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희망없이
V넥 흰 폴로셔츠
반쯤 드러난
뚜렷한 일자형의 쇄골 아래
홈이 깊어지며
소리없이 웃던
웃음
하얀 치아와 서늘한 눈썹
고결하게 깎인 콧매
어디서 그런 고독을 품고 왔는지
나를 그리워하는 나,
당신을 그리워하는 당신
어쩌면 기억같은 어쩌면 상상같은
그 웃음이
마른 시간에 벗겨질 때
당신은 알아보시겠습니까,
나르시소스, 나를
오늘부터 당신에게 편지를 쓸까 해요.
갑자기 그 생각이 났어요. 사무적인 문서들만 날리던 isomis@naver.com에 밤새 쓴 생각들을 살며시 실으면, 빛의 속도로 당신에게로 가겠죠. 아니, 당신에게 부치지는 않을 거예요. 그냥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들을 여기 가만히 불러내서 들여다 보고 싶어요. 당신을 향한 나의 기록들, 영원히 당신에게 닿지 않을 시간의 그늘이겠지만 그래도 좋아요.
문득 당신의 깨끗한 쇄골이 눈에 들어왔어요. 웃을 때 서늘한 목이 살짝 당겨지면서 생긴 쇄골의 서늘한 홈이 흔들리는 모습이 눈부셨죠. 흰 폴로셔츠 사이로 당신의 마른 몸이 쓸쓸하게 드러날 때, 거기엔 내가 감히 들여다 보지 못할 슬픔의 심연같은 게 출렁거렸죠. 어떤 기억은 영혼 속에 접혀 갈피처럼 끼워지는가 봐요. 따뜻한 이미지의 질감이 기억과 기억 사이에서 느껴져요. 당신은 어디서 왔을까. 목으로 흘러내리는 오래된 고독같은 것, 자꾸 생각나요, 흔들거리며. 당신에게 내가 해줘야할 일이 있을 거 같아요. 그래요. 그래서 편지를 쓰기 시작한 거예요. 당신에게는 오랫 동안 견지해온 침묵같은 게 있어요. 아무에게도 꺼내지 않은 언어가 쓸쓸한 말줄임표 뒤에, 깊이 들어앉아 있어요. 쇄골이 눈에 들어온 건 그 때문인가 봐요. 그 쯤 어디에, 당신의 무엇이 있지 않을까.
깡마른 물푸레나무가 피워올린 푸른 잎들을, 당신이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내 마음 속에 무엇인가 견딜 수 없는 생각이 생겼어요. 당신의 서글서글한 콧매로 흘러내리던 빛을 바라보면서, 희망과 절망이 뒤엉킨 기분이 돋아났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생각하는 일들이란, 대개 행동을 후퇴하게 만들죠. 그저, 잠시만 바라보고 있을께요. 그게 불편하지는 않겠지요? 다른 뜻은 없어요. 시간이 흘러가겠죠, 지금처럼 느리고 아프고 달콤하게. 당신의 쇄골을 몇 번 더 가만히 바라보고 있고 싶은 그 마음 외에, 아무 것도 없어요./빈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