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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Oct 14. 2015

무(武)란 무엇인가

생각의 풍경

이보다 의미심장한 질문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무(武)는 문(文)과 자주 대립쌍으로 호출된다. 문은 기본적으로 글이다. 인간이 발명해낸 최고의 소통 기호이다. 이것이 왜 무(武)와 그토록 쌍을 이루며 서로 견제해왔는가. 이 문제가 인류 역사를 꿰뚫는 중요한 단서가 아닐까 한다. 무(武)는 몸이 발생하는 힘의 문제이며, 이 힘이 자기 아닌 타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의 문제이다. 육체가 발생시키는 힘은, 육체 뿐 아니라 육체 바깥의 사물을 활용하여 그 힘을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것이 무기이다. 무기는 무(武)의 영향력을 무한하게 확장시켜왔다. 인간이 만들어낸 최강의 무(武)는,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 이후의 진화된 무기들이다. 무(武)가 지닌 본질적인 위험은, 다른 무(武)에 의해 자신이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무(武)는 결투와 전쟁을 끊임없이 불러왔으며, 죽음과 고통, 그리고 공포를 생산해왔다.

 

인간 사회에서 무(武)가 완전히 제거될 수 있을까. 무기와 무력이 없는 사회가 가능할까. 이것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가능성에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 그럴까. 우리의 내부에 이미 무(武)를 발현하는 DNA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까. 육체와 그 완력, 그리고 그것의 확장된 개념인 무기와 전력(戰力)은, 인간이 진화하면서 고안해낸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 내부에 그것을 진화시키는 프로그램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지 모른다. 무(武)가 발달하는 까닭은, 그것에 의해 욕망을 실현하고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높게 평가하는 고상함이나, 아름다움, 혹은 뛰어남 따위는 그 주위에 무(武)가 전제되거나 배치된다. 무(武)는 가끔 주변적이지만, 그것이 없이는 핵심적인 것이 존재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우리가 생각하는 고상한 관념적 사유는 기실 무(武)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틀 마련인 경우가 있다. 선과 악을 분별하는 사유는 왜 생겨났는가. 무(武)의 오작동을 막기 위해서가 아닐까. 힘을 함부로 쓰는 것, 그래서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 그것을 막는 장치가 더 강력한 무(武)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렵다. 무(武)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사용하도록 규범을 내면화하는 작업이 바로, 도덕 개념이 아닌가. 죽이지 말고 빼앗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싸우지 마라. 이 금지명령들은 모두 무(武)의 사용을 제어하려는 간섭들이다. 그걸 하면 어떻게 되는가. 처형하고 감옥에 가두는 것은 또다른 무(武)의 사용이며, "그러다가는 천벌 받으며, 천하에 나쁜 놈이 된다"는 가르침은 바로, 도덕이다.

 

우리가 조선이나 옛 유럽왕국을 떠올릴 때, 그것을 이루는 상징적인 것들은 무(武)의 형상인 경우가 많다. 영국 근위병의 근엄한 차림과 행렬, 조선 왕궁의 수문장 교대식, 혹은 호사스런 가마를 탄 왕과 칼을 찬 장군들, 혹은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가는 전쟁과 그 속에서 태어나는 영웅, 이런 것들이 지난 시간의 화려함을 구성하는 이미지의 대부분이다. 우리가 역사 스토리텔링을 할 때, 공을 들여서 재구성하고자 하는 것도 상당 부분은 무(武)의 부분이다.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선 이 부분이 빠지면 싱거워진다. 하지만 진실로 그 시대의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 그런 풍경일까. 그것이 그 시대의 정수를 읽는 핵심일까.

 

뜻밖에 역사적인 활력과 갈등은 이 무(武)에 대한 핍박과 차별에서 빚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무를 탄압하거나 괄시하는 쪽은 문(文)이라는 일견 보잘 것 없어보이는 존재였다. 글자 따위가 어떻게 무기를 이기는가.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것은 그저 언론의 힘을 강조한 역설일 뿐이 아닌가. 적어도 역사 속에선 그렇지 않았다. 문(文)은 무(武)를 꾸준히 제압했으며 무(武)가 문을 제압한 경우라 하더라도, 그들은 다시 문을 끌어들여 자신의 공허를 보완하고자 했다. 문의 나라를 지배한 여진족(청)이나 몽골족(원)이 결국 문을 권장하고 등용하여 스스로를 문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것을 우린 보았다. 고려의 문신이 무신을 홀대하여 나라가 뒤집히는 것도 보았고, 조선의 장수들이 전쟁 때에는 대접을 받다가 그것이 끝나면 다시 홀대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 갈등의 본질은 무엇이며, 문(文)이 무(武)에 대해 지녀온 저 태도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 시대의 문과 무는 어떻게 되었을까.

