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 등에 업히던 날

사랑하라, 희망없이

by Binsom Lee

어느 날 밤이었나요. 걷다가 문득 내가 당신에게 말했죠.


“내가 업어줄까요?”

“건너야할 시냇물도 없는데...”


웃으면서 한참 망설이던 당신은 내가 내놓은 등에 가만히 업혔지요. 당신을 업고선 한참 걸었죠. 별빛이 좋은 밤이었어요.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온 소년의 마음이 이랬을까요.


무릎까지 첨벙이는 붉은 냇물을 건너면서, 좋은 사람을 업은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이 따뜻한 기분이었죠. 정말 오래전 인간은 암수한몸이었나 봐요. 당신과 내가 마치 한 사람인 듯 느껴졌어요.


등 위에서 당신은 “무겁지 않아요?”라고 나를 걱정했지만, 무겁긴요? 자기 몸을 자기가 무겁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라고 대답하고 싶었지요.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당신의 무게. 당신의 모든 존재를 지금 내 몸이 옮기고 있다는 생각. 아프고 어지러운 삶이 머문 지상으로부터 내 허리높이까지 당신을 들어올려, 안 아프고 안 어지러운 세상으로 옮겨주고 있다는 생각. 당신이 당신 모두를 고스란히 내게 맡기고 있다는 생각. 세상에, 당신과 내가 소금쟁이처럼 이렇게 업힌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우린 내내 한 방향을 가는 사람들이리라는 생각. 그런 생각에 머물고 있을 때 당신은 문득 말했지요.


“당신 귀에 별빛 하나가 걸렸어요. 별빛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있나요?”


기억해요. 내 등은 당신의 몸의 모든 선들과 온기들과 굴곡들을 수줍게 기억하고 있답니다. 내 몸에 닿았던 그 그립고 애잔한 몸의 속삭임.

아, 기억나요. 당신이 나의 셔츠에 코를 대고는 가만히 냄새를 맡고 있던 것. 등과 어깨에 촉촉해진 땀과 함께 전해오는 체온을 느끼고 있었나요. 어깨와 허리, 그리고 손을 돌려 껴안은 가슴의 근육 줄기들을 느끼고 있었나요.

내 가슴에 닿은 당신 손이 여리게 꼬물대던 게 기억나요. 그 손바닥으로 내 심장의 박동을 재고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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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게 힘을 주며, 더욱 따뜻하게 밀착하던 그 몸. 그 때 생각했어요. 환하던 하늘에서 별 하나가 내려와, 지금 내 등에 안겨있는 게 아닐까. 정말 몇 만 광년을 오직 나를 위해 달려와, 이렇게 감미로운 체온으로 내 등에 앉은 건 아닐까. 운명이란, 저 몇 만 광년 전에 정해진 이 한 번의 업힘을 위해 예비된 것이 아닐까.

잠깐 멈춰서서 당신을 받친 손이 풀어지지 않도록 되죄며, 업힌 몸을 살짝 추스를 때, 당신이 알퐁스 도데의 <스테파네트> 공주처럼 잠깐 잠든 걸 알았죠. 세상에!


옛날 냇물가의 처녀를 덥썩 업어서 물을 건너게 해준 스님이 생각나네요. 처녀를 내려주고 한참 걸은 뒤 동행하던 동자승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지요? “스님, 여자를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스님은 말했다지요? “나는 그 여자를 오래 전에 내려놨는데 너는 아직 그녀를 마음 속에 업고 있느냐.”

과연!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추억의 비밀, 사랑의 비밀은 저 말씀 속에 들어있지 않나 싶어요. 나 또한 그 별밤의 잠깐 이후에 당신을 이 지상에 내려놨지요.

하지만 난 동자승처럼 당신을 마음 속에 계속 업고 있는 거예요. 이것이 허튼 집착이라 할 지라도, 하는 수 없어요. 내 기억이 살아있는 한, 당신을 내 등에서 내려놓지 않을 거예요.

그 따뜻한 별빛을 영원히 업고, 내 삶의 강을 건널 거라구요. 아세요? 등 뒤의 당신.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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