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순 미용실에서 생긴 일

빈섬 스토리

by Binsom Lee

사내가 통유리창으로 된 미용실에서 선풍기 커버 같은 걸 덮어쓰고 앉은 풍경이 마뜩지는 않았지만, 목욕탕에서 깎는 머리들이 풍기는 70년대풍은 꼭 탈출하고 싶었다. 이대 전철역에서 내린 순간, 고민이 시작됐다. 헤어살롱 뷰티샵 헤어드레서 헤어디자이너 헤어커커...버터냄새가 나는 아리송한 이름들이 휘황한 간판들. 저 수많은 헤어어쩌고와 뷰티저쩌고 중에서 어딜 들어갈 것인가. 그냥 이쁘다 미용실이나 신촌 미장원 같은 거, 그런 거 없나? 괜히 좁은 골목을 기웃거리면서 좀 덜 패셔너블한 미용실을 찾느라 한참 다리품을 팔았다. 마침내 오아시스 같은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이삼순 미용실. 이삼순? 흐흐…. 괜히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미용실 이름을 저렇게 지었을까? 저 미용실의 주인 이름이 저거인 모양인데 그렇다면 내가 찾던 바로 그 편한 미용실이 아니겠는가?

이삼순 미용실은 이대 앞 거리가 끝나가는 후미진 골목 2층에 후줄근한 간판을 매달고 서 있었다. 저 촌스러움이란 다국적 이름의 미용실보다 이발료가 저렴하다는 것을 보증하는 문패가 아니겠는가. 보무도 당당하게 이삼순 미용실로 들어선다.

거울에 허연 곰팡이 무늬가 기어올라가고 천정과 맞닿은 굴곡 부분 바로 아래에는 프랑스 여인의 금발이 찰랑이는 미용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실내 풍경. 타임머신을 탄 듯한 기분을 느꼈다. 사장님이신 듯한 아줌마 하나가 손님이 없는 틈을 타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었고 인상적인 아가씨 하나가 귀찮은 일이 생기기라도 한듯 크게 이죽이는 입으로 껌을 질겅이면서 다가왔다. 쭉 찢어진 눈, 여드름이 분방하게 피어있는 뺨, 엉덩이가 옆구리로 샌 듯 디룩디룩 찐 살이 출렁거리는 그녀는 성난 하마처럼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커트 하실 거예요?" 하마가 입을 열었다."예."

괜히 주눅이 들어 목구멍으로 되넘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저기 앉으세요."

가죽시트의 한쪽 모서리가 터져 남루해보이는 자리로 손가락을 쏜다. 양쪽에 쇠로 된 팔걸이가 우악스럽게 뒤틀려있어 마치 사형수의 전기의자 같은 느낌을 준다.

자리에 앉았을 때 하마는 두툼한 손으로 와이셔츠 목부분 깃을 쓱쓱 접어 안으로 밀어넣는다. 두툼한 손가락이 마치 목을 조일 듯한 기세로 쓱쓱 파고들어와 살갗에 닿는다. 움찔움찔. 하마는 주둥이 부분에 물때가 낀 노란 손분무기를 들고는 머리 주변에 거침없이 물을 뿌리기 시작한다. 머리카락 끝에서 회색 물방울이 맺혀 얼굴 앞으로 몇 방울 뚝뚝 떨어진다. 미처 방울로 맺히지 못한 다른 물줄기는 뺨을 타고 주루룩 내려간다.

"짧게 깎으실 거예요?"

박살난 유리의 가는 금들처럼 잔주름을 잔뜩 만들어내는 웃음을 지으며 매니큐어를 칠하던 여인이 가위로 머리카락 몇 올을 들어올리면서 이렇게 물었다.

"예. 좀 젊어보이게 시원스럽게 깎아주세요."

짧게 깎는 핑계를 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센스가 있는 분이시네. 겨울이야 말로 단발이 어울리거든. 옷이 두터울 땐 머리는 가벼운 게 스타일링이 되죠. 선생님은 또 원래 쇼트가 낫기도 하고…. 여기 처음 오셨죠?"

갑자기 불심검문하는 질문에 움찔했다.

"예. 근데 여긴 참 편한 느낌이네요."

그 남자가 들어선 것은 중간벌초를 끝낼 때쯤이었다. 이삼순씨는 생각보다 센스가 있는 미용사임에 분명했다. 대담하게 커트기를 들이대어 뒷머리와 옆머리의 깔끔한 윤곽을 만들어내더니 날렵한 동작으로 가위질을 시작했다. 확신에 찬 그 손놀림은 믿음직스러웠다. 자잘하게 쓸데없는 가위질로 앉은 사람을 졸음 오게 하는 목욕탕 이발사들과는 격이 다르게 느껴졌다. 필요한 곳을 정확하게 선택하여 팍팍팍 잘라나가는 품이 이 방면의 전문가임을 웅변해주고 있었다. 역시 이대 앞에 잘 왔구나! 그러나 그런 감탄은 그 남자가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까지뿐이었다.


