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나를 아는 너에게, 나를 알아줘서 고맙다고.
2021년 2월의 편지
안녕. 오랜만이지?
작년 봄, 나는 얼떨결에 재택근무를 시작했어. 코로나 고위험 국가에서 입국한 사람과 접촉했을 시 재택근무를 하라는 이메일이 왔는데, 나는 며칠 전에 한국에서 온 사람이랑 살고 있었거든. 매일 3시간 통근을 안 해도 되니 이득이다 싶어 이메일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다가 새벽에 예약 발송해 놓고 회사에 안 나갔는데, 이틀 뒤에 모두 재택을 시작했지 뭐야. 그 뒤로 사무실에 못 가봤어. 내 책상 구석에 놔둔 선인장 두 개는 어두운 사무실에서 외롭게 말라가고 있을지도 몰라. (정정: 무려 2년 뒤에 내가 사무실에 남기고 온 물건을 모두 버려도 괜찮겠냐는 이메일이 왔어. 안 된다고 하면 국제우편이라도 보내줄 생각이었나?)
한 달, 한 달 계약을 연장하다가 결국 팀원들과 얼굴 보며 인사도 못 한 채 미국 비자 기간이 끝났어. 퇴사 인사 예시 몇 가지를 검색한 후 싱거운 굿바이 이메일 하나 남겨놓고 첫 직장을 떠나게 된 거지. 그 뒤로 뉴저지에서 한국으로, 서울에서 성남으로, 다시 서울로, 또 서울 안에서 지낼 곳을 찾으며 이사만 4번 했는데, 뭐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낸 걸지도.
요즘은 여행 없이 한 곳에 1년만 있어도 몸이 근질근질해. 짐 싸기에 지쳐있으면서도 짐을 안 싸면 뭔가 정리가 안 된 느낌이 나. 새로운 곳에 가서 무능한 이방인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관광객, 어쩌면 초대받지 못한 침입자로서 적응하고 받아들여지는 기간을 되풀이하다 보면 허무해지기도 하면서도, 낯선 곳이 익숙한 곳으로 변하는 그 순간들이 소중해서 중독된 듯이 또 새로움을 찾아. 웃기지, 새로운 것이 더 이상 새롭지 않아 지는 과정이 좋아서 새로운 것을 찾는다니.
사실 어디에 있던 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에 유통기한이 있으니, 나는 주로 끝을 바라보며 지내. 지금 앞에 있는 결승선에 다다르면 바로 다음 결승선이 생기는 편이거든. ‘지금은 못 해, 이사하면 해야지, 거기 가면 해야지, 3월 되면 할 거야’ 같은 말을 무의식에 되뇌고 있더라고.
솔직히 말하면, 정해진 기간이 없으면 막막하기도 해. 지금껏 5개국에서 살았는데, 그동안 학기, 방학, 비자, 계약, 모두 끝이 있었잖아? 끝이 있으면 시작도 있으니, 내가 아무리 한 곳에서 짐이 쌓이고 틀에 갇힌 듯해도 싹 갈아엎고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 안 좋은 인간관계가 있다면 1년 뒤에 안 보면 그만이고, 가구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몇 개월만 버티면 그만이고. 1년 쓰고 말 거니까 월마트에서 가장 싼 청소기를 구하고, 어차피 3개월이니까 침대 시트가 소름 끼치는 연두색이어도 눈감아주고.
'정해진 기간'의 장점이 있다면 매일을 최대한으로 살 수 있는 원동력이고, 단점이 있다면 시간에 쫓기듯 행동하는 조급하고 계산적인 마음가짐, 그리고 그것마저도 지쳤을 때 찾아오는 체념이겠지. 2주 동안 지낼 게스트하우스여도 화병을 꺼내 꽃을 꽂아 놓는가 하면, 1년 동안 있을 기숙사에서 내 시간을 투자할 만큼 이 사람이 나와 잘 맞는지 순식간에 결정해버리기도 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조연으로 사는 건 생각보다 편하거든. 새로운 사람으로서 겪는 부끄러움이나 수많은 자기소개와 작별인사로 소모되는 일도 물론 힘들지. 그렇지만 그만큼 한 곳에서 진드거니 내 자리를 찾고, 주위에 맞추어나가고, 소속감을 느끼는 일도 어려우니까.