 

충무공은 원래 무신이 아니라 문신이었다. 조상들도 뼛속깊이 펜대를 굴리던 피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무신이 된 것은, 취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고, 방진이라는 활 잘 쏘는 장인어른을 만났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문사철만 파고 있던 이순신이 전쟁에 나가서 실력을 발휘한 것인 개인적인 역량 뿐일까. 여기에 문(文)이 지닌 핵심적인 '능력'이 개입되었다고 보는 시선이 있다. 그런 시선이 많은 건 아니고, 내가 그렇게 가설을 세워본 것이다. 그가 거북선을 제조하는 것이나, 전략을 짜는 것이나, 불가능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방식은, 무(武)가 권장해온 용기나 굳센 의지, 혹은 충성심으로 가능한 것을 넘어서서, 창의력이나 역발상, 그리고 무모한 실험정신과 맹렬한 신념같은 게 필요한 대목이었다. 스티브 잡스같은 스타일이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충무공은 인문학적 베이스가 비교적 탄탄했기에 일기도 써가면서 그 급한 전란 속에서 성찰과 반성을 계속했고 창의적인 열정 또한 멈추지 않았다. 그의 빛나는 무(武)는 바로 그의 내부에서 지휘를 하고 있던 문(文)의 힘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최백호의 노래 중에 '시인과 군인'이란 노래가 있다. "아이야 너는 자라서 시인이 되거라 가슴에서 피가 배어나는 시를 쓰거라 불의 앞에선 정의를 말할 수 있고 분노를 분노로 내뱉을 수 있는, 그러나 가슴 깊은 곳 한떨기 들꽃에도 눈물짓는, 아이야 시인이 되거라'는 시인의 특징이고 '아이야 너는 자라서 군인이 되거라 두눈에서 불이 타오르는 힘을 가져라 정의를 위핸 목숨도 버릴 수 있고 죽어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그러나 깊은 밤중에 내 나라 내 민족의 아픔에 우는, 아이야 군인이 되거라'는 군인의 속성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시인은 글로써 전쟁을 벌이고 사랑을 하며 군인은 무기로써 전쟁을 벌이고 사랑을 하는 차이일 뿐이다. 무(武) 속에는 문(文)이 숨어있으며, 문 속에도 무가 있다.

 

그렇다고 문이 무는 아니며 서로 넘나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김훈은 칼의 노래'라는 소설을 썼지만, 칼은 노래하지 않는다. 칼은 위협하며 저지르는 물건이며 노래는 언어를 길게 늘리며 감성을 불러내는 행위이다. 무(武)에 대한 경멸은 지금의 사회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때로는 무(武)를 그리워하고 무에서 어떤 정신을 찾아내기도 하지만, 무는 인간이 발전이라고 자부해온 성취들을 퇴행시키는 쪽으로 기능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무(武)를 필요악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군인은 문(文)이 필요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무가 지닌 덕목인 정직성이나 충성심을, 문이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武)가 인간 내부에 있는 원초적인 욕망의 발현과 진화라면 문(文) 또한 그런 것일 가능성이 있다. 문은 인류 역사 속에서 '소통 수단'이 인간의 본질적 면모를 바꿔놓은 케이스라 할 만하다. 여기에서 논의하기에는 너무 크고 복잡한 주제이긴 하다.

 

내가 무에 대해 생각을 늘이는 까닭은, 우리 역사를 이루는 한 축인 무(武)에 대한 사유와 성찰들이 빈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과 무의 전쟁과 동거, 양반의 한 반을 이루는 무반에 대한 그 사회의 인식과 취급, 문과 무를 넘나든 사람들(임제, 충무공, 박인로, 혹은 이성계까지)의 선택과 갈등들이, 좀더 풍성한 해석적 공간 속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지 않는가 하는, 꽤 오래된 문제의식 때문이다.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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