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나 Mar 14. 2022

우리에겐 서로 밖에 없는 걸

자매의 언어


- 제일 안 매운 거 먹었는데 입에 불남


몇 개월 전 - 아직 한국에 있을 때 - 퇴근하고 근처 식당에서 치킨버거를 사 먹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 놀러 온, 자가격리로 바쁜 해외 입국자님에게 사진을 보냈다.


- 아니 내가 왜 이걸 언니한테 다 이야기하고 있냐


- 근데 나도 사소한 얘기 할 친구가 없음


- 안타깝네, 우리 친구 농사를 잘 못 지었네


- 이게 원래 학교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랑 할 텐데. 우린 졸업하고 근처에 사는 친구가 없잖아


한 두 번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서울에서도 무려 튀르키예에 있는 언니에게 쓰잘데기없는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라즈베리 초콜릿 케이크를 먹고 있는데 눈물이 나오도록 맛있어서 이 카페 케이크 도장깨기 할 거다, 할머니가 교회 안 다니는 친구 집에선 자고 오지 말라고 해서 기가 막힌다, 카페에서 마살라 짜이를 마셨다, 오늘 캠퍼스에서 아르마딜로를 봤다, 아침에 집 정원에 사슴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이 얼굴만 하고 못생긴 당근 좀 봐 등등. 한국에 있어도 외국에 있는 느낌이 드는 나는 주로 홀로 돌아다니지만, 반짝이는 발견을 하면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진다. 혼자 여행 와서 맛있는 걸 먹었을 때 지나가는 행인에게 감탄사를 내뱉는 사람이 분명 있기야 하겠지만, 난 조용히 웃으며 멀리 있는 가족에게 사진을 보내는 편이다.


언니는 가끔 성의 있는 답장을 하고 자주 단답을 하며 주로 씹는다. 물론 나도 똑같다. 우린 서로 자기 할 말만 하고 어딘가에 하고 싶지만 마땅히 할 곳이 없는 이야기를 보고하며 별 반응을 기대하진 않는다. 시차에 익숙한 우리는 10시간 뒤에 답이 오던 말던 알 바 아니다. 이리 튀고 저리 튀는 메시지는 뚝 끊겼다 다시 살아났다 부담 없이 흘러간다.



- 15시~17시 문 앞에 럭키참스 시리얼 도착


- 디드 유 바이 어 리미티드 에디션? i'm going to be eating planets?

[나 행성 먹는 거야!?]


- is that a good thing? or do you prefer unicorns

[좋다는 거야? 유니콘 선호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 i like that it's galactic. and it's so good to see a full American cereal box

[나 은하수 테마 좋아해. 왕 큰 미국 사이즈 시리얼 보니까 마음이 따듯해지네]

- this is not okay, i'm having three bowls of cereal

[심각한데. 세 그릇이나 먹었어]


- well if it makes you feel any better, i've had every cake in this cafe. i could probably buy a phone with all the money i spent on dessert in Korea

[이게 언니 기분을 나아지게 할진 모르겠는데, 나 이 카페에 있는 케이크 종류별로 다 먹어봤어. 한국 와서 디저트에 소비한 돈만 모았어도 핸드폰 하나 살 수 있을걸]


- but who cares about fancy phones. food is life

[좋은 핸드폰 쓸데없어. 인생은 음식이지]


- lol glad we're on the same page

[같은 생각이라니 다행이네]


안타깝게도 인생에서 가장 오래 본 사람은 언니다. 요르단에 있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는데요, 아 요르단에 왜 있었나면요, 아 기숙사 학교에 다녔었는데요, 아 부모님도 해외에 계시는데, 이런 서론이 없이 막무가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고2 때,라고 하면 숲 속 작은 기숙사에 살고 ACT를 3번이나 쳤지만 계속 같은 점수만 나오는 학생을 떠올릴 사람이다. 여기 콜마르 크리스마스 마켓 느낌 난다고 하면 오 맞네 그러네,라고 대답하고 빈트앗싸흔 먹고 싶다고 하면 헐 나도!라고 호응한다. 정신 차려보니 초중고대학까지 언니를 쫄래쫄래 따라간 나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언니와 떨어져 지내지만, 아직 언니의 기록은 깬 사람은 없다. 이사를 자주 다니면 소꿉친구는 꿈꾸기 어렵다. 해외에 사는 친구들과는 거의 연락이 끊겼고, 본가가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는 운 좋게 한국 거주 시간이 겹치면 만났었다. 학교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면 안부도 묻지만 주로 그들과 매일 함께했던 3~4년에 대해 떠든다. 일상을 공유했던 사람들과 ‘누구누구랑 타운 페어 가서 얼굴만 한 칠면조 다리 뜯어먹고 파이 콘테스트 수상작을 구경하다 핸드폰 떨궈서 액정 깨진 날’에 대해 일방적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은 감사한 일이다. 이 이야기를 할 기회는 이 사람과 아니라면 없다는 걸, 또 예멘 음식을 먹으며 그래 이맛이지 라며 감탄할 친구도 손에 꼽는다는 걸 안다.


