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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Oct 14. 2015

때를 기다리는 사람

툇마루


 

 

세상엔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세상엔 그를 기다리는 때가 있다

때를 만난 그의 표정을 보았는가

욕탁(浴卓바닥을 쓰윽 물을 쳐서 닦아내고는

가볍게 바닥을 탁 치며 신호를 한다

쫙 짜낸 물수건 밀어넣은 이태리타올

비로소 때를 만난 마음

아귀에 몰아쥐는 마음을 보았는가

세상엔 자기 허물을 맡기는 사람이 있고

세상엔 남의 허물을 벗기는 사람이 있다

허물을 분노하거나 침뱉는 자는

때를 밀 수 없다 허물은 당연하며

고마운 존재라고 믿는 자라야

그 세계의 프로이다 지구의 티끌로부터

인간을 지키기 위해 남몰래 악력(握力)을 키워온 사람

그는 오직 때에 대해서만 집중한다

인류에게서 때를 떼어내는 일만이

그를 분발하게 하는 문제 중의 문제이다

빤스 한장만 걸치는 이 바닥이라고

깨달음의 물 한 바가지가 왜 없겠는가

세상에 때는 많지만 그리 호락호락한 때는 없다

어떤 때는 두번 다시 오지 않는다

때를 미는 마음에 사심이 끼면

빨래판에 빨래 밀듯 거친 숨소리를 밀면

누운 사장님이 금방 알아차린다

세상의 허물을 벗기기만큼이나 탁자 위의 허물도

벗기기 쉽지 않다

허물(虛物),

그 빈 것에 마음이 들어있다


인체는 네 개의 면을 가진 구조물이다

똑바로 누우세요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그리고 엎드리세요

면마다 서로 다른 결이 있다 다른 음악이 있다

다른 숨결이 있다 다른 뉘앙스가 있다

가슴바닥 훑는 봄바람같은 손길

등골짝 쓸어내리는 가을물같은 흐름

옆구리 계단 층층이 내려갈 때

한 보름 외롭던 시간마저 씻어내주지 않으면 안된다

느리게 가야할 데는 제 마음도 황소행법

급하게 내달려야 할 데는 분기탱천 롤러코스터

조심조심 가야할 때는 심장 박동도 멈춘 달팽이보법

세밀하게 긁어야할 곳은 콕콕 지르는 족집게타법

어떤 면에는 욕망이 그득하다 어떤 결에는 가려움이

넘친다 어떤 살에는 뉘우침이 출렁거린다

이걸 살 떨리도록 애틋하게 공감하고

그 살의 마음이 되지 않으면

당신은 아직 이태리맨이 아니다

때를 미는 자는

자기 때를 남에게 맡기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살결은 놀랍도록 투명하고 매끈하다

타인의 때를 미는 건 자기 때를 미는

육탈공법이 아니던가

육감이 타올이며 체감은 물바가지다

출렁이는 누운 살들을 부지런히 쓰는 동안

근육은 분발하며 살아나 번쩍거리고

제 허물 절로 씻겨져 환한 몸이 되었다

무엇인가를 민다는 것은 아름답다

바윗덩이처럼 굳어진 것들을 녹여

결결이 눈 뭉치듯 발라내어 민다는 것

세상의 때를 놓치고 맨몸 맨바닥에 내려와

시간을 민다는 것 밀어도밀어도

또 밀 것이 밀려오는 이 인류최고의 직업을 위해

가만히 작업용 빤스를 챙긴다는 것

어부가 배를 띄워 첫 바다를 밀듯

인간의 뱃머리를 가만히 미는 시간이 있다는 것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름답다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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