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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Oct 14. 2015

춘사(椿事)

툇마루



어떤 책을 읽다보니 '춘사를 당했다'는 말이 나온다. 그 뜻을 짐작할 수 없다. 椿事. 사전을 찾아보니 '뜻밖에 생기는 나쁜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게 왜 춘사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椿은 참죽나무를 말한다. 참죽나무는 우리가 가죽나무라고 불러온 그 나무이다. 순이 향기롭고 맛있어 경북 상주에선 특화농산물로 내놓는 바로 그것이다. 나무에 봄(春)이 들어가 있으니, 이 봄날의 대표나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왜 그게 나쁜 일을 뜻하는 말에 들어가 있는가. 아리송하다. 

중국에서는 춘(椿)이라는 나무가 장수(長壽)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모양이다. 우리가 남의 아버지를 우아하게 호칭할 때 '춘부장'이라고 배운 그 말은 바로 참죽나무 집에 사시는 어르신(椿府丈)이라는 뜻으로 오래 사시라고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중국의 언어관습까지 흉내내던 옛시절의 얘기이니, 이런 말을 굳이 살려쓸 필요는 없으리라. 오래 사는 것을 상징하는 이 나무가 어찌하여 불운한 일을 표현하는데 쓰였을까. 의문은 자꾸 커진다.

일본에서는 춘(椿)은 동백나무이다. 그들은 '얄궂은 일, 괴상한 일'이라고 표현할 때 춘사진사(椿事珍事)라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왜 춘사라고 쓰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누군가 그 의미를 아는 이가 있으면 이 답답함을 풀어주기 바란다.

이렇게 헤매다 보니, 문득 1848년 프랑스 알렉상드르 뒤마가 발표한 '춘희(椿姬)'가 떠오른다. 춘희는 풀면 '동백아가씨'란 뜻이다. 여주인공 마르그리뜨 고띠에는 한달의 25일간은 흰 동백꽃을 달고 다니고 5일간은 빨간 동백꽃을 달고 다니며 극장이나 사교계를 누비는 귀부인인데 실은 창녀이다. 아르망 뒤발이라는 청년이 이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 고띠에는 영혼의 대혁신이 일어난다. 하지만 사랑은 도전과 시련을 만나고, 고띠에는 죽음을 택한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1853년에 발표되었는데 그 의미는 '길을 잘못 든 여인'이란 뜻이다. 1928년 우리나라에서도 춘희의 내용을 흉내내어 평양키네마사에서 영화를 만들어 조선극장에서 개봉했다.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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