정착. 그토록 입에 달고 다녔고 바래 왔는데, 막상 선택지가 되어버리니 두려운 단어야. 내가 과연 한 곳에 마음을 빼앗길 수 있을까? 끝을 모르는 시작을 할 수 있을까? 이제야 내가 청소년기에 노래 부르던 안정이란 게, 짐을 맘껏 쌓아놓을 수 있는 방과 책임감이 주어지는 직장이라는 모습으로 찾아오는 걸까? 그때나 지금이나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란 이런 외적인 조건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내겐 집이라는 공간이 정의하기 힘들어. '집에 가자'라고 했을 때 2년 살았던 원룸이 될 수도 있고 한 달 지낸 게스트하우스 일수도 있어. 내가 거쳐온 수많은 집 중에는 계약서의 내 이름이 적혔던 투룸도, 친구 방 한구석도, '우리 집'이지만 손님방에서 지내야 하는 주택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작은 반지하방도, 작은 싱크대와 침대, 공용화장실로 마냥 족했던 외국에서의 첫 집과 방학이어도 돌아갈 곳이 없어서 의지해야 했던 기숙사도 있어. 그저 하루가 끝나고 돌아와 쉴 수 있는 곳이라면, 내가 애착이 가는 물건 몇 가지 꺼내놓을 수 있는 곳이라면, 집이라고 불러주고 싶어. 이건 내가 희망하는 바고, 항상 그렇진 못하지. 이 기준은 꽤 다정하고 광범한 기준이라고 생각하거든. 공간은 있어도 집이라고 정의하지 않을 때도 있고, 가족이 다 같이 먹는 점심이라든지 새 양말을 신고 난로를 쬐는 시간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느낌을 집이라고 이름 붙여 줄 때도 있어. 집에 대해선 앞으로도 할 말이 많을 테니, 이만 줄일게.
대학에서 ‘집’에 관한 졸업작품을 만들고 짧은 2n 년 생의 할만한 얘기는 다 쏟아버린 건지, 한 1년 동안 글을 써야겠다는 의욕이 생기지 않았어. 복잡하고 풍성했던 해외 학창 시절이 끝나고 한국에 왔으니 나는 볼품 없어지는 걸까 하는 꽤나 별꼴인 생각이 들더라고. 해외생활이 내 정체성에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거야. 그거 없는 나는 뭐가 남는지 생각을 안 해봤더라.
초등학교 1학년 첫날, 나는 “안녕, 나는 00이고 한국에서 왔어”라고 나를 소개하지 않았겠지? 그냥 이름이랑 학년과 반, 뭐 사는 동네나 취미, 특기, 좋아하는 가수 정도를 이야기했겠지. 내가 살았던 모든 나라와 부모님이 어디에 계시고 언니는 또 어디에 사는지, 그 나라들에서 생활은 어땠는지, 이미 떠나온 수많은 집들이 왜 내 일부분이 되었는지, 그래서 내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첫 만남부터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겠지. 그저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밥이나 간식 한 번씩 먹고 가끔 놀러 다니면서 차츰 내가 이해받고 있다고 느꼈으려나.
어쩌면 습관 같은 거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아서 시간이 없어. 친해지고 싶은 사람을 차차 알아가면 금세 해어질 시간이 다가오기 마련이야. 그래서 만나자마자 인생사를 읊어주고 가장 어려웠던 순간까지 서슴없이 이야기해. 해변이니 뭐니 다 건너뛰고 손잡고 깊은 바다로 뛰어드는 거야. 그러다 이 사람이랑 안 맞는다 싶으면 가차 없이 쑥 나오기도 해.
이게 익숙해져서 그런지 콕 찍을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어. 난 나를 다 보여줬는데, “아, 내가 00에 있었을 때...” “그 재작년에 00에 있었을 때”라며 내 정체성, 곧 내 과거를 이야기하고 또 하며 나를 이해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거야. 내가 질문을 하지 않아도 깊이 나누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있었나 봐. 묻지 않아도 이야기해 주기를 마냥 기다렸는데, 우린 속도도 다르고 기대하는 관계도 달랐었던 거지. 나는 그 사람과 말 못 할 벽을 느끼며 친절함을 가식으로 받아들였고, 그 사람은 이미 충분히 친해졌다고 느낀 거야. 난 아마 꽤 부담스러운 사람이었을 거야.
나 또 내 얘기만 하고 있잖아. 그래도 기록을 남기면 언젠가 쓸모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이미 정리하고 정리했던 이야기 굳이 또 정리해보려고 해. 기억에 덧대 쓰인 글이니 100% 실화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뭐 원체 이야기는 첨가물이 좀 추가돼야 재밌지 않겠어? 그래도 네가 공감할 만한 부분들이, 너의 경험에 비춰볼 만한 이야기들이 조금은 있을 거라 믿으며 글을 보내볼게. 모두 아끼는 이야기들이지만, 쉽게 읽히길 바래.