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울린 사진 한 장
눈앞에 열여덟 살 오인세, 그 남자가 서 있었다. 스무 살 새색씨 이순규는 괜히 부끄러워 입을 가렸다. 꽁꽁 처맸던 마음에서 삐져나온 환한 웃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열여덟은 여든셋이 되고 스물은 여든다섯이 되었다. 서로를 갈라놓은 그 사이로 지나간 65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잔인했지만 원망이나 절망 따위도 다 묽어져버렸다. 오직 남은 건 서로에 대한 그리움 뿐. 죽었다고 생각했기에, 이젠 다시 볼 수 없을거라 여겼기에, 37년전부터(1978년) 남편제사를 지내왔던 그녀였다.
2015년 10월 20일. 금강산 이산상봉장에서 날아온 사진 한 장은 온 국민의 마음을 적셨다. 고동색 한복을 차려입은 남쪽 아내도 웃고 있었고 둥근 챙모자를 눌러쓴 채 이가 다 빠진 북쪽 남편도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오열보다 더 애잔하고 아팠다. 스물의 이별과 백발의 재회. 만난 기쁨은, 65년간 못 만난 슬픔 위에 서있는 것이기에 감정은 뒤엉킬 수 밖에 없었다. 1950년 전쟁이 터진 한달 뒤인 7월 충남 예산. 결혼한지 7개월 밖에 안된 남편은 뱃속에 아이를 잉태하고 있는 아내를 두고 열흘 군 훈련을 받는다며 떠났다. 그 길이 그토록 먼 길이 될 줄은 몰랐다.
팔순의 재회. 남편은 아내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러다가 어깨에 손을 올려도 보았다. 아내의 의자를 당기며 좀 더 가까이 와보라고 청했지만 아내는 어색해했다. 남편에게 주려고 ‘뒤늦은 결혼선물’로 시계도 준비해왔는데, 65년 분단의 서먹함이 둘 사이에 냉골처럼 흐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전쟁 때문에 그래. 할매. 나는 말이야 정말 고생도 하고 아무 것도 몰랐단 말이야.” “65년만에 만났는데 그냥 그래요. 눈물도 안나오잖아. 평생을...살았으니까 할 얘기는 많지만...” 둘은 서로의 심중에 있는 얘기를 꺼내려고 애를 썼지만, 말들은 자꾸 끊어졌다. 같이 온 남쪽의 아들 오장균(65)이 “저랑 똑 닮으셨습니다”라고 말하자, 아내는 그제야 얼어붙은 입이 풀린 듯 이렇게 말했다.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마워. 아들 키우고 했으니...벌금 내야지.” 무심한 세월이 너무 야속해서, 반가운 남편에게 부려보는 아내의 고운 투정이었다. /빈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