쉰은 넘어보이는, 따개비 모자를 눌러쓴 배불뚝이 남자. 이삼순씨는 이 남자를 사장님이라 불렀다. 이삼순미용실이 거주하고 있는 건물은 3층 빌딩이었고 지하까지 4층으로 되어있었다. 이 따개비는 바로 이 건물의 임대업주인 모양이었다. 그가 들어오자 삼순씨의 숨소리는 돌연 거칠어졌다. 따개비가 타이르듯 말한다. "에이,이웃 간에 잘 지내지 않고… 왜들 그러는 거야?" 삼순씨는 깎고 있던 머리에 꽂은 빗을 그대로 둔 채 따개비에게로 다가가서는 엄지와 검지에 꽂힌 가위를 들어올리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 사장님이 그렇게 말하면 섭하죠. 우린 얼마나 잘해주려 했는지 몰라요. 도대체 말이나 돼요? 식당에서 물을 많이 쓰는 거지. 미장원에서 무슨 물을 쓴다고 그래요? 수건을 빤다고? 내 참! 수건을 몇 장이나 빤다고?"

삼순씨의 따발총에 따개비는 "아 글쎄 그러니까…"란 말을 몇 번 밀어넣더니, 그런 브레이크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녀의 기세를 보고는 그냥 잠자코 듣기로 한 듯 손에 들고온 영수증 쪼가리를 접었다 폈다만 한다. 삼순씨는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온 지 한 달도 안된 사람이, 뭘 안다고? 글쎄 우리더러 건방지게 자기 맘대로 다 한다고. 거기 뭐야, 그 키 멀대같이 큰 남자 있잖아요, 그 남자 이까지 올라와서 우리 간판 발로 차고 정말 가관이 아니었어요. 그런 사람들인데, 우리가 왜 수도세를 내줘요? 여기 여자밖에 없다고 행패를 부려? 그래서 경찰을 불렀어요."

삼순씨는 이 대목에서 갑자기 이발을 하고 있던 머리가 생각난 듯 따개비를 뒤로 하고 가위질을 시작했다. "손님도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런 행패가 어딨어요?" 따개비가 등 뒤에서 말한다. "그래. 그 얘기 들었어. 경찰을 부른 건 좀 너무 했잖아? 이웃끼리 사소한 시비인데, 그걸 경찰까지 부르다니…" 삼순씨는 이 말에 다시 콧김을 씩씩대며 따개비에게로 돌아선다. "아니, 사장니임. 아니, 사장님, 무슨 소리예요? 우린 얼마나 겁났다구요. 물세 2000원 더 내라고 그런다고 발길질로 세상에… 그런 사람이 다 있어요? 사장님, 이번엔 정말 사람 잘못 받았어요. 지하에 전에 있던 사람은 얼마나 좋았는데."

"아, 그래. 처음이니까 서로 몰라서들 그런거지." "모르긴요. 그런 사람은 척 보면 삼척이예요." "어쨌거나 물세는 옛날처럼 그렇게 내줘요." "사장니임… 너무 합니다. 옛날엔 지하가 오락실이었으니까 뭐… 물 쓸 일이 별로 없었지만 이젠 다르잖아요? 거긴 식당이란 말이예요. 우리 수건 빠는 거에 비교할 게 못된다고요. 우리가 40프로 내면 그쪽도 40프로는 내야돼요. 그거 안내면 우리도 절대 양보 못 해요." "허허. 참. 지금까진 잘 내왔잖아?"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예요. 불황이라 안 그래도 손님이 없는데, 우리가 그 얄궂은 식당 물까지 사줘야 돼요?" "그래, 알았어.그럼 양쪽이 똑같이 내도록 해볼테니까."

어쨌든 열받은 삼순씨의 가위질이 이윽고 멈췄다. 그럭저럭 조발이 끝난 것이다."내 참 재수 없으려니까 별 이상한 이웃이 다 들어와서… 사장님, 정말 그 남자 그대로 두실 거예요?" 목이나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털면서도 삼순씨는 따개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까슬한 머리카락이 제대로 털리지 않고 속옷 속으로 들어왔다. "얘!! 머리감겨 드려." 삼순씨의 이 말에 옆에서 같이 흥분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서있던 여드름하마가 문득 깨어난 듯 그의 등을 슬쩍 떠밀어 욕조의자가 있는 곳으로 간다. 이때 따개비가 한마디 한다. "그래, 여기선 머리도 감기고 하니까 물을 적게 쓰는 건 아니네." 삼순씨는 "허 참"하는 헛웃음을 내뱉더니 "사장님! 샴푸하는 데 물 얼마나 쓴다고 그래요? 두번 끼얹으면 한 바가지도 안돼요 정말 해도해도 너무 하시네."

여드름하마는 삼순씨의 이 말에 어떤 암시를 받았는지, 머리 위에 정말 아까 처음에 깎기 전 분무하던 양 만큼도 안되는 물을 끼얹은 뒤 샴푸랍시고 한다. 물기도 없는 맨머리에 샴푸만 발라서 몇번 깨작깨작 머릿속을 헤집더니 끝이다. 그런데 헹구는 건 정말 물 반바가지로 해결하려는 듯 쨀끔 물을 붓더니 얼른 수건으로 닦아낸다. 쥐 파먹은 가마니 조각 같은 머리카락과(이렇게 느껴졌다) 샴푸액이 허옇게 묻은 채 근질근질해오는 두피.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었다.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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