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등기로 부쳐주세요

생각의 풍경

by Binsom Lee


"느린 등기로 부쳐주세요."

"느린 등기는 없고, 빠른 등기와 보통 등기가 있어요."

"보통 등기가 좀 느리겠군요."

"남들은 빠른 등기를 찾는데, 웬 느린 등기예요?"



유별난 손님처럼 보였나 보다. 8월 더위가 실밥들처럼 남은 오후, 우체국에서 나는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음이 전해지는 느린 길을 음미하고 싶어서라고, 창구 저쪽의 그녀에게 말해주려 하다가, 입을 닫았다. 보내는 마음은 닿을 마음을 생각하고 닿은 마음은 보낸 마음을 되짚어 생각하는 그 느린 길. 옛날 연애편지의 길, 엽서의 길, 혹은 겉봉이 누래질 만큼 오래 돌아다닌 소포의 길.

몇 개의 등기를 보낸다. 한 생애 애틋한 심사가 뽑아낸 누에실같은 이야기를 꾹꾹 눌러담아 보낸다. 느리게 도착한 편지. 너무 느려서 이미 시들해져버렸을 지도 모르는 기억이, 어느 오래된 우체통에 담기리라.


사랑이란 늘 연착이며, 사랑이란 늘, 손꼽는 마음과 더딘 기별이 서로를 바라보는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사랑은 천천히 흘러갔다. 처음엔 당신 그리웠던 일이 흘러가고, 그 다음엔 당신 서운했던 일이 흘러가고, 마지막에는 당신에 대한 미움과 분개까지도 다 흘러갔다. 이제야 돌아보면 어느 저녁답의 의미없는 말 한 마디가 남았다.

어느 날 툭 떨어지는 가을 나뭇잎 하나와도 같이 이유도 잊어버린 슬픔 하나가 남았다. 그 슬픔이 떠미는 힘으로 느릿느릿 달팽이메일 하나가 당신에게로 가고 있을 지 모르겠다.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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