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느냐고 물었던 건

그대에게

by Binsom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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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지내느냐고 물었던 건

당신의 안부가 궁금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잘 지낸다고 말한 것도

당신의 근황을 말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안녕하지 않음이란 우리에게

서로를 아주 버리지 않았음을 함의하는

희미한 암시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당신이 안녕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감정이 만들어낸 관계의 습곡이 그 이전의

기억이나 지속되어오던 처음의 기특한 날들을

털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리라는 부질없는

희망을 그런 방식으로 섞는 셈입니다.



이 안녕하지 않음이나, 혹은 안녕함이나

사실 관계의 진전과 전망과는 별로

상관없을 것임을 압니다. 오래 전 이런 날을

대비하여, 좋은 감정의 고갯마루를 깎아내어

춥고 쓸쓸한 시절에 미움과 원망의 골짜기를 메우는

흙으로 쓰자는 말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야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은 그런 약속조차도 버거워져 있을 걸 압니다.

그러니 채무없는 관계로 그냥 가만히 갈라서서

평행하는 질문과 대답으로 안녕을 물은 것입니다.



건강하라는 말도, 별일 없죠라는 말도,

모두 언어가 아니라 추운 공기를 녹이는

하얀 입김같은 것입니다.



환멸이 만들어낸

겨울이 지나가는 날이 있을 거라고,

그 겨울 얼음장 아래에 소리없이 흘러가는

물길같은 인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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