 일이 있었다.


물론 결혼 전에 싸울 일들이 수두룩 빽빽하게 많다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주제에서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바로 남자친구의 '침대' 때문이었다.

예비부부의 침대 논쟁

당시 남자친구는 수년간 사용해 온 본인의 애착 침대를 신혼집 창고에 보관하고 싶다(언젠가는 손님방에 쓸 일이 있을 거라는 주장과 함께)는 입장이었고, 나는 강하게 반대했다.


창고가 방 하나 크기만큼도 아닌 데다가 그런 '비효율적'인 사고를 한다는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평소에는 그렇게 이성적이던 사람이 어떻게 용달차 비용을 내서라도 그 거대한 침대를 옮기고 싶어 하다니. 고가 브랜드의 매트리스면 모를까 이미 어느 정도 꺼져있는 상태였어서 소장가치도 적었다. 그래서 나는 답답한 어투로 물어봤다.


"왜 그렇게 비효율적인 생각을 하는 거야?"


남편은 매사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를 저격하듯 회심의 질문을 하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되려 나의 마음을 찔렀다.


"꼭 효율적이어야만 가치가 있는 거야?"


침대 사건은 (다행히) 나의 뜻대로 종결이 되었으나, 남편의 이 말 한마디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서 떠돌고 있었다. 그리고 인생에서 '효율'이 가지는 가치와 의미에 대해 자문하게 만들었다.


효율의 반대는 비(非)효율?


효율적(efficient)
들인 노력에 비하여 결과가 큰 것, 낭비 없이 자원 배분이 잘 이루어진 상태

비효율적(inefficient)
들인 노력에 비하여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in-put보다 out-put이 더 큰 경우를 흔히 '효율적'이다라고 표현한다. 반대로 in-put에 비해 out-put의 가치가 떨어지는 일, 예를 들어 기대했던 효과가 나오지 않거나 원하는 정도의 결과치를 내지 못했을 때의 상태를 '비효율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 판단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그렇다면, 효율적이지 않은 일을 '비효율적이다'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된 배경은, 미래의 주역인 (MZ세대를 포함한) 젊은 세대가 '효율'에 민감하고 또 이러한 특성이 세대의 가치관에도 반영이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곧 윗세대들의 삶을 지켜봐 온 입장으로서, 비효율적인 생활양식(회사에 충성, 자녀 양육을 위한 희생)은 피하고 새로운 생활양식(파이어족, YOLO 등)에 접근을 해보는 태도는 젊은 층들이 선택한 가장 '효율적'인 생존 수단이었을 것이다.

과거 세대와 현세대의 차이 -최재천의 아마존 Youtube 중

반면 '효율적'인 생활양식에 지나치게 집중하다 보면 이기심이 자라나고 좁은 시야에 갇혀서 살기 쉽다.

흔히 '효율'이라는 단어는 '측정'과 '수치'에 기반하여 사용되곤 한다. 그렇기에 효율을 추구할수록 계산적이고 보이지 않는 이면의 가치를 배제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손해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기반이 되어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보장이 되지 않으면 방어태세를 올리기 쉽다.


하지만 정작 삶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이런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다. 보다 더 잘 살기 위해 취한 효율적인 태도가 도리어 '비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행복의 본질은 효율성을 포기해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효율성을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


1. 사랑, 깊은 유대감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0.6명으로 바닥이 아닌 지하를 뚫고 있다. 효율적으로 생각하면 여성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맞다. 어쩌면 경제적인 측면에서 남성도 마찬가지다. 최재천 생물학 교수는 "동물들도 먹고살기 힘들면 새끼를 덜 낳는다"며 지금 시대에 아이를 낳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라고까지 말을 했다. 


통장 잔고 나아가 물가와 부동산 시세를 봤을 때, 누구에게나 출산은 비효율적인 일이다. 오죽하면 아이는 생각 없을 때 낳는 거라는 말이 있겠는가. 이처럼 인생에서 '효율'을 포기해야만 결단할 수 있는 일이 출산이다.

2022년 출산 관련 설문조사 내용

더 본질적으로 생각해보면, 서로 간에 조건없이 사랑을 나누고 깊은 유대감을 공유하는 '관계'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관계는 '비효율성'을 각오해야만 얻을 수 있다. 비단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배우자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희로애락을 모두 함께 겪어야 하는 혼인 관계에서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범위를 넓혀서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사적인 '깊은 관계'를 맺는 일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주는 만큼 돌려받고자 하는 순간 관계는 쉽게 깨진다. 그리고 사람 간의 관계만큼은 주고 받는 내용을 정확히 정량화할 수 없다.


Z세대에 썸만 타고 연애는 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심지어 잠을 자는 사이여도 연인 사이라는 관계 정립을 회피하며며 만남도 이별도 모두 쿨하다. 이런 문화의 바탕은 '상처받고 싶지 않아 하는 습성'에 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상처받을 일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애초에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다. 즉, 관계에도 '효율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해는 가지만 참 씁쓸한 일이다.

대가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 없이 살아가는 게 가능한 일일까?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면 불건강한 삶에 가깝다. 사람 간의 사랑은 어쩌면 가장 비효율적인 일일 것이다. 주는 만큼 돌아오리라는 보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심리적 자원을 기꺼이 내어주는 행위가 효율에 익숙한 세상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희생과 손해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수록 정작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한 깊은 관계도 유대감도 사랑도 얻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2. 신뢰감

사랑에 이어 신뢰 또한 '효율'과는 가깝지 않은 감정이다. 신뢰는 애정 못지않게 인생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관계의 속성이기도 하다.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고는 관계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렵고 안정감을 느끼기 힘들어진다.


기업과 소비자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소비자와의 신뢰를 쌓기 위해 기업 손익의 '효율성'을 포기한 착한 기업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기업의 이윤만 생각하면 싸게 떼와서 비싸게 파는 데에 집중하면 된다. 하지만 이러한 기업들만 시장에 존재한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하고 무기력할까.

다이슨 불매운동의 배경

그래서인지 소비자들은 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기업에 (값이 더 비싸더라도) 지갑을 연다. 만약에 '효율성'에만 집중하는 게 기업의 성공 비결이었다면 소비자들은 매번 비싸게 상품을 사거나 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효율성을 포기한 기업들이 존재하므로 소비자와 기업 간의 실리(benefit) 이외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이 되었다. 기업은 상품을 파는 역할을 넘어서 팬덤을 형성하고 고객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문화를 창조하는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차갑게 느껴지던 자본주의 시장에 따듯하고 건강한 트렌드가 새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더 수준 높은 가치를 위하여 기업의 이익(효율)을 잠시 접어두는 큰 용기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시작된 흐름이다.




'소탐대실'이라는 말처럼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부수적인지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물론 효율적인 선택이 우선되어야 하는 상황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질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히 많이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특히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효율적인 접근이 가장 비효율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아직 남편의 침대에 대한 나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의 효율을 고집하면서 남편과의 사이가 멀어져 버렸다면 나는 오히려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일 수 있다.


보다 더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을 꿈꾼다면, 우리의 인생에 비효율적인 일 하나쯤은 허용해보는건 어떨까? 결과가 어떻든 그 순간 살아가는 큰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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