한국에 온 나는 굳이 해외생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가고 있고, 언니는 가장 오래 연락한 소중한 친구들의 결혼을 축하하러 미국으로 한 번, 독일로 한 번 결혼식을 다녀왔다. 언니는 싱글이라서 외롭다기 보단, 결혼한 친구와는 어쩔 수 없이 관계의 모습이 달라지고 대화 주제에 공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제 그들은 조금 다른 삶을 겪고 있다는 부분이 아쉽다고 한다. 나는 연락하는 또래 친구 중에 아직 결혼한 사람은 없지만, 사람마다 함께 대화를 꾸려나갈 수 있는 주제가 한정되어있다는 건 보다 자주 느끼고 있다. 디자인에 대해서 1시간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난민과 미디어에 대해서 또는 해외생활에 대해서 쉬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기도 하다. 쏟아낼 곳이 없어 괜히 답답해지면 나의 비관도, 피해의식도, 오만한 마음도,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어' 같은 꼴 보기 싫은 생각도 넘쳐흐르니 되도록 과민해지기 전에 밸런스를 맞추어, 어쩌면 비슷한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친구에게 연락하고자 한다.




- do you remember doing a play in South Africa? that weird save the planet thing? you were like the scaly dragon class or whatever

[우리 남아공에서 연극했던 거 기억나? 무슨 지구 구하는 컨셉이고 너네 반이 용 역할했는데]


일어나서 처음 본 언니 카톡. 그럼 기억나지, 가물가물하긴 한데.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말, 반짝거리는 보라색 옷을 입고 용 모형 안으로 기어들어가 다리 5번 역할로 뛰어다녔던가. 언니가 얘기 안 했으면 조만간 기억에서 영영 사라졌을법한 장면이다.


말하지 않으면 서서히 잊혀지는 것들이 있다. 휘발되어 희미해지고 언젠가 완전히 사라져버릴 걸 생각하면 두려운 소중한 기억들이 있다. 짐을 싸고 떠나온 공간을 내가 기억해주지 않으면 누가 기억하겠나. 우리가 떠나온 집을, 그곳에서 그 모습으로 만든 추억을 나만큼 알고 기억하는 사람은 우리 가족밖에 없어서, 아늑했던 기숙사 방을, 그 작은 공간에서 벌어진 수많은 해프닝을 아는 사람은 그때 룸메이트 밖에 없어서, 우리가 애써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다른 아무도 하지 못해서, 하지 않으면 그 존재가 잊히고 사라지니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해서, 내 머릿속에서만 겨우 생명 부지하고 있는 장면들에 호흡을 불어넣어 줄 사람을 찾아 나선다.






찬바람이 쌩쌩부는 아침, 언니는 공항 자동문 앞에 서성이고 있었다.


"안녀어엉."


짐에 두 손 다 묶인 나는 피곤한 눈으로 대충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인사했다.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저기 세큐리티 아저씨한테 걸려서. 나가라고 했어."


언니가 자연스럽게 캐리어를 하나 낚아채며 대답했다. 어제 봤다고 해도 믿겠다. 뭐 반가운 포옹이라도 할쏘냐. 알아서 잘 지냈겠지.


"아 그래?"


바닥을 흘깃 보니 언니는 한국에서 가지고 간 까만 쪼리를 신고 있었다.


"아니 쪼리 신고 나온 거야? 이게 쪼리 날씨야?"


언니는 양말 신기 귀찮아서 그랬다며 꿍시렁거리며 가방을 끌고 앞서 나간다. 위에는 두꺼운 니트 스웨터를 입고 밑에는 몸빼바지 핏에 얇은 고무줄 바지를 입고 오는 건 또 뭐람. 거기에 내가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적어도 3년 전에 샀다가 버린, 똑딱이 버튼이 떨어진 갈색 크로스백을 매고 있었다. 아닌가, 나중에 언니가 비슷한 걸로 산건가? 물론 나도 25년 된 (아빠가 직장에서 받았지만 엄마가 입다가 내가 뺐어간) 청남방에 어디서 생겼는지도 모르는 기모 운동복 바지, 프라이버그 H&M에서 산 (6년 넘게 내 겨울을 책임진) 부츠를 장착하고 있었으니 할 말이 없다. 계절감이란 하나도 없는 착장이다.


[EMS라고 적힌 청남방, 고등학교 친구들이 가끔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었는데, 아주 나중에 아빠한테 답을 들었다. Enterprise Manufacturing System의 약자라고 했던가. 아빠는 밥 먹다 말고 회상에 잠기며 내가 태어나던 해 두 군데로 RFP를 보냈었는데, 아빠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자주 생각한다고 했다. 같이 프로젝트했던 회사에서 만난 인연으로 이직을 했는데, 여하튼 다른 회사와 일했다면 미래가 달라졌을 거라고. 엄마는 이제 와서 그런 상상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아빠를 흘겨봤다.]


