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대해 민감한 편이었다. 놀이터에서 찧고 까불며 돌던 초등학생 시절 1999년이 되면 핵전쟁이 일어나서 모든 사람들이 죽는다는 책을 보고서는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하얀색 버섯 모양으로 피어오르는 광경을 보았다(신기 아니고 갑자기 TV에서 보던 영상이 떠올랐나 보다) 그런데 그 광경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나는 눈물이 막 났다. 같이 놀던 아이들은 왜 저래 하는 불안한 눈 빛으로 쳐다보더라...
옛날에는 방공호 대피 훈련을 했다. 학교에서는 반공 수업의 일환으로 사이렌이 울리면 계단이나 지하 대피소에 줄을 세워 아이들을 몰아넣었다. 그곳은 창고와 비슷해서 뜀틀이나 각종 구기 종목의 공과 같은 물건들이 차 있어 아이들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있어야 할 정도로 좁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아이들은 킥킥거리면 그 좁은 공간에서의 놀이를 즐겼다. 거기서 울상인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혼자 진짜 전쟁이 나서 여기까지 공산당이 쳐들어오면 어쩌나, 하고 눈물이 났다. 역시 불안한 눈 빛으로 반 친구들은 나를 쳐다봤다. (거친 행동과 불안한 눈 빛, 그걸 지켜보는 나~)
뭐 지나친 반공 교육에 쉽게 세뇌가 된 탓이었을 수도 있고 노스트라다무스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 당시에는 북한 사람들은 다 빨간 돼지이고 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feat. 똘이장군)
그 예언자는 1999년 9월 9일 전 세계가 멸망된다고 했다. 나는 꽃다운 청춘에 이렇게 죽는구나 하고 만화책을 보다가도, 자전거를 타다가도, 아이스크림을 먹다가도 한 없이 슬퍼졌다. 그리고 이렇게 슬퍼하는 사람은 내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이 바보 멍청이들, 수준 낮은 모지리들' 이라며 조소했다.
하지만 그들은 위너고 나는 루저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무려 몇십 년이 지나서였다. 정말 쓸데없는 걱정으로 나는 어린 시절을 보이지도 않는 죽음과 싸우며 그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파우스트 박사는 그가 죽을 당시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었다고 했다. 신학, 의학, 법학, 철학, 학문 모든 부분에 걸쳐 끝없는 연구와 탐구를 통해 삼라만상의 지혜를 추구해 그에게 '박사(Doctor)'라는 호칭이 내려진다. 박사는 당시 소수의 몇 명에게만 수여되는 커다란 훈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증서를 찢어버리며 이런 것을 위해 학문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며 분노한다. 자신의 인생이 그러한 증서로 표현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죽음에 다다르는 나이에 이르러서야 인간의 원초적인 질문- 빅 퀘스천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 했다. 그는 '호문클루스'라는 인공 생명체까지 만들어 낸 그야말로 신과 같은 경지에 이른 상태였다.
"방대한 지식을 알게 되었지만 인간이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해.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 우주를 꿰뚫는 진리! 생명을 움직이게 하는 신비한 정체! 단지 그것 하나... 그것만 알 수 있다면..!"
그의 독백은 계속된다.
"젋었을 때는 연구에 모든 것을 써버리고 책과 연구와 밤샘하며 살아온 인생.. 어느덧 정신을 차렸을 땐 마음 깊이 사랑하는 여인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기쁨과 즐거움도 알지 못하고 아픔과 분노를 토론할 친구도 없지... 난 지금까지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감정이라는 게 무엇인지 하나 모른 체 살아왔다... 이제 인생에 희망이라는 게 없구나.."
이때 그의 방에 시꺼먼 개 한 마리가 들어와 그에게 새로운 삶을 살라고 유혹한다. 새로운 삶을 다시 선택하면서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살라고 한다. 그리고 만족한 삶을 원할 때까지 산 이후에 만족이 되거든 '아름다운 시간이여, 멈춰라'라고 말할 때 악마는 그에게 영혼을 가져가겠노라 서약한다. 그렇게 20대의 팔팔한 젊은이가 된 파우스트는 두 명의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한 명의 여자는 불행한 삶을 살게 만든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얻은 땅의 간척사업의 성공으로 수백만 명이 그로 인해 생의 터전을 일구게 되고 박사는 이에 만족한다.
그는 심연의 어둠 속에서 그동안 살아온 삶을 반추한다. 결국 인생이란 어둠 속을 헤매는 것. 고독한 여로인 것이다.
"다시 생을 살게 되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를 사랑했지만 결국 인간은 고독한 존재.. 목표가 없는 어둠 속에서 고독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서 누군가의 유대를 구하지. 우주는 고독하다. 불안을 지우려 하고 빛을 갈구하고 무한의 어둠을 두려워하기도 하지. 별을 탄생시키고 생명을 키운다. 심판과 구원의 사슬에 영혼을 묶어두고 기뻐하는 오만한 신은 없다. 불안은 이제 사라졌다. 시간이여 멈추어라, 이 순간은 지금 어느 것보다 아름답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들 모두 이 우주로부터 태어났다. 형태가 있는 것은 반드시 멸하고 쇠약해지지만 이것은 단지 존재가 변할 뿐인 것이다. 결국 그 존재가 무로 되는 경우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이나 사상, 정신 이런 것들도 결국 사라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지난 2월에 타계한 이어령 교수가 마지막 친필 유작집으로 내놓은 <<눈물 한 방울>>에는 '평등'에 대한 글이 있다. 그는 세상 그 어떤 위대한 정치가도, 경제학자도 평등을 구현하지 못했다고 했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불평등하게 태어난다. 그런데 유일하게 이 평등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외로움'이다.
결국, 인간은 혼자다. 파우스트 박사의 독백처럼 인간은 고독한 존재다. 우주도 고독하다.
죽음을 목전에 둔 노학자가 말하는 '외로움'.
그 어느 누구도 같이 갈 수 없는 죽음을 향해 가는 나. 그리고 그걸 견뎌야 하는 나. 아무도 대신해줄 수도, 함께 공유할 수도 없는 그 감정...... 누구에게나 평등한 인생을 살아가는 혼자라는 외로움.
인간은 평등하다. 누구나 죽음에 향해 홀로 맞선 외로움을 견디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나도 오늘 외로웠다. 누군가에게 채워지는 감정이 아니다. 일시적으로는 그렇지만 멀리보면 결국에는 내가 채워야 하는 내가 극복해야 하는 감정인 것이다. 세상 부자도 세상 그 어떤 권력가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평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