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기
다음 중 샤갈의 그림은?
(1)술 익는 마을 (2)닭 익는 마을 (3)눈 내리는 마을 (4)나와 마을
동료 하나가 우스개로 내놓은 수능시험이다. (3)번이 함정이다. 샤갈전을 보고온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샤갈의 눈내리는 마을은 어디 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축에 나도 끼었음을 고백한다. 이상하다? 분명히 중학교인가 미술책에서 그 그림을 본 거 같은데? 문제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점에 있다. 무엇인가에 집단으로 홀렸을까. 정말 눈 내리는 마을은 어디로 갔을까. (그 전시장에 물론 샤갈의 모든 작품이 전시된 게 아니었기에, 다른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의 지식검색에선 샤갈에게 그런 작품이 없다는 대답이 올라와 있다. 어찌된 일일까.)
샤갈의 '나와 마을'
그게 김춘수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때문에 빚어진 혼란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박상우의 소설 제목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보다는 전국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혹은 ‘샤갈의 눈내리는 마을’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80년대 무렵부터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이 간판은 묘한 매력을 담고 있었다. 샤갈이라는 화가의 환상적인 분위기와 동심같은 순정함, 그리고 눈이 내린 마을 풍경이 주는 낭만과 순백. 예술과 지적 취향에다 이국취미도 슬쩍 분위기를 거들었으리라. 또 모호함의 맛도 괜찮다. 샤갈의 마을에 눈이 내리는 건지, 샤갈이 그린 ‘마을에 내리는 눈’인지 알쏭달쏭하다. 둘 다 넘나들면서 의미를 넓혀놓는다. 그런데 정작 샤갈은 그런 그림을 그리지 않았단 말인가. 그러면 이 술집과 음식점들은 무엇을 보고 이런 이름을 달았을까. 김춘수의 시와 박상우의 소설이 그렇게 유명했단 말인가. 교과서 어딘가에 그런 이름의 그림이 잘못(!) 실렸거나, 아니면 실제로 샤갈의 그 그림이 실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쯤에서 다시 생겨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본 그림이 ‘눈 내리는 마을’이 아니라, ‘나와 마을’이라는 작품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작품을 보면 눈이 한 송이도 내리지 않는다. 혹시 미술교과서에서 오기(誤記)가 있었던 건 아닐까. 개연성은 있지만 지금 내가 확인할 길이 없다. 틀림없이 이런 작품이 있었을 거라고 믿는 까닭은 ‘눈 내리는 마을’과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제목이 섞여서 쓰이고 있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건 번역 문장이 취할 수 있는 두 개의 경우가 아닌가. 그렇다면 뭔가 ‘원문’이 있음직한 문장이다. 또 그의 고향 러시아 비테프스크는 눈이 많이 오는 곳이리란 짐작이 간다. 급한 김에 야후를 찾아보기로 했다. 대체로 snow snows falling town village 등의 말이 들어갈 거라 짐작하고 그런 말이 들어간 것들을 검색해본다. 정말, 최소한 snow를 가진 작품도 안보인다. 간신히 일본어로 된 어느 사이트에서 하나 찾아냈다. 제목은 'the snow landscape' 였다. 눈 내리는 풍경이다. 내가 교과서에서 본 그림이, 이것이었을까. 분명히 하얀 길 위에 농기구를 멘 저 남자가 있었는데? 이 그림과 ‘나와 마을’이 뒤섞여 기억된 것일까. 알 수 없다. /빈섬.
샤갈의 '눈내리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