언니는 나중에 그날 내가 무슨 사파리 하다가 나온 탐험가 같았다고 했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은 풀어헤치고 안경은 자꾸 김이 서리는 바람에 머리에 얹었더니 그런가. 중고등학생 때는 연예인 공항패션도 눈여겨보면서 나름 신경 썼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편하고, 보안 검사 후에 벗었다 입기 쉽고, 수족냉증으로 쉽게 차가워지는 발만 따듯하면 된다. 가끔 무게를 맞추기 위해 두꺼운 겉옷을 입고 무거운 신발을 신기도 한다만.


공항 앞에 있는 버스를 탔다. 언니가 지갑을 뒤적거리더니 24TL, 2인용 요금을 냈다. 주위 사람들이 시끄러울 테니 조용히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언니와 쪼잘쪼잘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어느새 밖을 보며 침묵을 맞이했다. 달리는 버스에서 창밖을 보며 처음 보는 앙카라의 색을 눈에 가득 담았다. 도시 특유에 팔레트를 머릿속에 차곡차곡 한 칸씩 채운다. 그날은 진한 초록빛의 나무, 흐릿한 파란색의 하늘, 우유에 커피 두 방울 섞은 듯한 탁한 안개, 서서히 드러나는 햇빛에 반짝이는 연갈색 도로, 알록달록 생기 있는 도시.


장거리 비행은 오랜만이었지만, 설렘도 잠시 좌석에 빨려 들어가듯이 자리를 잡았었다. 루틴처럼 영화를 보고, 기내식을 먹고, 오렌지 주스 한 번, 사과 주스 한 번, 블랙티를 한 번씩 마셨다. 남는 주스팩이나 물은 가방에 쑤셔 넣는다. 빵에 버터를 열심히 발라놓고 떨어트려서 장장 3분을 어두운 좌석 밑으로 팔을 휘저으며 찾았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다. 생선을 먹고, 오믈렛을 먹고, 샌드위치도 먹었다. 한 때 비행기에서 입맛이 떨어지던 시기도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데도 배가 왜 이리 고픈지, 기내식은 쓱싹 남김없이 해치운다. 이스탄불에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언니가 핸드폰으로 보내준 스타벅스 바코드로 커피 한 잔을 사 먹고, 게이트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앙카라에 도착하고, 이젠 질리도록 봐서 멀리서도 알아볼 지겨운 여행가방을 찾았다. 별일 없이 잘 지나간 비행 하나 더 적립.


3개월짜리 유효기간이 있는, 완전한 관광객으로서의 신분도 오랜만이다.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지만 이 나라에 손님으로 발을 들였다. 별 조건 없이, 비자 구입도 없이, 이렇게도 쉽게 국경을 넘을 수 있음에 내 여권이 새삼스레 고맙기도 하다.


버스에서 내려선 택시를 탔다. 언니는 아직까진 내가 외우지 못한 주소를 꿍얼거렸고 택시가 이내 출발했다. 시내버스를 탈까 생각도 했는데, 아무래도 바글거리는 공간에서 1시간 동안 내 여행가방이 사람이 설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할까 봐 눈치 보고 싶진 않다. 빵빵한 까만색 이민가방을 끌고 다니는 외국인, 별로 눈에 띄고 싶은 상태는 아니다.


어디서 누구에게 학습한 마음가짐인지 모르겠지만 이방인이란 신분은 사람을 쪼그라들게 한다. 왠지 법을 더 잘 지켜야, 일을 더 잘해야, 더 착하게 살아야, 더 넉넉히 나눠야, 더 쉽게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아프면 곤란하고 눈에 띄게 잘 살아도 별로고 사고 치는 건 더더욱 안된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뉴스가 난다면 국적이나 인종이 첫 단어를 장식할 확률이 높다. 어쨌든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국민 그다음 단계 어딘가에 있는 존재니까.


집에 가까워질 때쯤 언니가 sol, sağ, düz를 번갈아가면서 왼쪽, 오른쪽, 직진, 택시기사를 안내했다. 집 가는 길을 아는 건 당연하면서도 왠지 언니가 신기하다. 언니는 새로운 나라에 둥지를 틀었는데 나는 여전히 여기저기 튕겨 다니고 있네.


"Burada. Evet. Teşekkürler."

[여기요. 네.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출발한 지 21.5시간 경과, 드디어 언니 집 입성. 짐을 끌고 지하로 들어가 -1층을 누른다. 경사에 지어진 아파트라 한쪽은 창문 없는 지하, 반대쪽은 2층 정도 높이다. 열쇠로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언니 고양이가 호기심 반, 경계심 반의 눈빛으로 여행가방에 올라타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드디어 네가 작디작은 화상통화 화면을 벗어났구나. 터키에 너 보러 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거야. 두 번째는 해 먹고 싶은 거 해 먹을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 언니는... 사은품이랄까. 호호. 사은품 받으려고 줄 서서 3만 원 넘게 구매하고 그러기도 하잖아.






매거진의 이전글 익숙하고 특별한 언니의 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