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후 뜸해지는 기별

추사 김정희 '세한도'를 읽는 마음

by Binsom Lee

‘세한도’ 속에 숨어있는, ‘퇴출 인생’의 무의식과 꿈을 점검해보자. 세한도는 폭설도(暴雪圖)이다. 붓이 지나간 흔적 바깥은 모두, 끝없이 내리는 눈을 그린 무한백색이다. 백설은 사물을 지우고 사람을 지운다. 그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사람의 눈은 사물거리는 눈송이의 움직임이 무섭고 끔찍하다. 마침내 아무도 없이 혼자 버려진 공포가 거기에 있다. 거기다가 눈은 세상의 온기를 걷어간다. 하얗게 고립된 존재를 향해 거대한 한기가 덮쳐온다.

안정된 직업과 늘 들어오던 수입이 있던 사람이 잘 보온된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느끼는 일감(一感)은 ‘춥다’이다. 그 추위는 눈이 내려서 춥거나 겨울바람이 매서워 추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가 없어져 발생하는 추위이다. 자기와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모두 등을 돌린다. 이제 자기를 안다는 것이 실익이 없고 오히려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락이 하나씩 두절되어간다. 친하던 사람의 전화가 뜸해지는 속도로 한랭전선이 찾아온다. 퇴출 인생을 놀라게 하는 것은, 친했던 사람의 전화가 맨 마지막에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입속의 혀처럼 굴었던 이들이 가장 먼저 끊어지는 대목에 이르러서이다. 추사는 흰 여백을 밀어내며 그를 둘러쌌던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코빼기도 내밀지 않는 야속한 얼굴들이 눈더미 속에 가득 묻혀있을 것이다.

허리를 뒤트는 듯 불편한 자세로 앉아있는 오두막과 둥근 창으로 보이는 골방의 삐딱한 일부도 추사의 처연한 자기 인식이다. 대개 퇴직 인생이 되면 자책이 심해지게 마련이다. 집안에서는 불필요한 인간이 되어간다. 꼼짝하기도 싫다. 궁상맞은 인간이 되어가면서 점차 ‘사회의 퇴물’을 지나 ‘집안의 퇴물’이 된다. 자벌레처럼 삐딱하게 웅크린 집은 바로 추사 자신의 삶의 포즈이다. 거기에 나무들은 어떤가? 가지 하나에 기를 쓰듯 푸른 잎을 매달고 있는 노송. 아직도 죽지 않았음을 입증하려는 듯, ‘늙어가는 추사’가 필사적으로 팔을 벋어 생기를 과시한다. 옆에 아직도 철을 모르는 듯 울쑥울쑥 청솔가지를 돋아올리는 젊은 나무들은, 추사가 아직 버리지 못한 희망이며, 염세주의의 끝에 매단 애틋한 꿈이다. 그러나 그것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지금 눈에 드러난 것들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것들이다. 다만 지금 그에게 다가와 마음을 쓰는 그것이 고마울 뿐이다. ‘후조(後凋)’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시들기는 시들겠지만 늦게까지 견뎌주고 버텨준다는 의미이다. 세한도의 폭설 속에 메아리치는 소리는 ‘고맙다, 고맙다, 참 고맙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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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한 인심에 대한 절망과 분노가, 아직도 남은 온정에 대한 고마움으로 바뀌는 그 깨달음의 지점에 ‘세한도’는 서있다. 추사, 아니 완당은 세한도를 지나면서 비로소 타인의 온기와 세상의 갈채 속에서 유지되던 자기를 벗고, 아무 것도 지니지 않은 고요하고 어눌한 자신을 만난다. 기교와 파격이 튀어오르던 추사체는 기름끼가 빠지고 소박하고 순정해졌다. 그가 그린 난초 그림은 카랑카랑한 기세보다는 아이들의 붓놀림처럼 천진해졌다. 고립의 시간을 통해 그가 터득한 것은, 내부를 비워버린 무욕과 외부에 대해 고개 숙일 줄 아는 감사함이었다. 180도 전환한 이 태도가 추사의 나머지 삶을 추동하는 중요한 자산이 된다.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나 ‘판전(板殿)’을 쓸 때의 어리숙한 그림과 글씨의 매력은 욕심없는 마음이 드러난 걸작이다. 또 추사가 이광사가 쓴 현판을 비웃으며 내리라고 했다가 유배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걸라고 했던 대목은 바뀐 그를 웅변하는 일화이다.

인생 2막에서 완당은 ‘힘을 빼는 법’을 배웠다. 아주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몸부림을 쳐가며 이 중요한 진실을 배웠다. 60세 이전에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천재였지만, 이후에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바뀌었다. 힘을 뺀 붓끝에서는 우연히 튀어나오는 하늘의 에너지가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것을 그는 우연사출성중천(偶然寫出性中天)이라 불렀다. 가진 것을 아낌없이 버리고 모든 것을 다 놔버릴 때, 인생의 위기는 새로운 기회로 다가왔다. 2막은 1막과 같은 문법으로 풀어야 하는 챕터가 아님도 알게 되었다. 아마도 그에게 2막이 없었다면, 그는 당대의 천재로만 기억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유배지를 전전한 그 삶에서 건져올린 위대한 예술혼이, 우리가 기억하는 그 김정희를 만들었다. 당신의 2막은 1막보다 더 아름답다. 조선의 한 지식인이 그걸 온몸으로 웅변한다.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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