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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퐁키 Nov 19. 2020

분노에 관하여

좌충우돌 신혼 에세이

  분노는 불과 같아서 한 번에 지펴지지 않고 어떤 촉매에 의해 연쇄 반응으로 일어난다. 가장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섭섭하게 했을 때, 그것은 분노의 가장 흔한 형태의 촉매가 될 것이다.

약간의 짜증과 그 촉매가 만나면 비로소 불이 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자의든 타의든 조기 소화를 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이 불은 마음속에 퍼져 나간다.

  나는 구내염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 강한 상대는 아니었다. 다만 온갖 화학약품을 입안에 넣어 그 냄새와 혀가 말라 가는 듯한 기분, 입 안의 불쾌한 이물감으로 하루 종일 치가 떨리던 참이었다. 먹어서는 안 될 물질들이 조금씩 어쩔 수 없이 목으로 넘어가는 걸 느끼며 '금방 낫겠지'라는 마음으로 자위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은은한 고통으로 약 10% 정도의 짜증을 하루 종일 머금고 있었다. 무언갈 먹으면 다시 약품과의 씨름을 해야 했기에 물조차도 최소한으로 마시며 조금씩 회복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낮에 청소기를 한번 돌리면서 어지럽혀진 빨래 더미와 쌓인 설거지를 보았다. '조금이라도 해놓아야 할까'라는 밀린 숙제를 하지 않았을 때의 죄책감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해 보았다. '수현이가 싫어하진 할 텐데...' 아내의 반응을 예상하며, 한편으론 일에 집중하려 애썼다. 허기가 지고 입안은 따끔거렸다. 누워있고 싶었지만 일이 남아 있었다. 요즘 일은 재미가 없다.

  아내가 도착했다. 나는 마중을 가지 않았다. 오늘 하루가 나에겐 힘이 부쳤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도착하자마자 두 손에 한아름 장을 보고 사온 재료들을 꺼냈다. 얼른 음식을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쌓인 설거지 더미를 보더니 나에게 한 마디 했다.

  "어? 설거지가 안 돼있네?"

  "설거지는 자기가 하는 건데..."

  짜증이 30% 정도로 올라갔다. 아내가 없던 약 10시간 동안 고분군투 했던 하루를 공유하지도 못하고, 따스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포옹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할 한치의 겨를을 기대했던 방향과는 많이 달랐다. 그래서 말없이 설거지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얼른 설거지를 끝내고 요리를 도와서 최대한 빨리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요리가 끝날 때쯤 설거지를 멈췄다.

  "왜 설거지를 하다 말아?"

  아내가 내게 물어왔다. 짜증이 50%를 넘어선다. 이제 분노의 불씨가 온몸을 지피기 시작한다. 또 말없이 가서 설거지를 하려고 했는데, 아내는 내버려 두라며 나중에 자기가 할 것이라 했다. 이때 이미 나는 지쳐있었다. 기대하던 위로, 포옹, 눈 맞춤은 언제 만나볼 수 있을까.

  식사를 하다가 구내염의 쓰라린 고통을 참지 못해 약국에 갔다. 진통제를 사는데 아내는 이모저모 약사와 대화를 했다. 나는 지금 시점에 그런 대화는 사치라고 생각해서 얼른 몸을 돌려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엘리베이터에서 -그래도 그 짧은 시간을 걸었다고 기분이 조금 나아졌었다- 아내에게 장난을 쳤다. 아내는 그 장난에 화가 단단히 나버렸다.

  이제 서로가 화가 나버렸다. 한 시간을 대화해도 서로 양보하지 않는 팽팽한 평행선은 유지되었다. 돌이켜 보면, 이 평행선은 아내가 집에 왔을 때 나를 안아줬거나, 설거지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거나, 그걸 듣고 내가 화를 내지 않았거나, 엘리베이터에서 아내가 화를 내지 않았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 많은 기회들을 놓쳤다. 그 대가로 차가운 11월 16일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을 견딘 하루에 대한 위로와 몸을 녹여줄 따스한 포옹과 시간이 멈출 것만 같은 눈 맞춤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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